낙산사 가람배치,김홍도 그림과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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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가람배치,김홍도 그림과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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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복원 발굴조사 중 가람배치 규모 밝혀져

^^^▲ 낙산사 가람배치^^^
양양 낙산사의 가람배치가 조선 후기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한걸로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의 복원·정비 기초자료 확보를 위하여 2005년부터 발굴조사를 추진, 1차조사에는 원통보전을, 금번 2차 발굴에는 주변지역에 대하여 조사를 추진, 건물지의 가람배치와 규모 등을 밝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소측은 "발굴 결과 낙산사의 가람배치는 모두 3단의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단에는 원통보전(법당)이, 제2단에는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좌우에 2동의 건물지가, 그 남쪽에 동-서 방향의 건물지 1동이 있고, 그 아래 제3단에는 출입시설과 관련된 건물지 1동이 배치되는 구조가 확인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조사지역내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모두 8동으로 주초 아래 적심의 구조가 장방형과 원형이 혼재되어 사용된 경우도 있으며, 제2단에서 확인되는 좌우 건물지 2동은 조선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고, 보다 이른 시기의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유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막새, 기와, 토기편이 모두 출토되었지만 각 시기와 관련된 유구는 조사구역내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아 창건기부터 고려 및 조선후기 이전의 가람배치는 현재 파악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원통보전 주변 배치 건물들은 조선후기 이후부터 화재와 중창을 거듭하면서 기단부 등은 계속 재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기전까지 존재한 건물로 판단된다는 것이 발굴조사단의 잠정 결론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된 가람배치의 구조는 김홍도가 1778년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및 관동팔경 지역을 사생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 중의 하나인 ‘낙산사도’와 흡사하다" 고 말하고,

18세기에 그려진 각종 회화에 일부 그 모습이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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