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호 철도청장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철도청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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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 철도청장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철도청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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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색구간 2개열차 동시운행 사례 많았다' 관계자 증언

^^^▲ 달리는 열차(13일 오후)
ⓒ 배철현^^^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철도청의 책임"

지난 12일 김세호 철도청장은 8.8 경부선 열차추돌사고와 관련하여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철도청의 책임"이라며 "사고 사상자는 국가배상법 등에 따라 충분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날 김 청장은 정부대전청사에서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기관사, 사령실요원, 역관계자 등이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사고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이번 열차추돌사고를 수사중인 경찰은 사고 당일 근무자등 7명 선에서 사법처리를 마무리 하려던 당초 방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철도청 고위관계자 등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경찰은 고모역 역무원 정(30)모씨와 화물열차 기관사 최모씨(50), 사고 당일 고모역과 경산역간의 신호기 교체공사 현장책임감리자 최모씨(56), 무궁화호 기관사 김모(36), 고모역장 서모(50), 철도청 부산지방사무소 사령 박모씨(37), 사고현장 공사발주업체 현장소장 김모(34)등 7명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확정하고 이가운데 정씨 등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었으나

"폐색구간에서 2개열차가 동시 운행된 사례가 많았다"

이번 사고의 주 원인이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공사가 일상적으로 진행되면서 열차 지연을 줄이기 위해 운전사령이 무리한 열차 운행 지시를 했기 때문이며, 공사 기간중 폐색구간에서 2개열차가 동시 운행된 사례가 많았다는 관계자의 증언에 따라 몇몇 관계자들의 과실만으로 결론을 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수사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 고 이석현(4)군의 예쁜 손경북 성주 '무궁화어린이의집'에서 아버지 이인기 씨에게 보내왔다.
ⓒ 배철현^^^
지난 8일 발생한 경부선 열차 추돌사고로 희생된 2명 모두 경북 성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은 너무도 안타까워 차마 말로는 다 못할 슬픔으로 남아 주변 사람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열차 좌석 밑에 깔려 있는 아들 먼저 구해 달랬더니 왜 나를 먼저 꺼냈습니까?"

이 한마디 남기도 다리를 크게 다쳐 경북대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정수희(29.여.성주읍)씨는 아들이 숨진 줄도 모르고 석현(4)군을 지금도 애타게 찾고 있다.

정씨는 부산 나들이를 위해 8일 오전 6시40분쯤 초교 2년생 딸 예지(9)과와 아들 석현(4)을 데리고 왜관역에서 사고 열차의 6호객차 11, 12번 좌석에 탔다.

그러나 준비해 간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사고가 나 정씨의 두 다리는 앞 좌석 사이에 끼였고 아들은 좌석 밑에 깔려 버렸다. 구조대원들에게 "아들을 먼저 구해달라"고 계속 부탁했지만 결국엔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게 되고 말았던 것.

"올해는 꼭 시집 보내려 했는데"

또한,열차 추돌사고 또한명의 희생자인 이영경(36.여.대구 수성구 범어동)씨의 시신이 안치된 대구 시지 성삼병원 영안실에는 가족과 동료교사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 성주에서 8일 오후 늦게서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변복선(62)씨는 "한번도 속썩인 적 없는 착한 딸을 시집도 못 보내고 떠나 보내야 하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목을 놓았고, 아버지 이태영(70)씨는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딸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고, 성주군청에 근무한다는 동생 해정(33)씨는 "누나는 모든 일에 열심이고 아들 못잖게 효도했다"며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경남 밀양고교에서 13년째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이씨는 방학 중 보충수업을 위해 이날 아침 서둘러 대구의 자취집을 나섰던 것. 그러나 동대구역을 출발한지 10분도 못지나 제자들을 찾아가던 발걸음을 영원한 되돌릴 수 없었던 것.

동료교사들은 출근 시간을 줄이려고 밀양역 출구에 가장 가까운 6호 객차를 이용하느라 변을 당했다며 더 안타까와 하기도 했다.

동료 최필숙(40.여) 교사는 "성격이 쾌활하고 인품이 자상해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다"며, "차마 제자들에게 알릴 수 없어 망성이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1987년 영남대에 '천마장학생'으로 입학했던 이씨는 6년째 고3을 담임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않았고, 방과 후에는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과외'까지 시킬 정도로 헌신적이었다는 것.

"그럼 벗겨 보면 알거 아니냐"

기자가 석현이의 아버지 이인기씨와의 인터뷰에서 제기했던 사상자중 사망3명에 관한 의문은 사고 당시 구조현장에서 6살쯤 되 보이는 뒷머리가 긴 여자 아이가 있는데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듣고 "그럼 벗겨 보면 알거 아니냐"고 항변 했고 이에 직접 사고현장으로 가서 시신을 확인한 결과 얼굴을 알 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두 다리 사이의 그것이 없었다는 것.

그러나 "아들이 틀림없다" 라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직접 사준 오른쪽 샌들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평소 석현이가 맥가이버 처럼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얼굴 생김이 여자애처럼 곱고 예뻤다는것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두고 싶다.

"이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확한 사고지점에 관한 의문도 기자가 현장을 몇 차례 방문 조사한바로는 열차추돌지점을 경계로 열십자를 그어 보면 사고기점을 중심으로 사월동, 신매동, 성동 등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긴박한 대형참사 현장에서의 위치 파악 그것은 인근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라 기자가 위치한 지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도된 것.

한편, 철도청은 이번 사고로 숨진 고 이석현군의 경우 배상금으로 1억5천400만을 제시했으나 그후 "유족들과의 접촉이 이뤄지지 않아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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