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1운동의 발상지 창영초등학교라는 역사성 아는 이 적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인천 3·1운동의 발상지 창영초등학교라는 역사성 아는 이 적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교육 소홀로 이런 사실 아는 학생이나 시민 거의 없어

지난 3월 1일 오전 10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3·1절 기념식과 경축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 시각 창영동 창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3·1절 노랫소리가 엄숙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수봉산 현충탑 앞에서는 보훈단체장, 군수ㆍ구청장, 시 간부 공무원, 학생대표 등 170여명이 모여 참배를 시작으로 3·1절 기념식이 있었고. 이날 오전 10시 30분에는 창영초등학교에서 500여명 모여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목소리 높인 "대한 독립 만세" 외침이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린 여느 3·1절 행사들과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날 창영초등학교에서의 만세소리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왜냐하면 이곳 창영초등학교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인천지역의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인 1919년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창영초등학교)와 인천공립상업학교(지금의 인천고등학교)학생들에 의해 본격적인 항일 만세운동이 인천에서 시작됐다.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이만용(10회 졸업생), 김명진(11회 졸업생), 박철준(〃) 등의 애국지사들이 만세운동과 함께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또 이들은 일제경찰이 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와 경찰서를 이어주는 전화선을 잘라내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당시 인천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통치와 병참기지화의 핵심지역으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뿐 아니라 육군 사단병력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감시와 탄압이 심했고,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일본인이어서 만세운동을 벌이기 쉬운 환경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시작된 만세운동의 불길은 일제의 총칼에도 굽히지 않고 거세게 이어져 나갔다.

3월 24일에는 계양면 장기리(지금의 계양구 장기동) 황어장터에서 심혁성, 이은선 등의 애국지사들이 주도해 만세운동을 벌이다 이은선 열사가 일제 경찰의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만세운동은 4월까지 치열하게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일로 체포돼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른 김명진(인천 고 11회 졸업생)선생은 이 해 7월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에 낸 상고문(上告文)에서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正義) 인도(人道)에 바탕한 의식 발동이지 범죄가 아니다"라고 떳떳이 밝혔다. 이 말은 1995년 이 학교 총동창회가 학교 건물 앞에 세운 '3·1 만세운동 발상지' 기념비에 비문으로 새겨져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역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가 있음에도 창영초등학교는 그동안 3·1운동 기념식장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위원회'가 동구청에 이를 제안하고, 구청이 받아들임에 따라 제자리를 찾게 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희환(45)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인천의 소중한 역사 중 한 편이 이 창영초등학교에 간직돼 있는 곳인데도 역사교육이 소홀해 이런 사실을 아는 학생이나 시민이 무척 적다“며 ”아무런 역사성이 없는 문화예술회관 같은 곳에서 3·1절 기념행사를 여는 것보다 앞으로 시 차원에서도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연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던졌다.

이날 문화예술회관에서는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의 선각자이신 죽산 조봉암 선생의 기념 꽃다발 전달에 이어 임병호 광복회 인천지부장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송영길 시장의 기념사, 인명여고 500명의 함창단의 3ㆍ1절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기념식이 진행됐다.

기념식이 진행되는 동안 야외광장에서는 인천국학운동시민연합 주관으로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으랏차차 3ㆍ1절 KOREA 태극기 몹'행사가 열렸고 3ㆍ1 만세운동 재현, 태극기 퍼포먼스, 유관순과 김구선생의 어록비 낭독, 태극기 나눠주기, 1인 감옥체험, 전통무예 따라하기, 한반도 지도에 응원메시지 적기 등 다양하고 유익한 체험행사와 전시가 진행됐다.

반면 창영초등학교에서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창영초등학교를 나와 인천세무서에서 인천경찰청 송림기동대(옛 동부경찰서), 배다리까지 1㎞ 정도를 걸으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드는 시가행진을 벌였다.

인천 3·1운동의 발상지인 동구 창영초등학교의 역사성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고사하고 인천시에서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역사의 중요성이 새삼 의심스러워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