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티스타를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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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를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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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를 보는 미시적관점과 거시적관점

^^^▲ <마르코스> 표지^^^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게릴라 부사령관 마르코스에 대한 논쟁적 저서가 나왔다. 바로 <마르코스> 이다. 이 책이 던지는 도전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마르코스와 마르코스의 실체가 동일한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나 역시 그랬듯이 마르코스는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다. 영웅이 없는 시대에 시대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영웅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식이 단지 나에게 만이었다면 이 저서가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르코스는 다른 모습으로 비치었다. 대학교단에 선 인텔리이면서 스스로 몸을 던져서 소외받는 인디헤나들과 함께 인간의 권리를 위해 총을 든 인물로. 또 실제적인 치아파스 게릴라 운동의 실력자이면서도 부사령관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으로. 또 사상 최초로 세계화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여겨지는 인터넷이란 공간을, 반세계화 운동의 공간으로 만들어 낸 창조적인 인물로 인식되어왔다.

한때 폭스정권과 사파티스타 혁명군이 협정을 맺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눈부신 성과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법에 대해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었다. 역시 가장 소외가 깊은 곳에서 가장 도전적인 산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련한 전통적인 삶을 꾸려가는 인디헤나들과, 도시의 인텔리의 결합의 산물로 나타난 것이었다.

마르코스. 그리고 사파티스타는 반 세계화운동의 꺼질 줄 모르는 동인이었고, 반 세계화 운동에 대항하는 상징물이었다. 사파티스트의 존재 자체와 그가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리는 글들 하나하나가, 강국주도의 위로부터의 세계화로 인한 폐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바로 복음과 같은 해갈의 목소리로 들려왔었다.

그러나 이제 마르코스에 대한 비판적인, 혹은 논쟁적인 저서가 출판되었다. 바로 한때 그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이 기술하고 번역해낸 <마르코스>이다. 이중 삼중의 겹겹의 착취 고리에 시달리며 세상에서 가장 모순 된 삶을 살고 있는 멕시코의 인디헤나들. 자신들의 땅에 살면서 침략자와 그들의 후손들과의 혼혈들에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대로는 경제적 착취와 수탈을 당하면서도 수백 년 간 묵묵히 그들의 삶의 전통을 지켜온 사람들. 그 때문에 빈곤과 문명의 산물에서 소외당하던 사람들이 바로 인디헤나들이다.^

그들의 곁에 선 조력자이자 지도자로 보였던 마르코스를 갑자기, 인디헤나들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사상가들의 무리의 지도자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 책의 내용을 확인 할 수도는 없지만, 아마도 상당부분의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것이다. 대학 강단에 섰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새로운 실천의 장을 찾아서 고통에 시달리는 순진한 인디헤나들을 구슬린 결과로 나타난 것이, 못다 이룬 멕시코 혁명의 완결을 꿈꾸는 사파티스타 운동(사파타는 과거 멕시코 농민혁명의 지도자이다)일지도 모른다.

인데헤니스모니즘(Indigenismonism. 멕시코를 중심으로 안데스 산맥의 인디언 인구가 많은 페루, 볼리바아 등에 일었었던 인디헤나들의 정체성 회복과, 그에 대한 가치부여 운동) 에 대해 깊이 모르는 나이지만, 500년의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꿋꿋이 견뎌내고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인디헤나들의 삶에 대해 나는 존경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땅에서 겪고 있는 고난과, 삶의 질곡에 대해서도 깊은 아픔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아직도 무지하고 무관심한 세상에 대해서도 나는 가슴이 아프다. 아마 <마르코스>의 저자는 나와 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일단의 지식인 맑시스트 메스띠소(중남미의 혼혈인들. 이들이 표면상의 중남미의 주류인종이다) 들이 인디헤스모니즘을 이용하며 벌여온 ‘가장 극’이 사파티스트 운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논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들 외에 누가 인디헤나들의 삶에 구체적인 참여를 하였는가. 이론적인 논쟁은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그들의 삶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였고, 아직은 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우일한 자들이 바로 사파티스타 들이 아닌가. 설사 그들에게 미시적인 오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일한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움직여가는 세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몇 되지 않는 동력이 바로 그들이 아니었던가.

게릴라다운 게릴라가 없는 시절이라서 그들이 조명을 받고 있단다. 이 시대는 체 게바라가 활동하던 시절과 같은 낭만적인 시절이 아니다.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전방위적인 자본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된 후 우리는 하다못해, 마약과 인질로 그 투쟁자금을 마련하는 콜롬비아 좌파 게릴라마저도 진보세력의 반열에 세우곤 하였다. 그에 비해 사파티스타 운동이 무엇이 뒤떨어진단 말인가. 체 게바라 자신이 말하였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조그만 과실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아픔은 미시적인 것이다. 개인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시적인 세계를 보는 시야를 잊지 않아야 한다. 아픔에 메몰 되어서는, 슬픔에 너무 깊이 잠겨서는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낭만에 너무 깊이 심취되어, 조그만 실망에 등을 되돌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그만 과실 역시 묵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향해 뛰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한 발짝 한 발짝에 기쁨과 슬픔을 느껴야 한다. 내가 물리치고자 하는 그 부조리를 닮아가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미력한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땀으로. 눈물로. 염원으로. 그리고 때로는 피로써.

그들은 지금 총을 든 전사들이다. 우리들이 한사코 시대의 부조리에 눈감고 있는 그 시기에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눈을 뜨고,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세상을 울리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었다. 다음 세대는 그들의 빈틈을 디디고 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그들이 미처 이룩하지 못한 보다 나은 세상을 일구어 내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등을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에게 비판할만한 허점이 보일 땐 격려의 언사 뒤에 그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배려의 말을 얹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서 보지도 못한 사람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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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2003-11-03 16:43:43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진기자께서 제시하신 바는 역시 다른 반대쪽... 그의 밝은 면이 아닌가 합니다. 균형있는 시각이 아닌 듯 하네요. 이 사람 만한 사람 있었나? 란 질문을 통해서 그의 과실을 덮어 버리는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진의는 아니시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보인답니다. 그는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기꾼이라고 세상에 꼭 악영향만 미치란 법은 없지요.

키드 2003-11-03 23:36:41
다시 정리해보고 말씀 드립니다. 이 사람이 어떤 의도 였는지 실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인디언들의 삶이 실제로 나아진 것이 거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작은 고통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아 왔던 그 대단해 보였던 것들이 실제로는 눈속임이었단 근거니까요. 이 책이 말하는 바는 마르코스의 작은 잘못이라기 보단 마르코스의 그 큰 업적의 허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제가 목도하지 못했으니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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