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고통중에 신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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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고통중에 신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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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의 <순교자>를 읽으며

약 20년 전 재미 작가인 김은국 씨가 쓴 <순교자>란 책을 읽었습니다. 당시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회자되고 큰 반응을 얻지 못했던 그 책의 표지에는 아마도 ....니체와 욥의 전통을 이어가는 책.... 이란 미국인들의 서평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리고 약 10년 전 순교자는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은국 씨가 한국의 대학에 교환교수로 와 있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만큼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의 책이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사회의 거부감이 해소되었거나, 우리사회가 그런 문제를 받아들일 만큼의 마음자세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당시 처음 순교자를 읽을 때는 저도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연약하기만 하던 내 머리에선, 도저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산통치하의 북한이란 공간적 상황과 북한군이 패주한다는 극한적 시간적 설정을 하고,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을 선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관해서 이야기는 맴을 돕니다. 극한적인 상황에서 신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목숨을 걸고 신앙을 고백하여야 할 것인가. 목숨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배교하여야 할 것인가.

일제시대의 종교박해 시기에 많이 있어왔던 이런 상황설정을 더욱 진지하고, 흥분을 고조시키는 것은 이런 ‘진부한’ 상황에 한 가지 상황을 덧씌운 작가의 의도 때문입니다. 실존주의의 세례를 톡톡히 받은 작가는 흥미 있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짐으로써 충격과 흥분을 주게 이끌어 갑니다.

소설속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목사들은 생의 최후의 순간에 삶을 얻기 위해 배교를 합니다. 그리고 한사람 끝까지 배교를 하지 않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배교를 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그 진실성을 인민군 장교에게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한 겹 더 벗기고 들어갔을 때, 그가 지키려고 했던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에서 이 소설의 가장 충격적인 설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당당하게 소신을 지킴으로써 혼자 살아남은 신 목사 ‘자신은 사실 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위해 외 목숨을 걸려고 했느냐?” 는 질문에 그는 무어라고 답하고 있을까요? 다른 또 한사람의 살아남은 목사가 말하는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의롭지 못한 신’에 대한 절망에 사람들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믿지 않는 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 합니다.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서 신의 침묵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 새로운 질문이 아닙니다. 일제시대에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받을 때, 한국이 내전의 비극을 겪을 때, 그리고 길고 긴 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올 때 신은 어디에 있었나.

신은 왜 침묵하고 있었나 하는 질문은 늘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뜨거운 피를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그런 말을 내밷으며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그 질문을 보다 직설적으로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보다 다원화된 한국사회는 점차로 그의 질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는 봅니다. 혹 아니면 이젠 그의 질문에 상처받을 만큼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 더 이상 교회내부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글이 수용되는 것일까요?

역사에 대해 침묵하는 신은 바로 ‘신목사’를 통해 역사에 개입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신목사 자신은 하늘나라를 믿지 않았지만, 끝까지 고난 받는 사람을 돕다가 목숨을 잃는 그의 행위는 그리스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앙고백에 주의나라는 깃드는 것이 아닐까요. 주의 나라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염원 속에 존재할 것입니다. 또 동시에 그들을 위해 무언가 노력하려는 사람들의 손길속에 존재할 것입니다.

주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힐문하는 사람. 자신에게 고난을 주는 신에게 절망하는 사람. 신은 복과 동일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시간 신은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 고난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타고 노력하는 사람들 속에 존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 속에,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속에 존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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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선 2003-08-07 21:48:30
하인리히 뵐은 하고 물었지요. 일료나가 포로 수용소에서 총에 맞아 죽을때, 파인할스가 집 앞에서 죽어갈 때 그리고 전쟁으로 너무나 무고한 목숨들이 덜어져 나갈때.
진정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신앙은 이거 아닐까요? " 저회들은 주님의 깊은 뜻을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주님만 의지하며 살려고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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