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을 지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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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을 지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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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끼던 파일들 중 얼마는 사라져간다

하나 둘 파일들을 지워나간다. 언제 이렇게 많은 파일들이 내 컴퓨터에 모였는지 나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료파일들이 많다. 지워나가는 파일의 제목들을 보면 마치 그 분야에 대한 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나는 빠른 속도로 파일들을 지워나가고 있지만, 이 파일들 하나하나가 제각기 내 컴퓨터에 들어오기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내 컴퓨터에 저장이 된 이 파일들은, 한때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을 가졌기에 들어온 것이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파일들을 찾고, 내용의 가치를 확인하고, 갈무리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거의 모든 파일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내 것이 되었었다. 나는 이제 그 것들을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다.

한때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 분야들이 이제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모았던 자료들을 숙독하면서, 어떤 분야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해를 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떤 경우는 흥미를 읽어버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 언젠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도무지 그 자료들들 읽을 만한 시간이 없기도 할 것이다.그러나 그 모든 이유 중에서 가장 많은 경우는, 내 관심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때 무척 귀중한 것으로 생각되어 어렵게 찾아내고 다운받았던 것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변하여 버린 것이다. 그 파일의 내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진 때문이다. 내 관심도 세상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파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그렇게 변해버린 때문이다.

자료를 정성껏 갈무리를 하지만, 자료가 많아질수록 디렉토리도 점점 더 복잡해진다. 필요로 하는 파일을 찾기가 어려워질 정도가 되면 슬슬 파일정리를 해야만 한다. 나는 관심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디렉토리 역시 참 복잡하다. 그 중에서 가치가 덜해진 것들을 지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 때는 많은 시간을 들이며 힘들게 찾았던 자료들. 그것을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며 갈무리를 했던 자료들을 지워나가면서 조금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때로는 자료들만이 아니라 내가 쓴 글들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나는 수시로 많은 글들을 쓴다. 예전부터 가끔 일기형식으로 써오던 글에서부터, 내 삶을 어느 정도 정리된 형태로 기록한 수필들, 그리고 가끔 여기저기서 들어온 요청에 맞추어 쓴 청탁원고,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상에 대해 행했던 발언의 흔적들. 성명서, 보도자료, 신문기고 원고, 인터뷰 준비를 위해 정리했던 자료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글들을 되돌아보니, 시대에 대해 행했던 발언들이 가장 가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 글을 쓸 당시에는 시간을 다투며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해서, 재빨리 글을 써서 이곳저곳에 보내곤 했던 글들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식기 전에 재빨리 대응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글들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새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 것이다. 바뀐 세상에선 옛 글들 중 많은 것이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그런 글들을 지운다. 삶은 앞을 향하는 것이고, 꼭 보존할 가치가 없는 과거의 쟁점은 더 이상 필요 없기 마련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글들은 몇 남겨 놓는다. 많이 정이 들었던 글들이다. 그러나 그 글을 위해 필요했던 자료들은 대부분 지워버린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간신히 살아남은 파일들 중 또 얼마를 지우게 될 것이다.

컴퓨터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한다. 난 업무를 주로 컴퓨터로 진행하기 때문에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면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업무용 컴퓨터를 깔아준 회사에 A/S를 부탁한다. 혹시 프로그램상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개의 경우 A/S직원들은 먼저 백신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보라고 한다. 그러고도 계속 느리면 다시 연락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를 아는 직원들은 “아이고 파일부터 좀 지우세요” 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들도 “요즘 컴퓨터의 처리속도는 메모리에 문서파일이 아무리 많아도 속도엔 지장이 없어요.”하고 장담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 컴퓨터를 보고 나서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이 정도면 문제가 되죠...” 그러면 또 파일을 지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컴퓨터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 파일을 지울 만큼 지우고, 다른 프로그램은 일체 설치하지 않는데도 업무용 프로그램이 자꾸만 느려질 때이다. 나를 아는 직원들은 말한다. “그냥 신형으로 바꾸시지요.” 그들은 소프트웨어만 담당하지 하드웨어를 팔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없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바꿔야 한다. 그래서 평균 2년 반마다 컴퓨터를 바꾸게 된다.

문제는 컴퓨터를 바꿀 때 하는 그들의 말이다. “업무용 프로그램과 함께 다른 파일도 옮겨드리지만, 간혹 파일이 빠질 수 있습니다. 파일 몇 개가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왜 파일이 빠지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한글 프로그램과 업무용 프로그램이 충돌하는 것이 해결이 덜 되었나보다. 그래서 노트북을 장만해서 개인용 데이터는 그곳에 저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책상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했다. 결국 노트북은 아이들 장난감이 되었다.

그래 내가 아끼던 파일들 중 몇 개씩은 사라져야 한다. 일부는 내 의도로 일부는 착오로. 그래서 컴퓨터를 바꾸기 전날이면 특히 소중한 파일들을 플로피에 백업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파일을 백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이 작업은 파일들에 대한 내 사랑의 순번을 메기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일부 파일을 삭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를 가면 세간들 중 일부는 버리게 된다. 새 컴퓨터로 이사를 가면 일부 파일은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새 컴퓨터에 남긴 파일들의 디렉토리도 새롭게 만들 것이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는 내용들이 보다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위치를 차지한 그 파일들이 내 삶에 더 큰 비중을 가질 것이다. 종일 컴퓨터만 바라보고 생활하는 내 삶도 그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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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 2003-10-30 11:02:30
일상의 잔잔함을 느낄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 번씩 들러도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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