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에 접어 들었으나, 복사열로 인해 밤 기온도 섭씨 30도를 넘는 열대야 현상을 보였으나, 모든 전력공급이 중단되면서 에어콘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작동되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주민들이 대부분 야외로 나갔으나, 동해안 인근주민들에게는 오존 중대경보가 내려진 상황 이어서 야외활동을 금지함에 따라 주민들의 불편은 더 가중되었다.
핵실험 당시 버섯구름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퍼지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복사열로 인해 해조류는 뼈대만 남은채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식수는 90%가 오염되어 먹지 못하게 되자 물을 구하기 위해 출장을 하는 사태로 전개되면서 맑은 물을 구하기 위해 200km이상까지 줄을서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방사능 낙진을 뒤집어 쓰지 않은 서해안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사상최악의 교통대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남서풍을 따라 남해안으로까지 방사능이 확산되었다. 열폭풍이 자연풍의 방향을 바꿔놓은 셈이다.
핵실험 파장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동북해안에까지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열도는 발칵 뒤집히고 전 국민이 동요하면서 일본은 즉시 대북선재공격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일본은 핵무장을 서두르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30년 전 과로로 순직한 이휘소 박사에 대한 향수가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기처에서는 그를 순직이 아닌 순국선열로 우대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이휘소 박사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게 된다.
성난 민심은 청와대로 몰려가 대북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경호원과 몸싸움으로 발전한다.
같은 시기 북한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와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북한은 2차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었고 굶주린 주민이 압록강 근처를 배회하다 허기진 배를 참다못해 주변의 잡초와 흙을 파먹고 있는 모습이 동영상을 통해 공개되자 전 세계인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경에는 중국공안과 북한공안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기에 이들은 탈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 무렵 평양 주석궁에는 당 간부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위원장 동무, 기어이 일을내고 말았으니 중국에서 가만지 있지 않을텐데 괜찮을까요!"
'우리 공화국과 중국은 이미 공안협조를 했소, 내래 중국을 믿는데이...'
이렇게 말하고는 캬라멜시럽 비엔나 커피와 소스에 치즈를 녹여 얹힌 염소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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