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힘, 권위주의 국가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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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힘, 권위주의 국가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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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 시위는 3단계
- LPG가격 인상에 따른 민생시위→정치 이용 세력과 투쟁 → 새로운 체제 모색 단계
- 권력은 순수한 민생시위도 노린다
- 카자흐스탄 인구, 28세 이하가 전체의 약 54%차지, 시위 확산의 배경 작용
- 민생시위 이용, 30년 장기집권 반(反) 나자르바예프 움직임
- NSC 내부의 혼란, 쿠데타 ?
-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평화유지부대 파견을 요청, 왜 ?
- 전임자 나자르바예프와 현직 토카예프의 권력투쟁
- 3단계로서의 새로운 체제(new regime)
- 토카예프, 지정학적 의의와 러시아에 대한 보상
토카예프가 푸틴에게 지원을 요구한 이상, 그 대가는 크다고 추측된다. 푸틴의 속뜻을 어느 정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키릴 문자로부터의 이탈은 러시아와의 결별로 이어지는 한 걸음으로 푸틴은 생각했을 것이다.
토카예프가 푸틴에게 지원을 요구한 이상, 그 대가는 크다고 추측된다. 푸틴의 속뜻을 어느 정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키릴 문자로부터의 이탈은 러시아와의 결별로 이어지는 한 걸음으로 푸틴은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의 ()북방정책의 주요 국가의 하나인 중앙아시아의카자흐스탄이 202212일 이후 정치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연료(LPG)가격 상승에 때한 국민들의 항의 시위활동이 도중에 누군가에 의해 반정부 폭동으로 선동되면서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면서 큰 소란으로 이어졌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카자흐스탄 현 대통령은 지금까지 26개월 정도의 통치기간 동안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듣고 해결한다는 듣는 힘을 강조해온 인물이었지만, 이번 소란을 계기로 폭력으로 국가질서 유지를 꾀하는 폭군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폭군으로 변모한다면, 카자흐스탄은 동토의 나라로 변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 민생 시위에서 반정부시위 초기 과정

아래 시계열 사건은 카자흐스탄 노바야 가제타, 로시스카야 가제타의 기사 및 복수의 외신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202212 : 카자흐스탄 서부 망기스타우 주에 있는 자나오젠 주민들이 액화석유가스(LPG)가격의 대폭적인 인하를 요구하며, 지방자치행정 청사 앞에서의 시위행진이 이번 소란의 시발점이다.

202213 : 망기스타우 중 아티라우 지방, 악퇴베(aktobe)지방, 즉 서부 카자흐스탄 전역으로 민생 시위가 퍼져나가면서 시위지역이 확대됐다. 당국은 전국으로의 파급을 우려, 인터넷 망을 방해하는 것으로 대응, 수도인 누르술탄에서 온 정부관계자와 시위 주도 그룹과의 회의 결과, 시위대의 주요 요구인 LPG 가격을 1리터 당 50 텡게(KZT, 137)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 이 낮춘 가격은 망기스타우 지방의 주민들에 한정됐다.

202214 : 시위 참가자 수가 대폭 증가됐다. 더 이상 서부 카자흐스탄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돼갔다. 알마티(Almaty)에서는 반대파 활동가가 몇 회의 집회를 개최했다. 악퇴베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지역 행정 청사 앞 중앙 광장을 점거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알마티와 망기스타우 주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기간은 15일부터 19일까지였다. 이미 통신은 방해를 받아 두절 상태였고, 인터넷 서비스는 사라졌으며, 많은 미디어 웹사이트에 접속이 불가능해졌다.

202215 : 4일 밤부터 5일 아침, 알마티에서 공격적인 젊은이들 그룹이 경찰 차량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후 공격성이 강한 대규모 젊은이 그룹이 치안부대를 습격하기 시작, 무기나 장비를 빼앗기도 했다. 이들이 주로 노린 것은 행정 시설로 시()검찰청,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관련 시설, 여당 사무실 등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지시로 개최된 국내 사회경제정세에 관한 회의에서 LPG의 소매 판매 가격에 관한 180일 간의 상한가격이 지역별로 설정됐으며, 가솔린과 경유의 판매도 180일 간의 잠정적인 가격 규제가 도입됐다.

