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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향기 그득한 몽촌토성몽촌토성 성벽 ⓒ 뉴스타운 이인석^^^ | ||
한성백제시대 건립된 토성은 적으로부터 보호와 방어의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고 인근 풍납토성과 더불어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송파구 오륜동 88번지 3호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 297호로 지정되어 있다. 타원형의 야산 위에 진흙을 쌓아서 만든 성벽으로서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였고다.
경북 경주의 월성(月城)과 거의 흡사하지만 이보다 넓고 크다 토성의 고도는 표고 42.9m이고 대부분의 지점이 30m이내이며 성벽의 전체 길이는 2,285m이고 토성의 전체 넓이는 약 6만 7,000평으로 올림픽 공원 조성에 앞서서 사전 문화재 조사 겸 유적 보존을 목적으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총6회에 걸쳐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결과 토성의 축조 시기는 인근의 풍납토성보다 약간 늦은 대략 3세기 말경으로 추정되고 있고 성의 둘레에는 백제성의 특징인 방어용의 해자(垓字)시설이 되어 있고, 토성 바깥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목책(木柵)시설이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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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향기 그득한 몽촌토성성의 방어목적으로 복원 설치된 목책 ⓒ 뉴스타운 이인석^^^ | ||
토성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해방 이후인 1980년대였다. 88올림픽을 위한 체육시설의 건립 지역이 토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확정됨에 따라 토성의 보존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규모의 토목공사가 벌어지면 유적의 훼손은 불 보듯 뻔하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서울시와 문화재관리국이 올림픽 시설 부지 내에 있는 이 토성을 유적공원으로 정화, 보존하기로 결정하고 발굴조사를 단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토성의 건설을 위해서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을 것으로 추정이 되었고 주요 방호시설이 성의 북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주요 방어대상은 한강 이북의 세력 즉 고구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발굴로 출토된 유물의 시대와 종류를 놓고 파악한 토성은 한성백제시기의 중요한 방어성이었다가 475년 한성백제가 함락되고 나서는 오랫동안 폐기상태로 있은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주민이 살게 되었다.
흔히 토성은 백제시기의 성이므로 백제인들만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토성에서는 실제로 고구려 군대가 주둔하였다. 475년 한성백제가 멸망하고 난 이후이다. 그 증거로 토성에서 다량의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고 고구려식 건물 유적이 확인되었다 다만 한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인 광진구 아차산 일대의 보루 유적들보다 토기류의 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구려군이 한성 함락 후 단기간에 걸쳐 토성에 주둔하였으며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당시 토성에 주둔하고 있던 고구려군은 한성지역의 치안유지와 남하하는 고구려군의 보급과 업무 연락을 담당하던 거점 중심 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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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향기 그득한 몽촌토성몽촌토성 안으로 오르는길 ⓒ 뉴스타운 이인석^^^ | ||
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인들의 생활 거주지인 움집터를 현장 그대로 보여주는 움집터 전시관도 역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또한 서울 2,0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자료를 편찬하는 서울시사편찬위원회도 자리 잡고 있다.
토성을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걸어 보면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면서 사방으로 탁 터진 토성을 바라다 보이며 주위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 성 하나만은 정말 탁월한 곳에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백제인이 된 듯한 느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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