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노라면 내 자신이 한 뼘 정도는 겸손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서러운 윤동주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근거없는 자만, 턱없는 오만, 이런 부끄러운 것들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물러나 줍니다.
여기는 엊그제 잠깐 첫얼음이 얼었습니다. 만지면 아삭 부서지는 살얼음이었지요. 지난 여름 땀흘려 파놓은 연못에 떠 있는 그것들의 문양이 꽃도 같고 기하학도 같고 하도 아름다워 한참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새벽인데도 훈훈하군요. 어제 빗방울이 몇 개 듣더니 그것도 비라고 지금은 바람 소리가 제법 요란합니다. 방안에서 들으면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사뭇 스산하기도 하지만 밖으로 나서보면 상황은 딴판입니다. 봄바람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이 겨울의 이 새벽 이 바람은 무슨 비의를 간직한 것일까요.
커피 한 잔을 빼들고 알 수 없는 훈훈한 바람 속을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풍욕을 했다고나 할까요.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개들도 모두 잠이 든, 가로등이나 띄엄띄엄 장승처럼 서 있는 이 새벽의 공기가 나로 하여금 나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나 자신을 느끼는 것일까, 잠시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도시를 시급히 탈출해야겠다고 초조해 한 지난 날의 내 자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건물에 걸린 거대한 간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살아 있으되 산 목숨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공포와 회의의 나날들을 거쳐 지금 나는 여기에 와 있습니다.
여기의 나는 물론 나일뿐입니다. 나만의 행복이라는 말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나의 이것을 답답하고 소극적인 삶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만의 행복인 것이지요. 함부로 누구에게 권할 수 없는, 자랑하기 부끄러운 그런 것이라 해야 옳겠지요.
"앞에 빈집 엄마에게 사라고 할까요?" 하신 말씀, 질문, 이 질문은 답을 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살다 보면 어떤 일에 대해 조언이나 충고를 많이 듣게 됩니다. 가끔은 유용한 충고나 조언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혼란을 조장할 뿐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취향에 근거한 충고와 조언은 생산적이기보다 소비지향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아무리 좋아도 상대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음식이 내게는 아주 잘 맞아도 상대에게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을 염두하지 않는 충고와 조언은 훗날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나의 이러한 생각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일까요?
아, 그렇지만 나도 이런 말은 합니다.
"놀러 와"
그리고 이런 말도 할 줄 압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돌아서 가는 게 나아"
그리고 또한 이런 비판 투의 권유도 하지요.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도 늘 바쁘기만 하냐. 일이 너냐? 꽃이 어떻게 피는가도 보고, 개미들은 어떻게 짝짓기를 하는가도 좀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라"
아, 그새 닭이 우는군요. 이제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삼사 년 동안 만지작거려 온 글거리가 하나 있는데 금년은 넘기지 않고 최소한 초고라도 끝내리라, 결심하고 있지요. 이제부터 그것을 붙잡고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이 글을 맺기 전에 <놀러와>의 테마를 조금 더 진행시켜 볼까 하는 욕심이 발생하는요.
중요한 건 역시 내 마음의 방향이겠지만, 이를테면 그곳을 가고 싶어 하느냐 아니가고 싶어 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권유를 하고 싶군요. 머릿속의 번다한 것들이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할 때, 그럴 때가 있거든 기차를 타십시오.
거부감만 없다면 쑥탕을 열어드리기도 하겠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쑥을 끓여 그 물을 욕조로 옮긴 다음 전신을 푹 담그는 것인데 그 향기의 상쾌함이 제법 좋습니다.
자 그럼, 바빠서 정신마저 없어져 버리는 삶은 이제 그만 되시기를 기원하며 줄입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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