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실종자 비핵화 타령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에 때를 맞춰 21일 北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 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23일 김정일과 면담사실이 사진과 함께 공개됨으로서 중병설과 함께 모습을 감춘지 반년여 만에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중국의 왕자루이와 만남에서 한반도 긴장책임을 대한민국 탓으로 돌리면서 미국을 향해서는 "6자 회담 각 당사국들과 평화적으로 함께 지내기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추파를 던졌다.
미국정부는 이에 대하여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은 좋은 일" 이라며 "6자 회담에서 이뤄진 핵 폐기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북핵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6자 회담이 "유용하다"고 보아 김정일 발언을 환영했다.
그런데, 북의 입장을 대변해 온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오바마 정권에게 "조선반도 핵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는 과제" 라고 강조하면서 "조·미가 국교를 맺어도 미국의 핵위협이 남아있는 한 조선은 핵무기를 버릴 수 없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13일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없어질 때에 가서는 우리도 핵무기가 필요 없게 될 것' 이라는 외무성 담화를 들어 "조선이 제시한 등식은 '미국의 핵무기 대 조선의 핵무기' 라는 안보문제" 라고 덧붙였다.
김대중의 북 핵 비호 나팔
그보다 더 한심한 노릇은 대북뇌물사건주범 김대중이 대한민국 국민과 지구촌 인류를 상대로 "김정일은 핵 개발 능력도 의지도 없다" 며 만약 김정일의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김대중) 내가 책임지겠다" 며 핵 개발 음모를 끝까지 비호한 사실이다.
특히 김대중을 수행하여 북에서 돌아 온 박지원이 2000년 6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과 김정일 사이에 핵관련 합의문서"를 작성하여 나누어 가졌다고 공언한 사실에 비춰 볼 때 김정일 핵 개발은 김대중과 공모 하에 이뤄졌다고 보아야 한다.
김대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2006년 10월 9일 김정일이 핵 실험을 하자 북 핵 실험에 항의하거나 유감과 우려를 표하는 대신에 마치 사전에 김정일과 입이라도 맞춘 듯 "북 핵 실험 미국 탓, 햇볕정책 무죄" 라고 나팔을 불어 댔다.
김정일 실종 반년의 의미
그런 가운데 지난 반년 여 동안 김정일이 무슨 병으로 쓰러져 어떻게 치료하고 요양 했는지, 그의 건강과 기력이 얼마나 회복 됐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북에서는 미국 대선기간 중 김정일의 현지시찰 '사진'을 꾸준히 공개함으로서 와병설로 인한 후계문제와 親政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하느라 애써 온 것도 사실이지만 김정일의 잠적이 일시적 요양이나 "의도된 은신" 이었다는 관측에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만약 고의로 중병 설을 유포하고 일시적 요양을 빙자하여 지하 깊숙이 은신해 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 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가 될 것이다.
먼저 주목할 것은 김정일이 잠적한 시기는 6자 회담이 北의 '샘플채취거부'로 교착상태에 빠지고 국제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김정일을 惡의 軸이라고 비난 해 온 부시 행정부의 임기 말과 겹쳤다는 점이다.
국제테러로 악명 높은 전범집단 수괴 김정일이 동갑내기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미국 레이건 당시 1986년 4월 15일 영국기지에서 발진한 24대의 F-111기에 의해 폭사당할 위기를 모면한 악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하 깊숙이 은신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WMD 포기를 선언하고 '김정일의 철천지 원쑤 미제국주의자" 에게 핵 폐기신고를 마친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는 2003년 12월 23일 김정일에게 WMD포기라는 우정의 충고를 했다는 사실이 시사해주는 바도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잠적의 이유로는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김정일 측근들에 대한 '충성도 시험'과 함께 후계구도에 대한 권력핵심부의 향배를 떠볼 필요도 있었을 것이며, 미일 등 주변국과 이명박 정부의 반응과 친북세력 동향을 다각적으로 추적 분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비핵화 선언 쇠말뚝을 뽑자
우리는 일찍이 김대중이 신뢰하는 김정일 남침전범집단을 상대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서명을 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20년 가까이 착실히 이행해 왔다.
1992년 1월 20일 대한민국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 정원식 국무총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남고위급회담 대표단장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 돼 있다.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 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北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핵무장을 한다"는 억지 논리와 궤변을 앞세워 핵 개발에 매달린 결과 6자 회담과 무관하게 2005년 2월 10일 북 외무성 대변인이 핵 보유 담화를 내보낸데 이어서 2006년 10월 9일에는 핵실험까지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의 준수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따라서 20기에 달하는 원전연료조차 재처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은 2003년 4월부터 핵보유 사실을 유포하기 시작하여 2005년 2월 10일 핵 보유선언,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에 이어 2009년 1월 23일에는 김정일 입으로 미국 오바마 정부에 대고 《핵 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면서 《핵 군축협상》을 제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국방성과 국무성 실무수준에서는 공문서 상에 "북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하여 김정일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손발 묶어 놓고 "나 잡아 잡수!" 하고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다. 구태여 인도와 파키스탄 예를 들고 이란 이락과 이스라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自衛權'과 군사안보 및 경제적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비핵화 선언은 폐기해야 한다.
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미국이 '핵우산'을 당연히 제공케 돼 있다고는 하나 미국이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을 각오하고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냐에 대한 재확인과 保障을 위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연료재처리를 포함한 일본수준의 "핵 주권" 확립은 불가피 하고도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안보당국자에 고한다.
1991년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청와대, 안기부(현 국정원), 국방부, 통일원 당국자들이 무능하거나 무지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상황과 주어진 여건하에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통일'을 위해서 나름대로 헌신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1992년 1월 남북협정과 비핵화 선언이 휴지 쪽이 돼버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함은 물론이요, 그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업적 남기기에 급급한 통치권자 비위나 맞추고 여론의 눈치나 살피고 인기에 영합하여 한껀(件)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 한다면 그런 공직자는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
더구나 국가안보분야 종사자는 만언봉사를 올린 李栗谷 선생의 지혜와 살신성인 한 李忠武公의 용기와 지략, 그리고 애국심이 없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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