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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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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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탈피하고 픈 마음에 관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보람된 일이긴 하지만, 순간순간이 긴장과 피곤의 연속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조그마한 징후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서 늘 집중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진찰결과 그냥 단순한 감기로 생각이 나더라도 열성을 다해 설명해 주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녹음기라고 생각한다. “감기는요...”부터 시작해서 잘 쉬어야하고 잘 먹어야 하고... 온갖 시시콜콜한 설명을 한바탕 늘어놓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에 만족이 오지 않는 내 성미는 환자의 얼굴에서 지겨운 표정을 읽기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끝을 내게 된다. 때로는 간호사들이 사인을 보낸다. “원장님 밖에 급한 환자가...”

실은 급한 환자라기보다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돌아서 나가는 환자를 향하여 마지막 한마디를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의사항 설명 드린 것 다 기억하시죠?” 그렇게 확인을 해야만 다음 환자를 보아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 자신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 팔자이다.

환자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혹 환자를 고문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같이 의료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내가 정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도 별별 생각을 다해본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고 환자의 눈을 마주대하면 그런 생각은 어디론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사람이 눈과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 하는 것은 중요한가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목이 쉬어있다. 녹음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으면 테입이 늘어나듯이, 내 성대로 늘 피로로 쌓여있는 것이다. 처음 개업을 했을 때 조용한 병원에서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환자가 늘어나고 기다리는 환자들의 웅성거림이 부담이 될 때에도 내 버릇은 변하지가 않는다. 저녁엔 목이 아프고 배가 당긴다. 그래서 목소리를 작게 하는 연습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환자의 진료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를 도와주는 간호사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거친 말을 하고 간 환자에게 마음이 상한 사람, 집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긴 사람들이 늘 있는 법이다. 병원에 갖추어야 할 비품도 생각보다 많다. 의료보험 청구... 병원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늘 관심을 가져야 하다.

진료실은 내가 세상과 만나는 작업공간이다. 그래서 난 진료실에선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한가한 시간에 직원들이 가져다주는 과자조차도 먹지 않는다. 진료실에선 뭔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위안은 필요하다. 나는 인테리어 설계를 내가 직접 했다. 엄청난 고생 끝에 진료실에서 고개만 들면, 창밖이 보이도록 했다.

나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배려를 했지만, 실제로 그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거의 없다. 환자가 있으나 없으나 나는 늘 무언가에 집중하고, 항상 무엇인가에 바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가슴 한가운데가 빈 듯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천성적으로 한가로이 세상을 거닐지 못한다. 가끔 한가로울 땐 무언가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나를 애타게 찾는 것은 아니다. 나 홀로 세상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 한해 두해 그런 삶이 지속되면서 나의 삶은 점점 단순해져간다. 병원에서 환자들만 보고 사는 살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나 의료문제에 대해서만은 조금의 공부를 해 보았다. 이젠 자칭 의료사회학 전문가다.

세상을 짝사랑한다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녹음기 같이 살아가지만 나도 사람일 뿐이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학창시절의 그 자유분방함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때로 대기실에 환자가 없을 때 가운을 벗어버리고 병원 앞 아무버스나 타고 몇 정거장을 달려가다, 금세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삶에 대한 갈증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예전과 같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수만은 없는 것이다. 진료시간은 환자와의 약속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은 지켜야 한다. 혹 어떤 이가 그 약속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한 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점심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아픈 몸을 참으며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남보다 진료시간이 2시간이나 길고, 공휴일에도 진료를 하는 나는 자유롭게 세상을 유랑하고픈 꿈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약속한 진료시간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가끔 간절한 소원을 이룰 때가 있다. 나에게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으면서, 세상구경을 할 수가 있을 때가 있다.

바로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진료가 끝난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듣는다. 말이 연구실이지 요즘 경영난을 겪는 대부분의 병원들은 교수님께 연구실을 따로 주는 곳이 거의 없다. 결국 진료실이 연구실이 되는 셈이다. 나는 내 진료실에서 교수님의 진료실로 자리만 옮겨서, 저녁 늦게까지 또 공부를 한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 춘천에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과목이 있다. 한 과목은 의학과가 아닌 학생들과 같이 들어야 하는데, 그 쪽 학생들의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날은 확실한 알리바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 날은 내 마음에 나는 든든한 면죄부를 붙이고 병원을 떠난다. 직원들에게 대학원 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웠음을 말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리고서 아내와 함께 달려가는 ‘춘-천-가-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 시구처럼, 춘천으로 향한 길의 양측엔 아름다운 풍경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기만 한다. 나는 한달에 한번 있는 그 소중한 기회를 통해서 세월의 변화를 느끼고, 귀중하지만 동시에 답답한 내 진료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잠시 어디론가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그렇게 소중하고 제한된 나의 일탈을 즐기곤 한다. 내가 하루하루를 지켜가는 내 삶이 허술하지 않고 책임감과 열정으로 가득한 것이기에, 가끔씩 그곳에서 벗어나는 마음 또한 이렇게 시원하기만 한 것이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받으며 나는 그렇게 답답해진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낸다.

다음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던 할머니가 “선생님 박사 언제 끝나요?” 하고 물으면, 나는 약간 자랑스럽고 약간은 미안한 목소리로 “할머니 아직 한참 멀었어요!”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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