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 열매는 짐승의 겨울 양식으로 남겨두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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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열매는 짐승의 겨울 양식으로 남겨두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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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연속 실패한 나의 상수리묵 도전기

 
   
  ^^^▲ 상수리열매
ⓒ 이종찬^^^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상수리 열매를 따다 놓았습니다. 이번엔 실패하지 말아야지 하는 각오로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모아둔 것도 얼마 안되고 무엇보다도 벌레가 너무 많이 나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상수리 열매가 담겨 있는 소쿠리 옆을 살펴보면 여기 저기서 애벌레들이 꿈틀대며 기어다닙니다. 얼마나 속을 갉아먹었는지 살이 피뚱피뚱하게 쪘습니다. 짧고 굵은 하얀 벌레들을 손으로 잡아다가 내다 버리는 것이 하루의 첫 일과처럼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바닥엔 썩어서 말라버린 상수리 가루까지 널려 있습니다. 그것들도 제가 치워야 할 것들입니다.

교동에는 상수리 나무가 정말 많습니다. 여기 사시는 분들은 9월 중순부터 산에 올라가 열매를 따 옵니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 몽둥이'나 '쇠 해머'로 상수리 나무를 두들겨 패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뜬구재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은 새벽에 선 잠을 깬다고 투덜대기도 하시더군요.

그나마 작년에 비해서 좀 조용하다는 게 이 정도 입니다. 작년엔 나무들이 엄청 수난을 당했습니다. 커다란 쇠 망치로 그렇게 맞았으니 온 몸에 골병이 들었을 겁니다. 하여튼 사람만큼 독한 생물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포크레인으로 쳐서 아예 나무를 뿌리채 뽑거나 부러뜨리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상수리를 10가마 이상 딴 분들도 많았습니다. 10가마를 묵 가루로 환산하면 100되가 됩니다. 묵 1되가 4-5만원 한다고 하니까 1년 농사 짓는 것보다 수지 맞는 일입니다. 이게 상수리 나무가 얻어 맞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가 먹을 것, 가족들에게 조금씩 나눠 줄 요량이라면 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열매들만 주워도 충분할 겁니다. 우리들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나무를 피멍 들게 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생명체라고 해도 감정은 있을 겁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상수리 나무를 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수리 나무를 때리면 산신령이 노한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매일 묵만 쒀서 먹을 것도 아닌데 필요한 만큼만 줍는 거지요. 작년엔 가족들과 함께 여러 차례 산에 올라가서 열매를 주워 왔습니다. 한 두 말 정도는 주워 온 걸로 기억이 됩니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같은 종으로 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상수리와 도토리를 같은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와 열매가 거의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열매를 자세히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 같은 곳에서는 도토리도 상수리만큼 크다고 하지만 교동에서는 크기가 다릅니다. 도토리가 상수리보다 훨씬 작습니다.

그리고 도토리는 길죽한 편인데 상수리는 동글동글하게 생겼습니다. 또 하나 밑에 붙어 있는 깍정이가 다릅니다. 상수리 깍정이는 크고 표면이 거친 반면에 도토리 깍정이는 작고 매끈하게 생겼습니다.

상수리로 묵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상수리를 밖에 내다 놓고 말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 이틀 후엔 껍질이 하얗게 변합니다. 그것을 평평한 돌로 깨서 껍질을 벗기는 거지요. 껍질을 벗긴 열매는 물에 담궈 둡니다. 몇일 후 상수리의 떫은 맛이 빠졌다 싶으면 방앗간으로 가서 갈아 버립니다. 갈아놓은 열매를 큰 대야에 담아 놓고 나서는 물을 붓습니다.

그 다음엔 고운 천 주머니가 필요합니다. 갈아 놓은 열매를 주머니 속에 놓고서 슬그머니 짜 버리는 거지요. 이렇게 해서 나온 물들을 대야에 담아 놓고 있으면 바닥에 앙금이 생길겁니다. 위에 있는 물은 따라 버리고 밑에 있는 앙금은 밖에 내 놓고 바람과 햇빛에 말리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묵 가루'입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들은 풍월, 어깨 너머로 지켜 본 실력으로 시도해 본 묵가루 만들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분명 순서대로 잘한 것 같은 데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걸로 묵을 쒀 봤더니 영 모양이 이상했습니다. 여기 저기 구멍이 뻥뻥 뚫린 게 현무암처럼 되었습니다.

'두 말이면 두 되의 가루는 나오겠다. 그러면 양쪽 집에 한 되씩 드려야지'하는 기특한 마음으로 해 본 노력인데 엉망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웃집 할머니 몇 분이 고구마 가루와 상수리 가루를 주셨습니다. 경험도 없이 뛰어 들었다가 기가 죽어 지내는 초보자들이 불쌍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양쪽 부모님들에게 고구마묵 가루와 상수리묵 가루를 한 되씩 드릴 수 있었습니다.

금년에도 '한번 해 볼까' 생각했는데 역시 안 될 것 같습니다. 묵 가루를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거든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산에 놔두면 산 짐승들의 겨울 준비 양식이 될겁니다. 괜히 남의 음식을 뺏느라고 힘 쓰지 말고 그냥 집에 있는 밥이나 먹으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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