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겨우 한 달여가 남았는데 국민들이 갑자기 짜증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치, 미래정치를 부르짖으며 뭔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것 같이 보여 지기 때문이다. 정치쇄신을 했다며 안철수 후보 측에 구걸 같은 읍소를 했던 민주통합당이 구태정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국민을 선거판 전유물처럼 여기며 뭐 던지 “국민에게 물어보라”던 안철수 후보 측 역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때그때 기분대로다. 뭐가 쇄신이고 뭐가 미래정치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며 국민들이 화를 낸다.

정치공학적 작전을 쫓아 행하는 설익은 단일화는 조심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 한 채 멋대로 덥석 손을 잡더니만 불과 며칠 안 돼 단일화 중단이다. 몰론 정치 아마추어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 정도로 이해하더라도 이건 국민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다.

남은 한 달여 동안 국민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의 정책을 살펴야 하는지 시간이 없는데도 단일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국민에게 투표 시간을 늘려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작 국민의 알권리를 묵살하고 있는 것은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선거에서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다양하겠지만 출마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 사실과 각 후보의 주요 정책을 검토 비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뭔가. 누가 야당의 후보가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르는 권리침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입만 열면 국민의 뜻이라고 하니 웃기는 코미디가 아닌가.

후보 단일화로 아까운 시간을 질질 끌 여력이 없다. 조금이라도 국민을 생각한다면 단일화건 아니건 가부간의 결판을 빨리 내야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검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국민들의 피로도 상승은 또 한 번 정치에 신물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벌써부터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어쩌면 현실정치보다 쇄신을 부르짖는 정치에 더 실망감을 가질 수 있다.

이래서는 정치쇄신도, 미래도 없다. 우리는 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었다. 민주통합당이 싫다고 뛰쳐나온 송호창 의원을 받아들인 안철수 후보 측이 그 당과 손을 잡겠다고 했을 때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설령 단일화가 된다 해도 또 다른 후폭풍이 도사리고 있음을 이번 사태를 보면서 직감할 수 있다.

정치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밖에서 보면 다 될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정치권으로 발을 들여놓은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겪은 결과다. 때문에 급조된 개혁이 실패하고, 성급한 쇄신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 충분한 공감대, 충분한 검토, 충분한 세력 확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국엔 현실정치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전례가 있었음에도 모두 결과는 똑 같았다.

대통령 선거는 자치단체장 선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양한 이해집단이 충돌하고, 지역 간 생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항상 생각과 현실이 다르게 나타난다. 김대중, 이회창, 문국현을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이 도전과 실패를 맞보았다. 결국엔 야합이 아니면 정치공학적 짜깁기로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지도자들은 비굴하지만 그 길을 택했다.

소통과 동서통합이라며 나타난 이러한 권력의 결과는 비리공화국도 모자라 나라를 온통 양극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트려 버렸다. 이런 결과를 국민들이 짜증을 내고 있는데 지금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20대가 이런 아이러니를 시대적 정치 트랜드로 받아들일까 불안하다. 어른들은 말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5년 아니 10년 후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이라고. 어린 세대들이 받아들이는 현실감이 과거는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한 것처럼 몽땅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눈부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피땀으로 이룬 어른들의 공은 없고,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 속에 살아가는 잘못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목숨 건 훈계’라는 용어가 섬득 할 정도가 됐는데도 지도자들은 또 일부 후보들은 사탕발림의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정신교육의 필요성을 망각한 채 젊은 청년들을 정치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걱정인 것이다.

바라 건데 지금이라도 국민을 농간하는 행동들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모든 후보가 페어플레이로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 하던가, 아니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라면 깨끗하게 사퇴하는 것이 이 나라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길일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로 백번을 테이블에 앉으면 뭐 하겠는가. ‘같이 있을 때 칭찬하고, 곁에 없을 때 존경하라’는 문구가 오늘따라 유달리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도 이런 선거문화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