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의 무소유와 재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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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의 무소유와 재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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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새로운 별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밤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정박아가 그린 크레파스 초상화, 몇 개의 낡은 뿔테안경, 미사때의 헝겊신발과 장갑.... 김수환 추기경이 물질로 이 세상에 남긴 유품들이다.

단아한 이마와 언제나 사려깊었던 눈, 침착하면서도 인자했던 미소와 여유, 매 순간 한 인간으로서 또는 사제로서의 능력에 의문도 품지만 신의 뜻에 순명(順命)하시고 스스로를 돌아 보시기를 그치지 않으셨던 겸허함과 기도가 모여 정제 된듯한 작은 체구. 그리고 정결한 로만칼라.

이제 그 분이 별이 되기위한 영혼의 범선에 올라 별들의 심장으로 떠나기 전 잠시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계신다.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 미사곡>을 <스테파노>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타고 저어가실 하늘길에 바친다. 그 중에서 특히 아름답고도 봄비처럼 밝은 <주의 어린양> (Agnus Dei)과 너무도 유명한 <쌍투스>(Sanctus. 거룩하심)를 추기경님의 묘비앞에 영원히 바치고 싶다.

몇 년전 내가 속했던 모임에서 연말의 자선만찬 행사를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했다. 문화예술인의 모임이었는데 자선금을 많이 모우기 위해 명사초청 노래회를 기획했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 몇분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다.

무대에 오르신 추기경님께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 노래를 시작하자 그곳을 꽉채운 사람들이 끄응- ! 아-! 하고는 기묘한 신음소리를 동시에 냈다. 실내가 한동안 놀라움과 숨죽인 환호로 물결처럼 흔들렸던 것 같았다. 그때 서로를 돌아다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눈을 호둥그렇게 뜨면서 웃던 그 웃음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상관없이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그리 잘하시는 노래솜씨는 아니셨다.

그런데 그때 이미 80이 넘으신 고령이신지라 약간씩 끊기는 듯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곤 하면서도 노래를 무사히? 마치셨다. 수백명이 모두들 일어나서 환하게 웃는 얼굴들로 한참동안이나 박수를 쳤다.

어느해 연말의 그 밤은 내게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정경중 하나로 남았다.

불우한 누군가를 도우기 위한 것이라면 유행가를 얼마든지 부를수 있다는 말씀이 있으셨던 것 같다. 유행가로서의 <애모>도 물론 좋지만 그날 추기경님의 <애모>는 이미 그 경지를 훨씬 넘어 있었다.

나는 어느 종교고 신도가 아직 아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고백을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젊은 안드레아 신부의 고백>이라는 소설을 1992년도에 출간했다. 오래전에 출판사와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지금은 서점에도 없다. 그러니 책선전은 아니다.

그 소설은 이런 내용인 편이다.

젊고 유능한 신부 <안드레아>가 여러곳에 상처받은 작은새처럼 떨면서 부딫히면서 망가져 가는 한 유학생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우연히 마주칠때마다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는, 마치 마사이의 전사(戰士)처럼 너무도 전투적인 그 여학생의 모습들이 싫었고, 그래서 피하지만 그러나 같은 도시에서, 캠퍼스에서, 유서깊은 공원에서 부딫히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 여학생 역시 신부의 눈부신 미래를 위해 도망치지만 결국 <안드레아 신부>는 상처받고 더 투사가 되는 듯한 그녀를 택하려 한다.

주위의 촉망을 받고 좋은 환경의 젊은 사제가 순수한 청년기에 한점 의심없이 자랑스럽게 택했던 길. 神에게 맹세한 청빈, 정결, 순명의 서약을 파계하기 바로 직전의 고백이다. 그 소설의 한 구절이다.

“모든 수식어를 다 동원한 어떤 문학서와 학문보다도, 또한 모든 찬미가를 다 동원한 어떤 기도문보다도 가장 눈물겨운 기도는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진실을...”

삶을 알기도 전에 신을 먼저 섬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래서 아름답고도 많은 기도문을 외울수는 있었지만, 온몸이 떨리는 한마디의 기도를 스스로 토해 낼 만한 가슴저린 인생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식했고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는다.

그런 그가 유학 온 <뮌헨>의 자기 방 서가(書架)에 높은 성벽처럼 꽃혀있는 책들을 돌아본다. 빛나는 새은전처럼 차디찬 오만으로 가득찼던 젊은 사제의 자긍심이었던 그 많은 책들이 어느날 그의 눈에는 “단지 그것들은 그대로 책이었을 뿐이었다”

젊은 <안드레아 신부>는 유학을 중도 포기하고 귀국한다. 한달간의 피정에서 <안드레아 신부>는 묵상하고, 고뇌하고, 기도하고 사투한다. 결국 하느님에의 서약을 파기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구한다는 나름대로는 더 견고하고도 진실한 신앙을 위하는 길을 택한다.

사제에서 일반의 신앙인으로 남지만 파기한 신부는 교회미사에서 영성체를 할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형벌이었다.

성당의 신도회장인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누구보다 그들의 자랑이었던 아들 영우<안드레아>의 혼인을 끝까지 외면한다. 현실의 차거움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안드레아>는 감내한다... 그리고 ...

