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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현 불가.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거워합니다. ⓒ 김규환^^^ | ||
장마가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들
장마 전선이 중부지방에 걸쳐 있던 오후. 까까머리 위로 뙤약볕이 한껏 내리 쬐고 있다. 내 작은 키가 그토록 작다는 걸 느낄 수 있게 그림자는 짧아질 만큼 짧아졌다. 이제 장마 끝자락이라 한번만 비를 흠씬 맞으면 올 장마는 끝난다.
웬수 같은 장맛비가 끝나면 사람들은 할 일이 많다. 이불 말리기, 보또랑 손보기, 울력으로 고샅길 정비, 방천(防川) 난 논둑 손질, 병충해 방제, 김매기가 태산같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얼른 장마가 끝나기를 바라던 게 어른 들 맘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만날 습한 데서 사는 것도 지겹기 때문이다. 모기도 모기려니와 눅눅한 이불에서 잠을 청해도 쉬 오지 않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오래 자도 뒷골이 당긴다. 그러니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자고 싶은 마음 꿀떡같다.
그 뿐인가? 불볕 더위에 살갗을 검게 그을리며 멱감을 생각도 간절하다. 비 맞지 않고 꼴 베러 가는 것도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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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백아산 몰랭이에 비가 묻어 오고 있습니다. 경지정리를 하지 않은 논바닥은 정겹습니다. ⓒ 김규환^^^ | ||
마지막 장맛비
마파람이 부는 걸 보니 오늘밤이나 내일 오전에는 비가 올 것이 분명하다. 어른들은 백아산 꼭대기에 구름이 몰려오는 걸 ‘비가 묻어 온다’고 했다. ‘깔따구’와 하루살이가 감나무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는 터에 제비마저 낮게 날고 있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다. 새벽 세 시 쯤 들이치는 비를 피해 방안으로 기어 들어가 마저 잠을 잤다. 밤새 비가 퍼부었다. 7월 비보다 한층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8월 초순 비가 세상의 모든 먼지를 씻어갔다.
마을 앞 보(洑)는 수문(水門)을 죄다 열어버린 지 오래다. 수문 사이로 하얀 거품을 잠시 머금었다 뱉은 듯 아래로 빠져나가자 다시 투명해지는 성난 물살에 사람 몸체 만한 돌덩이도 “드르륵” 소리를 내며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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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러덩 벋고 들어가는 아이 때까 참 좋았습니다. 세상 눈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도 늘었던 것 같네요. ⓒ 김규환^^^ | ||
폐허에 가깝게 변한 고샅길과 마을 앞길과 부엌 아궁이
고샅길은 잦은 장맛비에 작년 추석 이전에 들였던 황토 흙은 다 떠내려가고 없다. 마당도 마찬가지다. 처마 밑 주춧돌 부근에도 “쏙쏙” 물이 샘솟아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부엌 아궁이에 가득 고인 물은 재와 범벅이 되었다. 그러니 눅눅한 방에 불을 때는 것은 고사하고 밥 해 먹을 불을 지피기도 힘든 날이 며칠이고 이어진다. 제 아무리 물을 밖으로 퍼내 봤자 허사다.
그런 날은 임시로 바깥에 돌이나 삼발이를 걸고 물기가 탱탱 스며있는 추진 나무를 갖다가 간신히 불을 살라 밥을 해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잘 다져졌던 고샅길엔 돌만 덩그마니 헐벗은 듯 드러나 있다. 큰물이 쓸고 지나간 뒤 해마다 7월 말에서 한가위 무렵까지는 폐허에 가깝다. 성한 곳은 찾기 힘들게 울퉁불퉁 패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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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 위에는 이끼가 끼어서 언제나 미끄럽습니다. 아이들에게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세요. 즐겁게 뛰어가는 한글이 동생 세종이. ⓒ 김규환^^^ | ||
냇가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은 사나흘을 뜬눈으로 지새
마을 앞길은 더 했다. 도랑 근처 마을 앞에 있던 집들은 장마 때면 몇 날이고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언제 큰물이 집을 덮칠지 모르는 위급한 순간을 해마다 서너 번은 넘겨야 한해가 간다.
마을 앞 다락 논은 홍수 조절 기능이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다. 비가 많이 오면 오는 대로 견뎌야 했고, 가뭄 때는 먹을 물 마저 떨어져 하늘을 쳐다보며 점이나 쳐대는 상황이 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나랏님을 탓할 수도 없었다. 괜시리 나라와 대통령을 들먹였다가는 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붙들려가 뭇매를 맞고 풀려나거나 옥살이를 감당하던 냉혹한 시절이었다. 자연에 대적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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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시원하고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동네는 물바다가 됩니다 ⓒ 김규환^^^ | ||
홍수를 즐기는 아이들
그래도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에 적응하여 사는 게 사람이다. 아이들은 비나 눈을 더 즐겼다. 강아지가 눈을 좋아하듯 아이들은 비를 반겼는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일만 해 놓고서는 맘대로 놀아도 되었으니 한가한 시간, 무료한 시간을 비와 같이 논다고 하는 게 맞다.
