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 동인들 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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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학 동인들 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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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 작가들 문학기행을 가다

^^^▲ 철원 월정리역에서 촬영한 작가^^^
인천에서 20년을 이끌어온 가장 오래된 문학 동인지 “서해아동 문학회(회장 최제형)”는 자매지 “갯벌문학회(회장 서부길)”의 협찬으로 인천지역에서 발행되는 또 다른 동인지의 대표들과 제휴하여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 문학 발전을 돈독히 하기위해 우의와 단합을 다지는 문학기행을 했다.

이날 모인 각 동인지의 중견작가 30여명은 지난25일 오전 인천을 떠나 강원도 철원을 향해 테마관광길에 올랐다. 출발 전부터 꾸물대던 날씨는 결국 봄비를 몰고 와 여행길에 다소 불편을 줬지만 그래도 고대하던 끝에 오랜만에 내린 단비라 일행을 흐뭇하게 했다.

일행을 실은 버스는 자유로를 막힘없이 달리더니 어느새 강원도 철원 땅에 들어섰다. 먼저 간곳은 북한군이 남침을 목표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을 향해 지하로 1.1Km나 몰래 파내려온 제2땅굴이었다.

1975년 3월19일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발견된 이 땅굴은 북한군이 기습 남침을 위해 지하50~160m의 깊이로 파내려왔는데 총 길이는 북쪽 출발점을 기점으로 3.5Km나 파내려 왔다는 것이다.
이 땅굴이 처음발견 됐을 때는 전국이 떠 들썩 하더니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까맣게 잊고 있던 차에 이곳을 찾게 돼 반공의식을 한층 더 드높였다.

일행은 바쁜 여정을 재촉하며 “철원 두루미 관“을 들러본 후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이미 금강산으로 이어지던 철로는 끊겼고 외로이 홀로 역사(驛舍) 건물만 남아있는 월정리역(月井里驛)을 둘러본 후 그곳에서 그 옛날의 쓰라렸던 기억을 되새기며 기념 촬영을 했다.

한국전사상 이름을 남긴 백마고지는 군사상 통제구역이어서 직접 들어갈 수없어 1990년에 세워진 기념관을 보고자 발길을 옮겼는데 중간지점에 북괴가 천하를 호령하며 약탈, 처형 등 만행을 저질렀던 “노동당 당사”가 을씨년스럽게 뼈대만 앙상하게 남긴 채 서 있어 처절했던 6.25를 회상시켰다.

6.25 전쟁당시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된 위령 비 앞에서 일행은 경건한 마음으로 전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 다. 아쉽게도 당시 실전을 감행했던 백마고지를 직접 오르지 못한 채 저 멀리로 바라다 보이는 안개 속에 감춰진 웅장한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렸다.

점심때가 지나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이곳에서 이름 있다는 허름한 식당으로 향했다. 이고장의 명물이라고 자랑하는 토종음식인 ‘쏘가리“탕을 끓여 요기를 하고 바쁜 일정의 오후 관람에 들어갔다.

먼저 간곳이 ”직탕 폭포“였고 이어 ”도피안사“를 거쳐 조선조 명종 때 의적 ”임걱정“이 석성을 쌓고 그곳에서 관군과 대치하며 은거하였다는 ”고석정“을 들러본 후 철원 땅을 뒤로한 채 저녁 늦게 인천으로 돌아왔다.

이날 문인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단합을 다졌으며 앞으로 전개해 나갈 지역 문학발전에 이바지 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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