나는 몇 년전 그 자선만찬의 밤에 성심을 다해 열심히 박자를 맟추려 노력하시면서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애모>를 부르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단아하신 이마와 미소를 보면서, 내가 소설에서 나의 주인공 젊은 <안드레아 신부(神父) >에게 길 잃은 상처의 영혼을 진정으로 구하기 위해 금박장식의 아름다운 사제복을 벗어라는 비정한 주문을 했던 소설가 나의 억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소설 <젊은 안드레아신부의 고백>을 출간하고 나서 십여년이 지난 그 겨울 밤, 80이 넘으신 은회빛 머리와 로만칼라의 쟂빛 양복차림으로 무대 위에서 <애모>를 부르시는 추기경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분은 사제복을 벗지 않고도, 겨울새벽의 얼음짱같은 여명속에 장미뿌리 묵주 한개와 내의가 든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사제관을 떠나지 않고도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미 우리 세속의 인간들 깊숙히 함께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처럼 세상과 사람들에 인색한 사람에게까지도 추기경님은 12월의 차가운 겨울밤인데도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5월의 바람처럼 향기롭게 잔잔히 스미듯 걸어 들어오셨던 것이다.

청빈은 물론 정결과 순명과 함께 사제의 서약(誓約)이긴 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경비조차 다 나누어 쓰신 추기경님의 검소한 유산과 유품을 보면서 나는 우리들의 말릴길없는 세속적 욕망을, 욕심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추기경님 처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돌아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삼성에 미안하다.

그러나 삼성이 단순히 이 전회장의 가족의 것이다란 시각은 무리가 있기에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또한 이재용씨 전부인 임씨의 공개적 이혼소송에 삼성가가 무척 당황 했을 것 같다.

결혼 11년만의 이혼에 삼성가의 위자료 10억원 재산분할 5천억원이라는 액수는 시기적으로 성직자의 무소유와 너무도 대조가 된다. 이혼이라는 단어자체가 금기시 되는 집안이라는 얘기를 옛날 그 집안의 일원으로부터 들었다.

물론 여성으로서 이혼시의 정당한 재산분할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대 기업의 위자료는 같은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가에 의문이 생길 액수가 기사화 된 것 같다.

법원이 알아서 그 부분을 잘 심리 하겠지만, 또 양가가 충분히 조용하게 해결이 될 것을 너무 드러나게 되어서 안타깝다.

일반인들의 문제가 아니고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도 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공인이다. 그들의 문제 하나 하나가 이나라 경제문제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실시간 줄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벌기업이므로 그들의 그 숫자들이 기업의 주가에도 반영이 될 지경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의 탄생과 그간의 눈부신 발전에서 삼성은 이 전회장 가족의 것만은 아닐수 있다.

정부와 기업가와 직원들과 말단의 노동자들, 실은 모든 국민들이 함께 키워 온 삼성이다. 삼성은 그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의 이혼소송으로 약 1조원에 달하는 걸로 알려지게 된 이재용씨의 재산형성 과정만으로도 수 많은 소송과 의혹들을 제기 하는쪽이 있어온 상황이다. 물론 양가가 급속히 해결해 나가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하다.

지금은 기업은 물론 정치고 어디고 국민 모두가 너무나 힘들고 지쳐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지치고 낙담하고 있는 서민들의 정서에 너무도 아픈 상처를 준것임에도 틀림이 없다.

지금부터 50년이 지난뒤. 현재 지구상에 있는 우리 중 거의 반 이상은 사라진다.

생명이 유한하고,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탐욕적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모든 탐욕의 바벨탑 중 아주 미미한 벽돌 한개라도 우리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지 못한다.

더없이 훌륭하신 추기경님도 하느님 빽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신 것 같은 그 분도 낡은 테의 안경 하나 손에 지니고 가시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정박아 어린이의 크레파스 초상화 한 장 보물처럼 가까이 지니셨던 검소하고, 세상의 물질로는 더없이 청빈했던 유리관속의 추기경님 모습을 보고자 새벽부터 몇시간을 차 타고 와서 몇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서 겨우 몇초간을 뵙고 또다시 몇시간을 돌아가는 등... 가슴에서 우러나 발길을 재촉하는 조문 행열이 수십만명에 달하고 있다.

평소에 뵌적이 없어, 혹은 부끄러워 명동성당까지 가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도가 아닌 나같은 사람마저 그분의 가시는 길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살이가는데 당연히 물질도 귀중하고 유한한 삶의 기간동안 경제도 탐욕도 어느정도 필요하고 그 또한 가장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때도 되었다.

1조나 2조, 혹은 5천억원을 가진자의 죽음이 과연 도화지의 그림한장 가진 분의 죽음 만큼 살아 남은자의 가슴을 이렇게 깊이 북처럼 두드리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분처럼, 이 시대의 그 누가 살아온 삶의 한순간 한순간이 이리도 오랫동안 수천만명을 하나같이 감동하게 할수 있을까?

하루종일 은회빛 하늘이더니 저녁이 되자 이윽고 비가 되어 내린다. 추기경님의 잿빛 양복과 머릿결과 단아한 이마를 닮아 더없이 안정되고 차분하게 바다속처럼 소리죽여 눈물처럼 내리고 있다.

“죽음은 새로운 별이 돼 우리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눈을 감는 것” 이라고 추기경님께서 어느분의 장례미사에서 말씀 하셨었다.

우리는 곧 눈물그친 밤하늘에서 이제 금방 생긴 새로운 별 하나를 모두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아름다운 새별이 앞으로 우리 앞길을 밝혀주시는 수호천사로 영원히 남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은 추기경님이 순명(順命)하고 섬기시던 하느님과 추기경님의 가시는 길을 위해 온전히 기도하고 싶다.

“상투스(Sanctus 거룩하다 ) ! 상투스! 상투스! Dominus Sabaoth !(온누리의 천주 거룩하신주 !)”

* <샤롤 프랑수아 구노>의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 미사곡 ” 4 <상투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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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노래 2009-02-20 14:51:05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

영면하시라 2009-02-20 14:45:14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br>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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