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언니도 팝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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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캣츠 임종임, 희자매 말에 당혹...

^^^▲ 임종임씨79년 혼란기,'마음 약해서' 로 국민을 위로한 가수. 그녀는<와일드 캣츠(들고양이들)>의 핵심 멤버로 리드보컬을 담당했었다.
ⓒ 홍기인^^^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는 그 사람. 짜라라짜 짜짜~’

1979년 나라가 온통 어수선 할 무렵 갑자기 등장한 노래.

신명나는 이 노래 하나로 사람마다 온통 그음률에 빠져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남성 보컬들이 우세를 보이던 당시 가요계에 혼성 그룹 <와일드캣츠>가 혜성처럼 나타나 ‘마음 약해서' 등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때이다.

<와일드캣츠>하면 임종임이라 대변된다. 그만큼 대중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임씨의 근황을 알아 볼겸 7월 3일(목) 오후4시, 청담동의 그의 카페를 찾아가 만나 보았다.

"글쎄 짜라라짜 짜짜가 뭐예요? 처음엔 가사가 유치하다 싶었고, 참 많이 속상해 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건 고급스런 POP 음악 이었거든요. 그런데도 자꾸 레코드사 사장인 나운규씨가 설득을 하더군요. 지금 한국은 이런게 더 잘 먹힌다구요. 그래서 녹음을 하게 된 거지요"

1980년대 노래에 어깨춤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와일드캣츠 >의 핵심 멤버 리드 보컬 임종임씨.

임씨는 "'마음 약해서' 는 본 녹음에 들어가기 전 레코드사가 가녹음 한 테잎을 가지고 주변과 관광버스 등을 대상으로 실험한건데 뜻밖에 대박이 터졌다" 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 가사가 성에 안차 여성 멤버끼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훗날, 그룹 리더였던 심재영씨는 “‘마음 약해서’ 를 녹음해 놓고 웬지 힘없이 느껴져 밤낮으로 듣던 중에 어느날 우연히 화장실에서 ‘짜라라짜 짜짜’ 가 떠 올랐습니다.그래서 다시 녹음 했더니 대 히트곡이 된 겁니다." 라며 회고 하기도 했다.

어깨가 들썩이는 '마음 약해서' 80년대 많은 사랑받아

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와일드캣츠>. 최근에는 트롯가수 장윤정의 '짠짜라' 가 이들의 노래 '마음 약해서' 를 떠올리게 한다 해서 화제가 된적도 있었다.

당시에 큰 활약을 했던 <와일드캣츠>는 어떤 그룹이었을까?

이들은 창단 주역인 심재영씨가 20대 후반이던 67년 결혼하면서 18~19세 여성멤버들을 발굴해 이끌었던 그룹이다. 심씨가 이들을 연습시켜 활동하기 시작한 것.

리더인 심재영씨는 리드 기타 임현준과 함께 리드 보컬 임종임, 세컨 보컬 김명희, 드럼 지복희, 베이스 기타 고은진 등 남성 2명 여성 4명 등 혼성 6인조로 구성해 출발했다.

'마음 약해서' 등 노래가 힛트 되기 전에는 국내보다 전쟁이 한창이던 월남에서 군 위문공연을 하는 것을 비롯해 홍콩, 태국 등 해외 공연을 자주 다녔다. 60~70년대로 동남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선구자들 이었던 셈이다

또 1979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해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와일드캣츠>가 오랜 외국 활동을 접고 귀국할 무렵은 사회적으로도 경직된 분위기가 깃들어 있을 때였다.

