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들 닥치고, 잠안오면 뇌사모개떼들처럼 몰려다녀라. 노란색 노비옷입고..
니네 두목이 부인때리고, 여자앞에서 오줌갈기는짓 자서전에 다 써놨던데..
좀 배우고 실천하여 널리 써먹어라. 니 집구석부터..
여보, 나좀 도와줘
* 저자 : 노 무 현
* 발행처 : 도서출판 새터
* 출판일 : 1994년 9월 25일
* 펴낸인 : 박 영 식
* 판형 : A5
제4장 내 마음의 풍차 - 제3절
노가다의 짝사랑맨날 모였다 하면 화투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다. 옛날 누굴 두들겨 팬 이야기, 여자 겁탈한 이야기, 일 저지르고 도망친 일 등등..... 모여 앉아 궁리하는 거라고는 어떻게 하면 공사장의 모터나 철근,
자재 같은 걸 빼내 나가 팔아먹을까 하는 것들이다.
한 번은 일터로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담패설로 희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들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욕만 됫박으로 얻어먹고 코가 납작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를 향해 나란히 줄지어 서서는 바지춤을 내렸다. 그리고 단체로 오줌을 갈겨댔다. 밥 먹고 생각하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그 뒤 군대를 갔는데, 군복을 입혀 놓으니 또 그 지경이고,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어떻게 농땡이를 부릴까 궁리만 한다. 아무 길거리에서나 오줌을 누고, 끝나면 그냥 집에 가도 될 걸 술집에 몰려가 한 잔씩 해야만 하고, 그러다 지나가는 여자나 희롱하고.....
더 심각한건 부인까지 구타했다는 것이다.
제3장 여보, 나좀 도와줘 - 제2절 하늘의 절반
형님 내외는 직장 따라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부모 모시고 농사 수발을 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니 아이 키우랴, 집 청소하랴 음식을 장만해서 들에 갖다 주랴, 그 고생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내기하는 날에도 내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아내를 다루는(?) 일을 무척이나 힘들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연수원 동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수유리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친구들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노 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을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그같은 쌩쑝한 짓을 벌이고도 살아남았다. 고어는 부시와의 선거전에서 명문대 나온게 부담이 되었는지 학점이 엉망이었다는걸 은근히 흘렸다. 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미지를 바보처럼 보일까 연구하는 것같다. 독일의 슈뢰더는 클린턴 스캔들이 있자 자기는 당사 출입 여기자와 스팀 나는 짓을 하다가 본부인과 이혼했다고 떠벌였다. 이에 질세라 프랑스의 시락도 휴양지에서 파파라치가 망원렌즈로 보고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별장 베란다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녔다. 영국의 토니도 학창시절 철자법이 엉망이었던 학생이었다는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듯 하다. 모두가 마치 벌거벗은 임금처럼 멍청하고 바보스럽다는걸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그 중 압권은 역시 영국 왕실이다. 앤 공주의 딸은 피어싱 중 가장 힘들다는 텅 피어싱을 하고 다니고 모녀 간의 대화에 욕설이 없으면 대화가 안될 정도라고 한다. 이혼과 재결합 다이애나의 죽음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찰스 왕자의 멍청한 표정은 감히 어느 코미디언도 흉내 낼 수 없는 압권 중 압권이다.
이들 바보 지도자들의 대행진은 기가 죽어 고개 숙인 서민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함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 주기에 2% 내외의 성장률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유럽의 주요 도시는 중동 지역의 이슬람 난민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무슨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러니까 시무룩한 아이를 달래기 위한 별의 별 까꿍 생쇼를 이들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거라고 볼 수 있다.
얼마전 박근혜가 북한 방문 시 김정일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이를 보고 김동길 교수가 월간조선에서 시골부부같다고 비웃은 적이 있다. 물론 김교수야 짙은 콧수염과 나비 넼타이 차림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멋쟁이겠지만 어쩐지 김정일이 지도자로서 침체에 빠져 맥을 못추는 주민들을 웃기기 위해 바보 연출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30여 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해온 한국경제가 아이엠에프 때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지금 유럽처럼 장기간 불황을 경험해보지는 않은거같다. 따라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그같은 불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바보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회창보다는 노무현이 그런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 노무현이 되었다.
노무현의 본질은 그럼 뭔데?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게 이번 대선이란 말인지? 무임승차 잘 해서 당선되었다는 소리? 아님 뭔데? 이 글엔 아무 내용이 없다. 꼭 기성언론에서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하나도 영양가없는 글을 보는 기분. 이제 시작이고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면 뭐가 조건이고 앞으로 어찌해야 주류교체가 (아마도 정치인/유권자의 동반 세대교체로서..) 달성될지에 대해 써나가야 하는데, 시작하려다가 글을 맺어버리니 하나 마나 누구나 다 아는 두리뭉실 개수작이다. 아래 님 말대로 좃선에서나 보는 덜떨어진 기성세대 논객들의 글이다.
니네 두목이 부인때리고, 여자앞에서 오줌갈기는짓 자서전에 다 써놨던데..
좀 배우고 실천하여 널리 써먹어라. 니 집구석부터..
여보, 나좀 도와줘
* 저자 : 노 무 현
* 발행처 : 도서출판 새터
* 출판일 : 1994년 9월 25일
* 펴낸인 : 박 영 식
* 판형 : A5
제4장 내 마음의 풍차 - 제3절
노가다의 짝사랑맨날 모였다 하면 화투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다. 옛날 누굴 두들겨 팬 이야기, 여자 겁탈한 이야기, 일 저지르고 도망친 일 등등..... 모여 앉아 궁리하는 거라고는 어떻게 하면 공사장의 모터나 철근,
자재 같은 걸 빼내 나가 팔아먹을까 하는 것들이다.
한 번은 일터로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담패설로 희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들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욕만 됫박으로 얻어먹고 코가 납작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를 향해 나란히 줄지어 서서는 바지춤을 내렸다. 그리고 단체로 오줌을 갈겨댔다. 밥 먹고 생각하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그 뒤 군대를 갔는데, 군복을 입혀 놓으니 또 그 지경이고,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어떻게 농땡이를 부릴까 궁리만 한다. 아무 길거리에서나 오줌을 누고, 끝나면 그냥 집에 가도 될 걸 술집에 몰려가 한 잔씩 해야만 하고, 그러다 지나가는 여자나 희롱하고.....
더 심각한건 부인까지 구타했다는 것이다.
제3장 여보, 나좀 도와줘 - 제2절 하늘의 절반
형님 내외는 직장 따라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부모 모시고 농사 수발을 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니 아이 키우랴, 집 청소하랴 음식을 장만해서 들에 갖다 주랴, 그 고생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내기하는 날에도 내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아내를 다루는(?) 일을 무척이나 힘들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연수원 동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수유리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친구들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노 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을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