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뷰]옻벌레의 자화상 (1)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획인터뷰]옻벌레의 자화상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은 반드시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 춘천에서 만난 소설가 이외수, 그는 야윈 몸으로 예술과 삶을 이야기하는 옻벌레이다.
ⓒ 뉴스타운^^^

글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남들처럼 거룩한 동기로 글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 이외수


누군가 그랬다. 자화상은 자신을 낯설게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러 화가들의 자화상이 그랬듯 이외수 그의 자화상은 작품을 통해 낯선 타자를 넘어서 잔인할 만큼 치열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뿐만 아니라, 삶조차 치열하게 그려나가는 ‘옻벌레’의 자화상을 나름대로 그려보며 춘천역을 향해 갔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예술인들에게 지적허용은 위험하지. 내가 아름답지도 않은 걸 남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는 없잖아”

그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젊은 예술인에 대한 당부로 시작됐다. 그의 아들 역시 영화 감독을 꿈꾸며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영화를 하루에 두 편씩 보면서 특히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요즘 단편 영화를 만드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뭔가 있는 듯하지만 없어 보이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라고 했다. 한 번에 과도한 열정을 분출하는 젊은이들의 예술관은 예술이나 영화 자체를 위함이 아닌 상업적인 변질과 자신의 철학, 감정의 과도한 분출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요즘 한국 영화는 “있어 보이기만 할 뿐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치명적 오류를 낳게 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결국 젊은 예술가들의 과도하고 단순한 열정은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거대 관객 수 동원에만 의존하여 영화의 외적인 측면만을 기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이어 그는 끝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예술과 윤리와의 관계에 대해 "예술은 반드시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현실의 도덕은 현재 사회를 존립시키거나 지속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예술속의 도덕이든, 현실속의 도덕이든 본래의 도덕성을 상실한채 위배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예술은 반드시 도덕적인 지향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예술의 정신만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예술과 도덕의 관계는 그가 끝없이 말했던 그의 미학론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내가 아름답지도 않은 걸 남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체제의 보편적인 도덕 가치를 지향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체제를 존속시키는 것에만 불과한 도덕이나 이념은 예술이 가져야하는 도덕 정신과는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반드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마인드이다. 예술 텍스트에 대한 담론은 결국 수용자의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하며 예술인은 그 정신으로만 예술을 창작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남들이 끔찍해하고 징그러워하는 것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삶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영화 역시 반드시 아름다운 도덕과 철학만을 보여주는 담론의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반드시 도덕적인 예술을 지향할 필요가 없듯이 우리도 반드시 “뭔가 있어 보이는 예술”만을 쫓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남들에게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속에서 영화를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이다.

“나무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장 아팠던 부분을 보여줘야 해.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은 예술이 아니지. 뿌리나 줄기 모두를 보여주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자기 욕망을 먼저 가지치기하는 순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는 대부분의 젊은 예술인들이 쉽게 단념하는 경향에 대해서 말했다. 스스로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한 때 미술을 하려고도 하고 춘천교대에서 다니기도 했던 그는 “너는 될런지도 몰라”라는 말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의 소질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를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질이 없다가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젊은 예술인들에 대한 그의 메시지이다.

“욕심에 가지치기를 해야 해. 딱 한 가지만 잘 하면 나머지도 따라와. 부산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고 가꾸는 일에 주력해야 하지. 그것은 자기의 비좁은 마음의 밭떼기에 사과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고. 그것들이 모두 무성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잖아.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면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지. 내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만을 평생 심겠다 생각하면, 그 사과는 그걸로 충분히 단 거야.”

그토록 야윈 몸으로 철창살로 세상과 단절하는, 삶에 대한 치열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직 하나의 사과만을 가꾸기 위해 그는 이런 철창살로, 온 몸을 통해 그는 문학과 예술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