<와일드 캣츠>란 원래 이름이 <들고양이들>로 바뀐 것도 80년 군부시절 애국의 일환에서 다른 그룹, 가수들과 함께 우리나라 명으로 고치게 된데서 나온 것이다. 투에이스>금과은 , 바니걸스>토끼소녀, 런어웨이>활주로, 블랙테트라>열대어 등으로 고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임종임씨 얘기에 따르면, 자신의 헤어 스타일도 당초에는 요즘 가수 춘자의 가발과 같은 형태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숏커트 스타일 어느날 명동에 갔다가 다가온 한 행인이 트집을 잡아 충격에 미용실로 달려가 귀가 보이도록 밀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헤어 스타일이 바뀐 이유는 장발 등을 싫어한 당시의 헤프닝과 딱딱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에서 풀이된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노래가 대중의 마음을 풀며 신명나게 해 준 "마음 약해서" 란 노래였다. 특히 임씨의 콧소리가 섞인 허스키 보이스와, 카랑카랑 내질렀던 목소리는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대중도 덩달아 이 음률에 흠뻑 빠져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종종 택시를 타게 되었어요. 그런데 탈때마다 기사님들이 카셋트를 트는 데 우리 노래를 제일 먼저 트는 거예요. 그래서 짐짓 모른척 하고, 다른 노래도 있는데 왜 이 노래를 먼저 트냐고 하면 '이 노래가 요즘 제일 힛트치는 노래 아닙니까. 그것도 모르시나요? ' 하고 핀잔을 줄 정도였어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금새 알아보고 싸인을 요청하고, 정말 인기란 게 바로 이런거구나 란 걸 많이 실감 했지요"

가뭄속 단비처럼 등장한 '와일드 캣츠'

80년 들어서면서 <와일드캣츠> 노래는 TV나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수십차례나 흘러 나왔다. 당시에 이국적인 모습의 임종임씨와 예쁘장한 김명희씨를 앞세운 이들은 우리 가요계에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나 다름 없었다.

지금도 '마음 약해서' 등은 여행 갈때나 노래방 등 어디서나 인기 곡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남여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조용필이 발라드로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면, 댄스풍 단연 <와일드캣츠>의 노래가 장악할 무렵 이었다. 특히 와일드 캣츠는 임종임이란 등식이 성립될 만큼 그의 인상은 아직도 올드팬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다.

당시<와일드 캣츠>노래들은 트롯에 유럽풍 디스코(유로 댄스)를 혼합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신나는 디스코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오고 가벼운 뽕짝을 겯들인, 그러면서 부담없이 파고 드는 사운드를 만들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유행어는 "짜라라짜짜짜~" 였고, 1980년대 최고 인기 코메디언들이 출연한 영화 '마음 약해서' 에 까지 흥행에 영향을 끼질 정도였다. 그러나 한창 인기를 얻을 무렵 멤버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80년 세컨보컬 이었던 김명희가 결혼으로 탈퇴하고, 같은 해 키보더로 현재 SBS 악단장인 김정택씨가 가세하게 되었다.

1981년에 팀의 색을 나타내던 임종임씨도 탈퇴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나면' 이라는 노래가 히트 했고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그러나 새로운 멤버간의 불화로 팀의 리더인 심재영씨 마저 떠나게 됐다.

그후 <와일드 캣츠>는 오리지널 멤버가 모두 떠난 상태에서 기타의 임현준씨만 남아 리더로 6집까지 발표했지만, 6집 음반인 "쿵, 쪽지, 파" 를 끝으로 이들의 노래는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 어린시절 얘기를 들려주는 임종임씨
ⓒ 홍기인^^^
유복한 가정 막내 딸...음악 재능은 외가 영향

임종임씨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임씨는 인천에 태어 났다.

그에 따르면 어린시절 인천에서도 무척 알아주는 부잣집 이었다. 그시절 국민(초등)학교부터 드물게 피아노를 배우며 컸다.

딸 셋 중 막내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또 부친은 어린 임씨를 늘 무릎에 앉혀 놓고 애지 중지했다.

임씨는 "아버지가 음식을 입으로 씻어 떠 먹였을 정도였어요. 전 그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게 그분만의 사랑 방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고 회고했다.

