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 60년 광복절을 맞아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김철수, 김태연 선생을 비롯해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 민족 문학가 현진건선생 등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77명(독립장 6, 애국장 25, 애족장 46), 건국포장 60명, 대통령 표창 77명 등이며, 생존자는 10명이고, 여성은 2명이다.
이들의 훈장은 광복절 중앙 경축식장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되는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해외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본인과 유족에게 전수된다. 유족이 확인되지 않는 분의 훈장은 정부에서 보관한다.
이번 광복절 포상은 광복 60년 계기 2번째 포상으로 지난 3·1절 계기 165명과 이번 포상 214명 등 총 379명이 포상되며 앞으로 순국선열의 날까지 포상하면 광복 60년을 맞아 500여명이 넘게 포상된다.
이번 광복절 계기 포상을 위해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는 750여건의 독립유공포상신청자에 대한 자료 분석과 보완을 통해 공적을 확인하였고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위원회에서는 10여 차례에 걸친 제1·2심과 합동심을 열어 심도 있는 심사를 했다.
특히,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는 확실한 거증자료가 없는 135명의 신청인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당시의 재판판결문등 수형기록, 신문보도자료 등을 검색하고 기관을 방문해 자료를 확인하는 한편 현지조사로 행적을 확인함으로써 이중 41명이 포상을 받게 됐다.
포상을 받는 생존자 임용태 선생은 91년 공적조사서를 제출했으나 경찰청에서 회보한 수형기록만 확인되고 활동내용에 대한 기록을 확인 할 수 없어 포상보류가 되었으나 14년이 지난 금년에 일본경찰 활동 보고서에서 활동사항을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서 확인함으로써 포상을 받게 되었으며,
항일동시작가 권태응(權泰應 1918~1951)선생은 학적부와 독립운동사에 나와 있는 한 줄의 공적내용을 근거로 현지형무소 수형기록 확인, 국사편찬위원회 및 국가기록원 자료검색 및 기관 방문확인 등을 통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의 자료발굴로 포상을 받게 됐다.
이로써 건국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총 9,908명으로 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788, 애국장 3,155, 애족장 3,863, 건국포장 540, 대통령 표창 1,438명 등이며, 앞으로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포상까지 합하면 1만명이 넘어설 전망이다.
보훈처는 앞으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사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 독립운동사료 소장기관과 협조하여 대대적인 사료발굴·분석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포상자 중 주요훈격에 추서된 분들의 주요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故 김철수(金錣洙1893 ~ 1986)선생은 1912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재일본 유학생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으며 1923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생계위원 및 비서로 활동하고 1926년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44년 다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김태연(金泰淵, 이명 김단야 1900 ~ 1938)선생은 1919년 경북 김천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군자금 및 의용병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1926년 중국 상해에서 순종의 승하로 전개된 6·10만세운동의 기획과 격문인쇄·발송 등을 주도하였고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신흥청년동맹 집행위원등을 역임하며 조국독립을 위해 러시아, 중국, 국내 등을 오가며 활동했다.
- 김 한(金 翰, 1887~1938)선생은 1916년 비밀결사 광복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해 임정 사료편찬회 위원, 법무부 비서국장 등을 역임하고 1922년 의열단원으로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의 옥고를 치르고 1929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30년초에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 정헌태(鄭憲台 1902~1940)선생은 서울에서 3·1운동에 참가하고 대한의군부 모연대 소속으로 독립운동자금과 동지규합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동경지회와 경성지회 간사 등을 역임하며 강연회 연사로 참가 국민계몽에 힘쓰고,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7년을 언도받고 이감도중 ‘조선민족 독립만세’를 외치다 다시 징역 8월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 최윤구(崔允龜 1903~1938)선생은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통의부에 참가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으며 1932년 재만 독립군인 조선혁명군의 중대장으로 중국봉천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고 조선혁명군 제1연대장과 제2사 사령 등을 역임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다 1938년 12월 전사순국했다.
- 한위건(韓偉健 1896~1937) 선생은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대표로 민족대표와 연계하여 서울지역 3·1운동을 주도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정 내무위원, 의정원 함경도의원 등을 역임하고 1926년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고 신간회 창립 발기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29년 이후 사회주의를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 독립운동가 생애를 국제적 여론으로 환기시킨 님 웨일즈의 저서「아리랑」의 주인공 김산(金山, 본명 張志樂, 1905 ~ 1938)선생은 1920년 중국 상해 임정 기관지「독립신문」의 교정원으로 있으면서 흥사단 활동을 하였으며 1924년부터 사회주의를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삼아 1924년 고려공산당 북경지부 설립, 1926년 조선혁명청년동맹 중앙위원과 의열단 중앙집행위원 및 선전부장으로 활동했고, 1927년 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 광동대표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명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 이외에 심남일의진의 부장 강무경의 부인으로 의병지원이 아닌 직접 의병활동에 참여한 최초의 여성의병으로 확인된 故 양방매(梁芳梅 1890~1986)선생을 비롯해 부자가 유인석 의진에서 의병항일투쟁을 전개한 故 어윤석(魚允奭 1846~1898), 故 어경선(魚敬善 1869~1916)선생,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전개한 故 부덕량(夫德良 1911~1939)선생이 건국포장을 받는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기념사진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민족문학가 현진건(玄鎭健 1900~1943)선생은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다.
▲ 생존애국지사는 1940년 서울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통신문을 우송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러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받는 임용태(任龍泰 88세, 강원 홍천거주)선생을 비롯해 일본군을 탈출하여 독립군에 합류하려다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언도받은 권중혁(權重爀 84세, 대구거주)과
서울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재학 중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옥고를 치른 안병구(安秉九 83세, 충북 충주거주)선생이 건국포장을 서훈받고 애국지사 정태옥을 지원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동렬(金棟列 79세, 경남진주거주)선생,
전남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중 독서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백인열(白仁烈 92세, 전남여수거주)선생, 전주사범학교 재학시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백진우(白鎭禹 83세, 서울 서대문거주) 선생과 한칠석(韓七錫 82세, 전북 전주거주)선생,
일본 명치대 재학중 학병모집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른 장희순(張喜順 84세, 서울 구로거주)선생,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조영진(曺永鎭 83세, 서울 마포거주)선생, 경남 창원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최종근(崔鍾根 81세, 부산 북구거주)선생 등이 대통령표창을 서훈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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