이후 곧바로 내각의 총사퇴한 가운데 젊은 시위그룹은 알마티 국제공항 건물을 점거하고 파괴했다. 당시 공항을 경비하고 있던 부대가 갑자기 사라져, 부방비한 상태가 되었다는 현지 보도도 있었다.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가 발령됐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전 대통령(수렴청정) 대신에 자신이 안보평의회(security council)의 의장이 됐다고 발표했다. 나자르바예프의 지지자 카림 마시모프(Karim Massimov)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의장도 경질되어 6일 체포 구속됐다.

202216 :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찰서 습격했으나 실패했고, TV중계탑 점거 시도했지만 이것도 실패로 끝났다. 이날 밤 러시아 국방부의 명령으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 러시아 주도)에 파견된 러시아의 공수부대가 알마티와 누르술탄의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례적으로 외국 군대가 주권국가인 카자흐스탄에 진입됐다.

202217: 국민을 위한 연설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헌법상의 질서는 거의 회복됐다고 말한 뒤, CSTO의 사명은 인프라 시설의 보호가 중심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폭도들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보안부대에게 테러리스트들이 발견되는 대로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LPG 가격은 전국적으로 인하됐고, 일부 상품에는 국가에 의한 가격 규제가 도입됐고, 공공요금의 연도 내 가격 인상도 금지됐다고 당국은 밝혔다. CSTO의 파견대가 알마티에 도착해 전략시설 등을 제압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202218: 이날밤 토카예프 대통령은자신의트위터에 알마티가 ‘2만 명의 도적에 습격되는 등 큰 공격이 있었다고 게재했다.

202219: 당국은 상황은 전 지역에서 안정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건부에 따르면, 소란으로 164(그 가운데 알마티에서 103)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 후 기술적 실수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했다면서 앞서 밝힌 정보를 부정했다. 115일 당국은 사망자 225명으로 수정 발표했다. 그리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두 명의 NSC의 부의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번 전국적 시위의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LPG가격의 상승에 대한 민생 시위라는 1단계와 이 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모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2단계, 나아가 투쟁에서 승리한 토카예프가 국내를 향해 새로운 체제(new regime)를 모색하기 시작한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1단계 상태였던 민생 시위 14일 밤 이후부터 2단계로 이행, 5일 밤에 토카예프 대통령이 CSTO에 대해 평화유지군 부대 파견 요청한 시점부터 긴박감은 최고조에 이르렀을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토카예프는 이때부터 이른바 반정부 세력, 시위폭도 등을 싸잡아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일망타진하는 강경진압으로 치달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곧바로 주권국가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군 파견을 요청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이 소요 사태 중 외국군의 영향아래에 있지 않았다는 정보를 흘러 내보내면서 독자적인 새로운 체제 만들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권력은 순수한 민생시위도 노린다

시위 첫 날인 12일의 시위는 자연발생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위를 처음으로 소개한 노바야가제타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 상승, 도시지역 주택가격 상승 등으로 202111월 인플레이션 비율은 전년대비 8.9%에 달해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2021년 가을 이후 자동차용 널리 사용되는 LPG가격, 휘발유 가격 등 연료가격의 급등이 벌어졌다.

휘발유보다 가격이 저렴한 LPG를 연료로 하는 차량이 많은 카자흐스탄에서는 LPG가격이 주목의 대상품이었다. 20213월까지 서부 망기스타우 주의 LPG상한 가격은 1리터 당 60텡게(164)였지만, 12월 말에는 100텡게(273 ), 11일에는 120텡게(328)로 급등했다.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 LPG가격 인하 요구 시위행동이 벌어졌다.

시위의무대가 된 망기스타우 주의 자나오젠에서는 집회는 불법이라는 당국자의위협에 굴복, 곧바로 시위는 침묵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만의 파도는 망기스타우 주 내 전체로 퍼져 나갔다. 2021년 가을 인구조사에 따르면, 28세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53.69%나 차지하고 있어, 카자흐스탄에서는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매우 높아 시위 규모의 확대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 30년 장기집권 반() 나자르바예프 움직임

LPG이하 합의만으로는 시위를 종식시킬 수 없었다. 이미 시위 초기에 정치세력이 끼어들어 정치적 이용을 위한 폭력적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정권 내부 노선의 대립, 권력투쟁이 이 항의시위 활동을 정치적인 선동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15일 저녁에는 적어도 상업도시 알마티에서는 폭도들의 잘 조직된 행동이 나타나 중요한 행정시설, 인프라, 통신자산의 접수가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국민을 위한 특별 연설에서 2019년에 30년 가까이 통치를 해오다 사임을 한 후 국가 보안부대에 대한 권력을 유지하는 안보평의회의 의장직을 나자르바예프가 맡아 사실상 수렴청정을 해왔다. 토카예프는 이번 소란을 계기로 자신이 전임자가 맡고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명실상부, 이제부터는 토카예프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만들어 이끌어 가겠다는 선언이다.