무슨 일이고 하다가 비를 흠뻑 맞고는 양잿물과 몽근 쌀겨를 섞어 만든 비누 한 번 칠해 쓱싹 문지르면 목욕할 필요가 없었다.
굵은 빗줄기를 타고 올라가던 미꾸라지가 마당 한켠에 떨어져서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양새는 어린 아이들 호기심을 무척 자극했으니, ‘어디서 여기까지 날아왔을까?’, ‘물고기는 얼마나 멀리 올라갈까?’,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닐까?’ 하며 상상의 폭을 넓혀갔다.
까만 고무신 신고 고샅길을 걷다보면 물이 차 오른다. 신발을 벗어 한 짝은 까뒤집고 나머지 한 짝은 그 위에 꽂아 배를 만들어 흙을 실어 나른다. 위에서 떠내려온 흙을 모아 물길을 돌리며 집 앞에서 시작하여 동네 앞 큰길로 나와 보면 아이들 여럿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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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정취를 잃어버린 마을 앞길과 도랑. 시멘트가 웬수여! 맘대로 내려갈 수도 없게 엄청 높게 만들어 놓았지. 누가 빨랫감 들고 내려갈 수 있으며 발 씻으러 내려가겠습니까? 전국 산야를 이런 식으로 한다면 금수강산 망가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 김규환^^^ | ||
멱감기 전에 신세기체조에 물을 찍어 바르고...
예닐곱 정도는 모여야 어른들께 혼나지 않고 목욕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숫자가 채워지기만을 30분 이상 서성이며 기다린 것이다. 대여섯 살에서 열 서너 살까지의 아이들이 홍수에 떠내려온 나뭇가지처럼 숫자가 급격히 불어났다. 멋모르는 여자아이 몇 명도 합류했다.
골목대장인 한 아이가 “야, 우리 매 깜자.”며 동을 뜨자 모두들 반색을 한다. 윗옷을 벗는 아이, 아예 훌러덩 죄다 벗은 아이로 갈렸다. 한 사람의 구령에 맞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국민체조 보다 먼저 나온 ‘신세기 체조’를 간단히 마쳤다.
학교에서 배운 체조를 마치고 손끝과 밭 끝에 점찍듯 물을 살짝 끼얹는 게 첫 순서다. 차차 배에 물을 바르고 심장 부위에 가까운 곳은 가장 나중에 물을 묻힌다. 끝으로 온 몸에 길 위에 떠내려온 온갖 퇴적물과 흙을 얼굴이고 팔다리 배꼽 어깨와 등을 가리지 않고 검게 발라 뛰어들 준비를 한다. 어른들은 그 몰골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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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로 넘치는 시원한 물. 그 아래 툼벙에 물괴기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 김규환^^^ | ||
멱감기, 그리고 2m 위에서 뛰어내려 자맥질, 짜릿한 급물살 타기
불을 대로 불은 도랑물이 차 올라 도로에서도 약간만 숙이면 물을 만질 수 있다. 도랑물을 가만히 서서 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쏴-” 하며 제멋대로 흐르는 물은 무섭다.
이런 어지러운 물을 보면 아이들은 다이빙 한 번 해보려고 잔뜩 부풀어 있다. 나이 어린 아이들은 첨벙하며 발이 먼저 물에 차이게 뛰어들지만 신나는 건 마찬가지다.
3~4학년을 넘긴 조금 큰 아이들은 국기봉(國旗奉) 터에 세워진 반공방첩탑(反共防諜塔) 옆에 두 명이 함께 올라가 동시에 누가 멀리 가는가를 시합한다. 입수(入水) 순간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양손을 곧게 뻗고 물 속으로 돌진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이런 재미도 순서를 기다려야 했으니 늘 이 자리는 붐볐다. 높이가 2m에 물 속 깊이가 2m 정도 되었으니 홍수 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 속으로 사라진 아이 둘은 꽤 오래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에 거의 이르러서야 밖으로 기어 나온다. 발로 오리발로 자맥질을 하고 손으로 물살을 가르는 것은 물 속이라는 것만 빼면 가장 편한 수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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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구리 헤엄이든 뭐든 오래만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좀더 커서는 저수지에서 하다 어른들께 매깨나 맞았던 친구들이 있었읍죠. ⓒ 김규환^^^ | ||
물살에 몸을 맡겨 둥둥 떠내려가는 것이지 헤엄 치는 게 아니었다
건너편 땅에 발을 딛고 풀 사이에서 쑥을 한 줌 뜯어 손바닥에 대고 둘둘 비벼서 물이 들어가지 않게 귀를 막는다. 풀 위를 걸어 80여 미터 위로 올라가 급한 물살을 타고 보 하류 근처까지 쏜살같이 떠내려간다.
