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센터 모임이 역사적 이벤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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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 모임이 역사적 이벤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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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팩트를 중요시하는 모든 분들께 5.18팩트 자료를 나누어드리고 설명해 드리는 매우 기쁜 날입니다. 7명의 연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5.18의 진실을 설명드립니다. 이제는 외롭지 않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모임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2002년에 제가 5.18을 북한이 개입된 폭동이라 한 마디 했다가 5.18단체, 민주당, 오마이뉴스, MBC, 광주의 검찰-경찰-법원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린치당하고 가족을 피난보내는 등 벼라 별 고초와 수모를 다 당했습니다.

물론 서울사람이 광주에 까지 끌려가 감옥까지 살았습니다. 빨갱이 떼거리들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당시의 사회, 당시의 법은 사실상 다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5.18에 관한한 언론의 자유가 압류당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우리는 어떻게 해서 백주에 버젓이 반-5.18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빨갱이 세력에 의해 압류 당했던 언론-표현의 자유를 되찾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5.18에 대한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많은 청년들과 국민들이 5.18은 무장폭동이고, 북한특수군이 주동한 반란사건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있기 때문에 빨갱이들이 벌이는 '5.18 사기극'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5.18의 사기극'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국민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입만 열면 5.18단체들이 버스 타고 올라와 폭력을 휘두르고 법에 걸었기 때문에 속으로 냉가슴만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압류 당했던 언론-표현의 자유가 2012년 12월 27일부터 새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대법원 판결을 끝으로 1,2,3심 모두 제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만일 5.18단체들이 2008년에 저를 이 사건으로 고소-고발만 하지 않았더라면 법정투쟁은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5.18에 대한 언론-표현의 자유는 지금도 예전처럼 계속 압류돼 있을 것입니다. 저와 서석구 변호사님을 포함하여 매 공판마다 나오셔서 재판에 함께 임해주신 회원님들 그리고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이 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마음 졸이며 고생은 했지만 그 고생이 헛된 고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안양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단독판사가 지정되었습니다. 그 판사가 제게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피고인이 낸 답변서를 꼼꼼히 읽었습니다. 피고인은 제 말을 허트로 듣지 마십시오. 이 재판에는 반드시 변호인이 필요합니다. 원하시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드리겠습니다." 선정된 국선변호인에 갔습니다. 그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4권짜리 다큐책을 썼는데 나오자마자 고발되고 기소된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 억지입니다. 하지만 5.18은 특별합니다. 사회분위기로 보아 아마 구속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기분이 상했습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변호사들에 간접 전화를 했지만 자신이 없다며 거절하였습니다. 서석구 변호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쾌히 승낙하면서 그 대신 무료변론을 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처음 판사는 다른 곳으로 전근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독판사가 첫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는 답변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마치 이상한 사람이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저를 쌀쌀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방청석에 오신 분들도 천대를 받았습니다. 좌석의 반만 채우고 나머지 방청객들을 밖으로 나가라 하였습니다. 서석구 변호사님이 항의하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판사에게 90분 동안의 교육적인 변론을 하였습니다. 90분 동안 듣더니 재판장의 자세가 누그러지고 다음부터는 모든 방청객들을 수용하겠다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살벌했습니다.

