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힘이란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감동의 힘이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아침이슬과 어제와의 차이점

하루하루의 삶이 정서적으로 넉넉하지 못합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내 속의 감성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젠 비가 내려도 그냥 무심히 바라봅니다. 노을이 물들면 아름답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저는 그런 내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야. 이제야 나도 좀 젊잖아졌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덤덤히 관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젊은 시절부터의 나의 크나큰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떠오르는 해가 아침을 붉게 물들이면, 그냥 덤덤히 또 하루를 준비를 하는 삶’이 당시 내가 꾸던 꿈 중 하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앞 조그만 정원에 나가 풀잎에 맺힌 이슬을 들여다봅니다. 자그만 나뭇가지에 걸린 아침기운이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빨리 씻고 밥 먹어라’라는 어머니의 성화를 들려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당시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고함을 지르면서도 빙긋이 미소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한 사람의 생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제법 심각한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싶었고 세상의 일원으로 내 몫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좌절하고 또 일어서곤 하는 진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기위한 준비과정이 너무 길고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귀공자로 자란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가난에 젖어서 살아온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만한 여건. 적당히 정서적으로 안정될만한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세상의 슬픈 모습들이 참 많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 들먹이며 울다가, 문득 ‘내가 감상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또는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은 항상 그게 가슴에 걸리시나 봅니다. “내가 부족하게 키운 것도 아닌데, 아이의 표정은 왜 항상 그렇게 울적해 보이나?” 그게 어머님의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세상을 어둡게만 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괜한 어머님의 걱정일 뿐입니다. 내 내면은 아침공기처럼 맑고 상큼합니다. 단지 세상의 모든 것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얼굴에 비쳤나 봅니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감동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 모든 감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습니다. 하루하루를 감동으로 채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감성을 저축하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정말 인생이란 벌판을 숨차게 뛰어가다 지칠 때, 지금 차곡차곡 내 가슴에 저축한 아름다운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진짜 생활인이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참 바쁘더군요.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기계처럼 일하고, 시체처럼 쓰러져 자고, 시간이 되면 다시 용수철처럼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는 삶. 감상에 젖어 단1분이라도 허비하지 않는 삶을 이 세상은 좋아하더군요.

한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릴 때처럼 나는 단지 세상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경험하며 느끼고, 실감나게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그런 것을 워한다면, 내 인생의 일부를 세상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 살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진실에 좀 더 밀착하고, 삶의 숨결을 좀더 자세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하!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어렴풋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알만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삶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어떤 모양일까?’ 라는 막연한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젠 삶에 부딪히며 삶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전처럼 막연히 감성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삶은 멀리서 관찰하고 책에서 경험할 때보다, 직접 부딪쳐볼 때 나에게 더 많은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삶이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려 ‘삶이란 무엇일까.’란 오랜 질문을 풀었습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것에 감동하고, 작은 일들에 가슴 저려하던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렵니다. 물론 삶은 아직도 곤하고,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젠 나 스스로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공부한 삶을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가고 싶습니다.

이제 다시 내 조그만 마음 밭에 나가 풀잎에 맺힌 이슬을 들여다보고, 나뭇가지에 걸린 햇살이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