토카예프는 처음 대통령 취임 당시에는 듣는 귀를 가진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번 시위 배경에는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해 나자르바예프에 의한 지배 체제에 변혁을 가져와 보자는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 NSC 내부 혼란

불가사의한 것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조카로 NSC 1 부의장을 맡고 있던 사마트 아비쉬(Samat Abishj)가 경질되고, 그 후임에 그의 부하인 마라트 오시포프(Marat Osipov) 임명되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음에도 불구하고 8NSC가 실제로 아비쉬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계속 제1부의장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후 17, NSC는 아비쉬의 사임을 발표했다. NSC는 옛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의 흐름을 계승하는 치안기관으로 국내 치안유지의 요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자르바예프의 복심과 조카가 넘버원과 넘버 투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인자 마시모프가 체포되어 아비쉬가 사임한 이상 나자르바예프를 지지하는 지주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NSC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이 치안부대의 불가해한 행동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보도에 따르면, 5일 갑자기 알마티 공항에서 보안 부대가 사라지거나 같은 날 낮에 시위를 감시하던 경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진 뒤, 조직된 폭도가 등장해 정부기관 등에 돌격하도록 가 되었다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NSC 간부가 한때 치안활동을 포기시키고, 그 쟁점에 범죄조직과 결탁해 항의 시위활동을 폭동으로 마련한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자르바예프의 실각된 조카가 이번 소동을 조직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이 NYT에 나타나 있다.

토카예프에 의한 나자르바예프의 안보 평의회로부터의 추방이나 NSC의 마시모프 해임에 대한 보복으로서, 부모 나자르바예프 세력이 토카예프에의 쿠데타와 같은 소란을 일으키려고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5~6일 폭동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설이다.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항의 시위활동의 정치이용의 진정한 발단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알 수는 없다. 토카예프 측이 항의 시위 활동을 마시모프 등이 만든 것이라면서 해임조치 등을 하자 이에 맹반발한 일부가 폭동유발로 움직였는가?

아니면 항의 시위 활동을 이용해 토카예프 정권 타도로 움직이려고 했던 마시모프 파벌의 움직임을 조기에 잡은 토카예프 측이 마시모프들을 배제했는데, 그에 대한 반발이나 보복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강렬했는지 지금까지 전혀 알려졌거나 전해진 것이 없다.

*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평화위유부대 파견을 요청, ?

15일 밤, 토카예프 대통령은 사태의 악화로부터 1994년에 결성된 군사동맹인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대해 테러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요청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CSTO의 의장국인 니콜 파쉬냔(Nikol Vovayi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는 일정 기간 CSTO가 평화유지부대 파견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사국이 '침략(안전, 안정, 영토보전 및 주권을 위협하는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의 집단적 자위권을 규정하는 동 조약 제4조가 발동되는 것은 19925월에 옛 소련 구성하고 있던 공화국 6개국이 조인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CSTO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동맹이기 때문에 토카예프는 스스로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CSTO가 파견한 것은 약 2500명으로 중요시설과 사회기반을 경호할 목적으로 러시아 공수부대도 투입됐다.

아마 토카예프가 CSTO에 외부 지원을 요구한 것은 시간적 제약과 치안 부대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 속에서 극도로 서둘러 결단한 결과라는 지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또 다른 정보 에서도, “토카예프가 CSTO에 의지한 것은 치안 부대의 힘을 기대할 정도로는 의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며, “아마, 카자흐스탄 국내에는 의지할 수 있는 조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럴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CSTO군을 자국 내에 투입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국 내에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토카예프는 10일 개최된 CSTO 정상회의에서 테러전쟁이 우리나라에 대해 행해졌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국제테러가 '자연발생적인 항의 시위행동을 가장하고 종교 과격파 , 범죄분자, 무법자의 도적, 약탈자와 함께 나타나 대규모 소동이 전개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확실히 국제 테러의 침략을 목격하고 있다며 소란에 참가한 전투원이 해외 테러리스트의 캠프에서 훈련된 것이라는 의견을 올렸다. , 2014년 봄 우크라이나 위기를 염두에 두고, 푸틴은 CSTO 회원국 내 테러리스트와 범죄자에 의한 소란을 '침략'으로 자리매김, 집단적 방위권이 기능하는 데 자신감을 보였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푸틴이나 토카예프의 주장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이번 소란은 나자르바예프와 토카예프의 '이중권력 체제'의 타파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소란이 되어 표면화된 것으로 본다.