자유영, 평영, 배영, 접영을 다 할 줄 아는 아이든, 평소 물 아래 갖가지 고기 종류와 유리 조각까지 찾아내던 솜씨가 빼어난 아이들도 물에 떠내려가는 몸을 추스르기 급하다. “푸하~ 푸하~ 푸우~” 입과 코로 연신 숨을 내뱉고 들이마신다. 흙탕물에 가까운 물을 마시는 건 예삿일이다.
입으로 들이마시는 물이야 뱉어내면 그만이지만 코로 들어가는 물은 정신을 혼미하게 까지 한다. 사레든 것처럼 매콤하면서 토악질까지 해야하는 고역의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래프팅 체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물살 타기를 하고 나면 쉽게 지치지만 끝에 도달하여 느끼는 그 짜릿함과 성취감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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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래프팅이 별건가요? 물살 급한데 아무거나 띄우고 바가지로 헤쳐 내려가면 되는 거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 김규환^^^ | ||
온 힘을 다해 가장자리로 나와야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지 않아
막바지에 이르면 보 낭떠러지로 급전직하 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자칫 힘이 소진하여 그냥 떠내려갔다가는 시멘트에 긁혀 배가 갈라지는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가장자리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해 기를 쓰고 헤엄을 쳐야 한다. 간신히 돌부리를 부여잡고 한동안 멈춰 있다가 기력을 회복하여 위로 올라온다.
길로 나와 걸어서 다시 상류로 올라가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나누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자.
“물 묵었냐?”
“응. 맨 첨 물살 타기 시작했을 때 엄청 마셔부렀어야.”
“난 떠내려오는 뾰족한 돌에 다리를 다쳐부렀어.”
“어디 어디? 피 나냐? 쑥 붙여야 되는 거 아냐?”
“쬐끔 흘르다 말아.”
“아까쟁끼 가져오까?”
“아냐, 됐어.”
“그건 그렇고, 지난 번 비 왔을 때보다 허벌나게 물살이 세더라~”
“긍께 말여. 난 이렇게 큰물이 져야 재밌더라.”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한나절을 그렇게 보냈다. 귀를 막았다 뗐다를 반복하며 급류 소리를 듣는 아이들은 마냥 신나있다. “쏴-” “샤~” “솨와~” 하는 소리에 배고픔도 잊고 그렇게 얼마나 놀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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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님과 그의 두 아들-한글이와 세종이 ⓒ 김규환^^^ | ||
배고픈 줄 모르고 멱감다보면 살빠지니 오래 멱감지 말라던 아버지 말씀
아버지께서 꼴을 한 짐 지고 오신다.
“배 안 고프냐?”
“예, 금방 가요.”
평소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목욕하면 안 된다.’고 하신 아버지시다. 일제 시대 아오지 탄광에 할아버지 대신 다녀오신 아버지의 지론도 사실 알고 보면 식량수탈을 모면하고자 한 일본 제국주의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기름기가 빠져나가니 목욕을 자주 하지 말라는 논리다. 먹을 것 없을 때는 목욕하면 금방 허기지고 살빠지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당신의 한 말씀에 서둘러 옷을 챙겨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진한 허기가 몰려왔다. 나른하기 짝이 없었다. 귀도 먹먹했다. 당장 불려 가지만 않았더라면 말 타며 놀았던 따끈따끈한 말 바위 위에 귀를 대고 물을 털어 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밥 먹고 낮잠이나 늘어지게 한 번 잤으면 좋으련만 뜻대로 될지 미지수다.
오후에 꼴 한 망태 베어 두고 또 냇가로 나갈 생각이다. 저녁 땐 냇가에 모여 오줌 멀리 보내기를 하면서 누군가 한마디 할 것이다.
“딴 데 깔기지 말고 이리 와서 물에다 싸라.”
“야, 이 물 광주 놈들이 다 묵을 것인디...”
“긍께 여기다 싸는 거 아니냐? 실컷 퍼 마시라고.”
“떠내려가다 보면 아무 냄시도 안 난께 지들이 뭐 알겠어? 그냥 마시는 것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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