며칠 후, 그 판사가 서석구 변호사님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 재판은 단독판사가 다루기에는 벅차니 합의부로 가자 의견을 물었습니다. 합의부(3명의 판사)가 구성되었고,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첫 재판에서 재판장의 눈길이 매우 싸늘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했습니다. "피고인은 지금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지만 언제라도 구속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기분 나쁜 말이었습니다. 저는 모두 5차례에 걸쳐 답변서를 냈고, 방대한 증거자료들을 제출하였습니다. 서변호사님은 영혼으로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재판장은 매우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제가 실수로 빠트린 증거자료까지 지적해주며 보강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재판은 1심에서 꼬박 2년을 끌었습니다. 15회의 1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재판부의 허락으로 북한자료를 마음껏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끝날 때쯤, 재판장이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매우 부드러웠습니다. 아마도 판사들에 많은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11년 1월 19일, 무죄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북한특수군이 600명 규모로 왔다는 확신은 재판을 받으면서 비로소 갖게 되었습니다. 재판부의 도움으로 북한자료들을 복사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음미할 수 있었고, 이를 다시 수사기록들과 대조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고발덕분으로 "솔로몬 앞에 선 5.18"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5차에 걸쳐 법정에 제출한 답변서를 요약 정리한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들의 고발로 마음도 많이 다쳤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따지고 보면 5.18단체들의 고발이 없었다면 북한자료를 찾아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도 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북한특수군 600명 설은 2010년 발간된 "솔로몬 앞에 선 5.18"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유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임천용 회장이 2006년에 처음으로 600명설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지만 이는 그가 광주에 다녀갔다는 상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사실 저 역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오자 채널A와 TV조선이 '어찌된 일이냐, 말 좀 들어보자'는 식으로 저를 초대하였습니다. 2013년 1월 저는 4회에 걸쳐 방송에 출연하여 5.18광주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왔고, 5.18바이블로 알려진 황석영 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북한 책 2권을 모자이크한 것이라는 사실을 방송했습니다.

제가 남북한 자료들을 가지고 나가 설명하자 제 설명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2개 종편 방송은 그 후(5월) 탈북자들은 물론 5.18을 연구한 인사들을 차례로 초청하여 5.18 진상규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5.18단체들과 민주당 및 광주시장 등 좌익세력이 나서서 정부에 압력을 넣고 5.18진상을 규명하려는 국민들을 탄압하게 시작했습니다.

5.18에 대한 기존의 판결을 고수하려는 좌익세력과 5.18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애국세력 사이에 팽팽한 다툼이 전국에 확산되었습니다. 이 찰나에 민주당과 5.18단체 그리고 좌익단체들이 나서서 정부를 압박하였고, 광주시장 강운태가 국방장관에 북한군 600명의 개입여부를 밝혀 달라 압박하였습니다. 이에 김관진은 2013.5.23 및 5.30. 2회에 걸쳐 "5.18에는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 종합보고서'의 결론"이라고 대국민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5.18단체, 광주시 그리고 민주당이 승세를 잡았고, 2013.6.14. 민주당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종편방송국들에 강력 항의하였습니다. '5.18대책위'는 국방장관의 발표를 근거로 5.18을 폭동이라 한 사람들, 5.18에 북한군이 왔다는 표현을 한 사람들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와 아울러 국무총리는 "5.18에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며 "정부판단과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을 역사 왜곡이라 규정함과 동시에 역사왜곡 행위는 처벌한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에 고무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9명의 만장일치로 북한군 개입을 증언하는 방송프로를 진행한 2개의 종편에 대해 중징계를 내림과 동시에 방송진행자로 하여금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압박했고, 그 결과 방송국들은 옳은 진행을 하였음에도 좌익세력에 굴복하여 사과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결국 또 정부기관들이 나서서 언론-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진리탐구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분서갱유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질서를 파괴하는 이념적 쿠데타가 발생하였습니다. 저는 국무총리와 9명의 방통심의위원 그리고 국방장관을 고발조치 하였습니다.

5.18단체들이 저와 다른 동지들을 고발해 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우리 모두는 즉시 반대소송을 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증거자료가 있지만 국방장관의 말은 허위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을 소송의 근거로 삼은 모든 재판은 반드시 패소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만큼 확실하고 자신 있는 팩트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7.18)의 행사는 엄동설한에서 동토를 뚫고 나온 새싹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첫 행사입니다. 정부는 절대로 이 일에 나서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내일 오시는 분들의 얼굴에서 그 희망의 빛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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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2013-08-05 09:40:59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 기사다. 한민족의 갈등을 만들면 일본 열도는 잘된다. 왜가리가 배운 역사 교훈이다. 우리의 역사적 교훈은 한반도가 평화로우면 동아시아가 세계의 주역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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