* 3단계로서의 새로운 체제(new regime)

111일 토카예프 현 대통령은 비디오 영상을 통해 국회의원들에게 연설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틀 후에는 CSTO 합동평화유지대의 점진적 철수가 시작된다. 철수에는 약 10일 이상 걸리지 않는다면서 군대, 법집행기관, 국가안전보장기관, 외국정보기관의 일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토카예프는 전임자 나자르바예프(수렴청정의 권력을 유지)의 대규모 기업군과의 밀착을 얘기하면서 국가 경제 건설에 이바지 했다면서도 이들 기업군의 독과점 등으로 자유로운 시장 발전은 현저하게 제한되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칭찬과 함께 날선 비판을 했다.

그는 이어 행정 시스템의 포괄적인 개혁의 필요성과 관련, “채용, 승진의 진정한 원칙은 실력주의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임자 나자르바예프가 만들어 온 시스템의 결함, 연고주의의 실태를 엄중히 비판했다.

토카예프는 새로운 총리에 전 제 1부총리를 지명하고, 의회의 승인을 거쳐 새로운 내각이 발족했다. 16명의 각료에 7명의 새로운 각료가 등용됐다. 외교부, 국방부, 내무부 등의 각료는 그대로 유임됐다.

그러나 전임자 나자르바예프 패밀리 일원인 산업-인프라 발전부 장관은 실직됐다. 또 에너지부와 법무부 장관도 물갈이 됐다. 에너지부장관은 이번 민생시위의 배경인 연료가격의 인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태이지만, 전임자의 기업군과의 긴밀 관계 끊기가 실질적인 경질의 이유인 듯하다. 16부처의 장관 중 7명을 교체했지만, NSC를 중심으로 한 치안기관의 재편은 아직 이뤄지지 않아 토카예프 독자정부라고 말하기엔 아직은 이른 편이다. 나자르바예프와의 완전 결별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 토카예프, 지정학적 의의와 러시아에 대한 보상

나자르바예프의 수렴청정을 대체하려고 했던 토카예프는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 국가 러시아의 푸틴을 병풍으로 삼음으로써 카자흐스탄도 권위주의 국가의 파이프라인에 단단히 연결될 수 있게 됐다.

토카예프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중국과 러시아라고 하는 권위주의 국가에 접근하는 것만이 스스로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권력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는 국내에 반정부 활동을 가하는 다른 CSTO 회원국(아르메니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정상에 있어서, 스스로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CSTO, 즉 러시아의 푸틴과의 제휴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키는 결과가 됐을 것이다.

문제는 자국 내에 있는 내셔널리스트의 반발을 유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은 나자르바예프가 대통령이었던 201710월 카자흐어 공식 표기를 키릴 문자에서 새로운 라틴 알파벳으로 전환하는 것을 정령으로 승인했다.

당초 계획에서는 새로운 문자로의 이행기는 2025년까지로 되어 있었다(그 후, 개혁 완료의 공식 기한은 2031년에 또 연기). 게다가 202112월 초에 카자흐스탄 의회는 비정부 조직의 편지, 광고, 메뉴, 도로 표지(지리적 지명 포함)는 카자흐어 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법안을 승인 했다.

이 때문에 푸틴은 1223일에 실시된 기자 회견에서 카자흐스탄 텔레비전의 질문에 대답하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카자흐스탄은 가장 친밀한 동맹국 중 하나다.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독특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적대적인 관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방향성을 갖고, 이러한 질 높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은 언급하면서도, 굳이 토카예프의 이름에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푸틴은 러시아어의 배제로 이어지는 12월의 카자흐스탄에서의 법제화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일설에는, 2021년 초에, 카자흐스탄에는 약 350만 명의 러시아인이 있어, 인구 전체(1900만 명) 94%가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다며 푸틴이 분노를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같은 달 28일 직접 면담 방식으로 개최된 독립국가공동체(CIS) 회원국의 정상과 회담에서도 푸틴은 토카예프를 냉담하게 대했던 것 같다.

이러한 미묘한 상황 속에서, 토카예프가 푸틴에게 지원을 요구한 이상, 그 대가는 크다고 추측된다. 푸틴의 속뜻을 어느 정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키릴 문자로부터의 이탈은 러시아와의 결별로 이어지는 한 걸음으로 푸틴은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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