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전쟁과 '가짜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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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과 '가짜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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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게임된 ‘프레임 전쟁’에서 이겨야

▲ ⓒ뉴스타운

지금은 프레임 전쟁의 시대다. 특히, 정치는 프레임 만들기다. 프레임이란 ‘틀’ 혹은 ‘액자’를 말한다. 프레이밍은 흔히 ‘틀짓기’라고 해석되며, 정치의 승리는 프레이밍에 달려있다고 한다. 즉, 어떤 이슈를 어떤 틀에 넣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현대정치는 더욱 그렇다.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은 어떤 사고의 틀을 주면, 사람들은 다른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 주어진 틀에서 인지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려고 든다며, 사고 프레임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

예전에 우리는 이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었다. 어젠다 세팅, 즉 의제설정에서 헤게모니를 놓지 않았다. 인텔리와 엘리트들이 우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텔리와 리더의 권위를 인정했다. 정당한 권위가 인정되는 시대였다. 공존의 룰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반전됐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좌파적 성향을 가져야 지식인입네, 하는 경향이 유행이다. 대학에서 의식화 교육은 80년대 이래로 기본 교양으로 간주되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전교조가 합법화된 후에는 과거 시대를 부정하는 교육이 참교육이라는 미명하에 25년 이상 지속되었다. 때로는 소낙비처럼, 때로는 가랑비처럼 사회를 붉게 물들였다.

이제 세대가 바뀌자, 우에서 좌로 좌표가 상당히 이동했다.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부터 변질되어갔다. 자신이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교육하고 있다는 것도,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개조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교육은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그들은 그것을 교육 민주화라고 프레임지었다.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북한식 혹은 소련식 인민민주주의를 향해 항해했다. ‘국정교과서’논란 또한 ‘틀짓기’게임의 결과로 나온 용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막장으로 몰아간 것 또한 ‘국정농단’이라는 프레임이었다.

이데올로기 혹은 이념전에서 프레임의 힘은 절대적이다. 요즘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서 그들은 외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일견 ‘그럴듯한’ 프레임에 점령당한다. 요즘같이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에는 더욱 더 감성적 호소가 먹혀든다. 노래를 통해, 마치 놀이인양 유희인양 은밀한 선동을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 혹은 나와야 하는가. 일단 그 프레임에 갇히고 나자, 대통령도 동네 아줌마와 다름이 없다. 초등학생까지 ‘야, 박근혜’라고 불러 제끼며 하야하라고 외친다. 광장과 거리에서 모든 권위와 공권력을 무시하고, ‘촛불의 명령’이니 식언을 하며, 인민재판을 정당화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강변한다.

언론은 거기에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묵인한다. 어느 쪽이 숫자가 더 많은가, 계산기를 두드린 후, 장사가 된다고 판단되는 쪽에 줄서고 베팅을 한다. 이미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언론의 자리를 스스로 걷어찼다. 언론은 프레임 전쟁의 전위병이자 주전병력임을 자처한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뉴스’도 그런 프레임 전쟁에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인상의 오류라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언론은 더 이상 관찰자나 감시자가 아닌 필드의 야전병이 되었다. 그들에겐 지원할 아군과 공격할 적군이 존재할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프레임에 침몰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일단 선출된 권력은 모든 개개인과 일대일로 대등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본질이고 속성이다. 사회에는 리더가 필요하고 그것에게 합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이고 약속이다. 사회가 계약을 맺은 것이다.

최소한의 공존의 룰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 그것은 공존의 거부다. 인민재판도 정당한 민의의 집행이라고 프레임 짓는다. 그리고 법치 위에 놓는다. 반칙이다. 인간 내부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와 일반화는 위험하다.

우리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강력한 추동력을 생성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프레임은 무엇인가. 법치는 불가피하며, 이는 모두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에 의한 지배’다. 법을 부정하는 가짜 법치. 그것이 지금 탄핵사태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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