"아버지는 운수업부터 수산업 까지 손을 안 댄 사업이 거의 없었어요. 아무튼 그 시절 인천에서 굴러 다니는 건 전부 저희 집 물건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 없었으니까요."

50년대 시발 택시가 나온 무렵, 인천에서 대부분의 택시는 선친이 운영한 업체에서 나온 것이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학교 때 사업에 실패를 하며 가족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임씨 가족들은 서울로 쫓기듯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모니카를 잘 부셨던 것으로 기억나요. 하모니카도 그냥 부르는 게 아니고 한쪽은 리듬을 넣고 한쪽은 박자를 맞추시는 데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부르셨던 것 같아요. 이모도 연예인으로 당시에 유명한 가수들과 순회 공연을 함께 다녔구요".

음악 재능은 외가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학교 때 일찌감치 서울로 온 임씨는 언니의 배려로 용산 삼각지 근처에서 살았다.

그런 그가 자연스레 지날때 마다 본아 둔 곳이 미 8군. 음악적인 끼가 많았던 임씨는 고등학교 때 가방을 든 채로 미 8군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고 합격하는 당돌함을 보였다. 그리고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레이디버드란 그룹에서다.

본격적인 활동은 고교를 졸업한 18세인 67년부터. 리더 심재영씨가 구성한 <와일드캣츠> 멤버로 들어가 국내서 활동했다.

그리고 71년 부터 동남아 무대로 나섰다. 이때 월남을 비롯해 싱가폴, 대만, 베트남 등 순회 공연을 했다. 가장 오래 멤버들이 머물며 활동 했던 곳이 홍콩. 임씨는 멤버들과 이곳에서만 9년 동안 활동했다.

홍콩에서 <와일드 캣츠>는 외국 연예인으로는 특급 대우를 받았다. 한국을 왕래하며 생활하던 시절, 일상은 현지 언론의 주요 화제가 될 만큼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데뷔곡인 '마음 약해서'는 79년 귀국 후 정식 취입해 나온 것.

특히 <와일드캣츠>가 귀국 당시 들여온 악기는 양과 질에서 최첨단으로 다른 그룹들이 무척 부러워 할 정도였다. 이들은 관악기 편성을 줄이고 첨단인 신디사이더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음악성은 펑키한 느낌에 트롯과 유럽의 디스코를 믹스한 퓨전적인 감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요소들이 노래와 어우러져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인 보니엠, 둘리스, 아바, 놀란스 등 처럼 여성보컬을 전면에 세우는 것도 비슷했다. 특히 <김트리오>가 미국서 활동 했다면, <와일드캣츠>는 홍콩과 동남아를 주 무대로 활동한 경력을 갖는다. 이들 해외파 그룹들이 한창 라이벌을 이뤄갈 때 이기도 했다.

그러나 임씨의 보컬 실력은 국내외서 오래도록 다져진 경험을 바탕으로 거리낌이 없었다.그의보컬은 진부하고 경직된 국내의 분위기를 일거에 밀어냈다.

임씨 멤버들의 음악은 계속 힛트를 쳤고 예정된 유럽 진출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한 방송 출연과 가는 업소마다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희자매 한 사람 "어머! 언니도 팝송해?" 말에 당혹

그러나 임종임씨는 <와일드캣츠>가 한창 때인 81년 내부 갈등으로 아쉽게 탈퇴하고, 솔로로 활동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필요로 하는 게 체력.

