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수케키는 아까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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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수케키는 아까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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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소싸움

 
   
  ^^^▲ 상남 범소지금 청도에서는 국제소싸움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다
ⓒ 경상북도^^^
 
 

"부락민 여러분! 에~ 오늘 아침 10시부터 에~ 상남공설운동장에서 에~ 소싸움이 벌어진다 캅니더. 에~ 이번 소싸움은 에~ 우리 상남의 자존심인 에~ 상남 범소와 에~ 김해 들깨소가 에~ 한판 붙는다 캅니더. 에~ 부락민 여러 분들께서는 에~ 바뿌시더라캐도 에~ 이번 소싸움에 에~ 많이 참석해 주이소"

그래. 진해 벚꽃 장이 열릴 즈음이면 내가 자란 창원 상남에서는 심심찮게 소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소싸움은 이른 새벽, 말끝마다 에~를 연발하는 마을 이장님의 요란한 확성기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이장님은 마을과 마을 주변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으레 이른 새벽에 방송을 해서 마을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기 일쑤였다.

"에이~ 저 넘의 확성기로 확 뿌싸뿌던지(부셔버리던지) 해야지 원"
"에~ 자 소리만 넣지 않아도 미친 척하고 들어줄라 캤는데"
"소싸움인가 뭔가 하는 거 땜에 올도(오늘도) 보리밭 메기는 아예 글러뿟네"

소싸움은 주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위에 있는 넓직한 공터에서 벌어졌다. 이 공터는 말이 좋아 상남공설운동장이라고 불렀지, 실제 면에서 운영하는 그런 공설운동장이 아니었다. 이 공터는 상남벌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농산물을 쌓아두거나, 밀과 보리, 콩, 벼 등을 공동으로 타작하는 타작마당이었다.

소싸움에 참가하는 소는 모두 네 마리였다. 그 소들의 이름은 상남면의 자존심이라고 내세우는 상남 범소와 봉림산 너머에 있는 김해 돌깨소, 양 뿔이 앞으로 뾰쪽하게 튀어나온 웅남의 코뿔소, 목에 제법 긴 털이 덮힌 덕산의 사자소였다. 그 중 싸움을 가장 잘하는 소가 상남 범소와 김해 돌깨소였다.

"상남 범소! 옆구리! 옆구리!"
"김해 돌깨소! 턱쪼가리! 턱쪼가리로 받아뿌라"
"웅남 코뿔소! 뿔치기! 뿔! 뿔!"
"덕산 사자소! 더 세게! 옳지! 더 세게 밀어"

소싸움의 경기시간에는 제한이 없었다. 상대편 소가 지쳐 달아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싸움소는 주로 머리 가죽이 몹시 두꺼웠고 뿔과 목도 굵었다. 특히 웅남 코뿔소는 앞으로 쭈욱 뻗은 양뿔을 마치 창처럼 날카롭게 갈고 나와 소싸움이 벌어지기만 하면 상대편의 소는 그 뿔에 찔리고 긁혀 온통 피범벅이 되기도 했다.

 

 
   
  ^^^▲ 소싸움“옆치기! 옆치기!”
ⓒ 경북 청도^^^
 
 

그 소들 중 상남면민들의 자존심을 대변한다는 상남 범소는 머리통이 아주 컸고 양 뿔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척 보기에도 소싸움의 왕자처럼 보였다. 상남 범소는 싸움 전날 그 귀한 한약재를 여물에 섞어 먹인다고 했고, 싸움 당일 아침에는 여물을 주지 않고 막걸리를 서너 말씩이나 먹이고 나온다고 했다.

그날, 소싸움이 벌어지는 상남공설운동장 주변에는 우리들 학교 운동회 때 쓰던 그 젖빛 천막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커다란 천막 속에는 소국밥 장수를 비롯한 국수 장수, 번데기 장수, 솜사탕 장수, 엿장수 등 각종 장사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에 특히 볼만한 것은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고 얼굴에 허옇게 밀가루분을 바른 채 여기저기 곰보점을 찍은 엿장수였다.

"아~ 작년에 왔던 상남 범소~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아~ 작년에 패한 김해 돌깨소~ 올해도 삼십육계 할라나~"
"뻔~ 뻔~ 뻔~"
"아재! 얼쩡대지 말고 퍼뜩 들어오소. 올 소국밥 맛이 지기줍니더"
"아이~수케키! 아이~ 수케키!"

그랬다. 그날도 당연하다는 듯이 상남 범소가 덕산 사자소를 순식간에 물리치고 입에 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마가 약간 찢어진 김해 돌깨소는 그때까지도 웅남 코뿔소와 접전을 벌이며 동백 꽃잎 같은 피를 출출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는 웅남 코뿔소가 이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한 두 발자국 물러서던 김해 돌깨소가 방향을 바꾸더니 순식간에 웅남 코뿔소의 목덜미로 돌진했다. 역시 돌깨소는 돌을 깨부수는 대장장이 같은 소였다. 이내 웅남 코뿔소의 목덜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웅남 코뿔소가 뒷걸음질을 슬금슬금 치더니, 운동장 구석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역시"
"휴우~ 나는 오늘 김해 돌깨소가 지는 줄로만 알았다 아이가"
"그라모 되는강. 올개는 상남 범소로 꼬옥 이길라꼬 지난 해 내내 그 귀한 콩까지 갈아 밋다(먹였다) 안 카더나"

그날, 소싸움의 결승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승은 상남 범소에게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김해 돌깨소 측에서 상남 범소와의 싸움이 마악 시작될려는 찰나 하얀 수건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해 돌깨소는 웅남 코뿔소한테 상처를 많이 입어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리고 있었다.

그날 소싸움은 의외로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실 소싸움보다도 소싸움장 주변에 설치된 젖빛 천막 속을 더 기웃거렸다. 또 잊을 만 하면 나타나 우리들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뻔데기 장수와 아이스케키 장수에게 자꾸만 눈길이 쏠렸다.

특히 이른 봄에 보는 아이스케키는 보면 볼수록 신기했고, 아이스케기통을 둘러맨 아저씨가 한눈을 팔 때면 슬쩍 집어먹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그러나 번데기는 입에 침이 저절로 꼴깍 하고 넘어가도록 맛있는 냄새가 났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마치 굼뱅이처럼 징그럽기만 했다.

"아나!"
"니, 이 비싼 아이수케키로 우째 샀노?"
"울 옴마가 두 개 사가꼬 니한테 한 개 갖다주라 카더라"
"와?"
"몰라. 와 그라는지"
"니 아이수케키는 우짜고?"
"내 아이수케키는 아까 묵었다 아이가"

그랬다. 그날, 상남공설운동장에서 그 가시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네게 주던 그 아이스케키는 그 가시나의 어머니가 내게 갖다주라고 한 게 아니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아이스케키는 그 가시나가 제 먹을 것을 내게 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가시나가 아까 먹었다며 내게 건네준 그 아이스케키는 금방 꺼낸 아이스케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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