임씨에 따르면 솔로일때 유명 호텔 무대만 하루에 14 군데나 돌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부족한 잠은 차안에서 채워야 할 정도로 강한 체력을 필요로 했다. 그는 지금도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어릴때 부터 일찍 일어났던 습관도 있지만, 이는 그를 지금까지도 강하게 지탱하게 해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룹 시절 바빠서 못했던 자신의 음악도 추스려 갔다. 팝, 소울, 알앤비, 재즈 등이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나이트 클럽' 은 여느 업소와 달리 고향과 같다고 했다. 이들 업소에서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팝송도 맘껏 부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MBC 출연 차 방송국에서 희자매를 만났는 데 한 후배가 저더러 '어머 언니도 팝송해?' 하고 말 하더라구요. 참 듣는 순간 무척 당혹 스러웠어요. 아마 내가 '짜라라짜 짜짜' 만 부르는 단순하고 가벼운 유행가 가수 쯤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86년 아시안 게임이 열릴 무렵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한 토막이다. 팝은 사실 임씨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했던 장르인데 후배가 너무 몰랐던 탓 이었다. 아니면 음악하는 사람들로서 상대에 대한 지나친 자존심을 세우는 보이지 않는 음악계 풍토 때문이 아닌가 분석되어 진다.

그러면서 임씨는 솔로가 그룹때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했다.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하는 고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그룹도 다시 결성하려고 시도까지 했었다.

솔로 활동 중에 마침 그룹을 필요로 한다고 남서울 호텔에서 섭외가 들어 왔었다. 그래서 부산 대화 호텔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에게 그룹 결성을 하자고 제의를 했던 것.

그런데 수락받은 상태에서 보름 남기고 대화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에 대화 호텔 화재로 동료인 한 남성은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해 사망했고, 한 여성은 호텔서 뛰어 내리다 중상을 입는 등 그룹 결성은 황망히 무산되고 말았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엄청난 일도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임씨에게 출연을 권유해 오는 곳은 많았다. 하지만 방송국의 경우는 한 프로 출연할 때마다 한 두곡 때문에 하루를 다 소비해야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떼창" (한꺼번에 출연자를 세워놓고 몰아 부르게 하는 일) 취급을 하는 등 스타로서 자존심에 상처만 더 해줬다. 이로 인해 방송 섭외가 와도 시들해 졌고, 미련없이 접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임씨는 "요즘은 방송국마다 시청율 올리기만 급급해 옛 가수들에 대해 너무 배타적으러 변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 면서 "기성 세대가 즐길 음악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음악들이 갈수록 밀려나는 현재의 시스템이 안타깝다" 고 토로했다.

^^^^^^▲ 어린시절 얘기를 들려주는 임종임씨
ⓒ 홍기인^^^^^^
끝없는 열정으로 카페<와일드캣츠>찾는 팬들과 호흡해

그러나 임종님씨가 무엇보다 싫어 하는 건 나태다. 그래서 자신의 그룹명인 <와일드캣츠>를 건 카페를 열어 가기로 한 것.

이는 사업가를 떠나 자신을 좀더 채찍하며 음악도 채워가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현재 청담동에 있는 그의 카페에는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는 가수들부터 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는다. 단순히 술을 즐기는게 아니고 음악적인 공감대를 갖고 아름 아름 모여드는 사람들이다.

인터넷 포털싸이트 '다음' 만 하더라도 임씨 팬카페나 개인블로그 등은 15개에 이르며, 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오프라인까지 합하면 국내외서 관심을 갖는 팬들은 <와일드캣츠>와 함께 상당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네티즌 박종성(jookyeo)씨는 "70~80년대 밴드 중에 빠져서는 안될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그분들의 히트곡들이 불려지고 있습니다.7080 방송 관계자 분들도 너무 한쪽 장르만 치우치지 말고 그때의 향수에 빠져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이런 가수들을 섭외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좀 초대해 주세요." 라고 게시글을 올려 임씨의 또다른 열렬 팬임을 밝히고 있다.

"겉보기와 달리 전 마음이 무척 여린 편이랍니다. 20대에는 인기에 영합해 노래를 불렀다면 지금은 진정 원했던 음악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음악이 있다면 누구와 어디서든지 행복합니다"

^^^▲ 솔로 활동하면서 내놓은 앨범^^^
^^^▲ <와일드 캣츠 >1집 앨범. '마음약해서', '십오야' 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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