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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주 시인 ⓒ 김남주시인 홈페이지^^^ | ||
시대가 변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다른 이름은 빛을 잃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그에게 요구되었던 어느 한 부문만이 아닌 다른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도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을 품은
시인의 20대는 유신시대가 있었고 30대는 광주의 참극이 있었던 만큼, 시인에게는 분노와 절망이 연속인 시대였다.
세대가 다른 현재에 와서도 지난 과거의 민감한 시대적 불의에 대한 분노가 잦아들지 않았음에 그 시대에 청년의 나이로, 한 시인으로 겪어내야 했을 고난은 그가 남긴 행적이나 다수의 시로써도 공감하기에는 태부족 일것이다.
고은 시인의 ‘고난의 역사 한반도는 시인의 비옥한 텃밭’이란 역설이 의미하듯 분단과 군사정권의 폭압에 신음하던 시대 상황에 아파했던 한 시인으로서 불행한 다수를 외면 할 수 없음은 그가 저항시인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대의 불의에 대한 불같은 저항 외에, 그의 유년시절의 그리움과 개인적인 서정이 있었음을 그의 시를 통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시를 쓸 때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그저 미지근한 시를 쓰고 있을 때는
제법 보아주는 얼굴이 있고 이름 불러주는 이도 있더라
없구나 이제는 시여 노래여
날 받아줄 가슴 하나 없구나
날 알아주는 얼굴 하나 없구나
칼을 품고 내가 거리에 나설 때는
쫓기는 몸이 되어 떠도는 신세가 되었을 때는
「슬픔」
위 시에서 자신은 ‘칼을 품고’ 시를 쓰게 됨으로써 시인은 사람들에게 이전과는 달리 외면을 받고 시를 통해 ‘가슴’ 안길 곳이 없어지게 됨을 피력한다. 그와 달리 ‘미지근한 시’란 체제 반항적이지 않은 폭압 정권하의 자신의 시에 대한 냉소와 낯 뜨거움을 의미한다. 이런 시인이기에 자신은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외면과 안길 곳이 없음에도 ‘칼’을 ‘품’을 수밖에 없음과 미래에 대한 험한 난고를 슬픔으로 예고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시인은 많은 민족민중시를 남겼으나 그의 개인적인 내면 풍경을 그린 서정시는 그 수면에 있어서도 매우 적다. 하지만 그가 남긴 서정은 존재하고 있다. 시인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파도의 서정
바다의 상징성은 시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생산, 무궁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으나 김남주 시인의 바다는 아무래도 정적(靜的)이다.
뱃길 삼십 리/오가는 배도 없지예//산길 삼십 리/오가는 차도 없지예//구불구불 육십 리/읍내로 가는 길은 멀지예 「파도가 와서」부분
배와 차라는 교통수단의 단절과 거리의 길이까지 먼곳이기에 무궁한 바다는 오히려 시인으로 하여금 유폐의 감정을 느낄 뿐이다. 그 갇힘 속에 바다와 한 몸이라 할지라도 바다의 표면을 일으키며 울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은 시인에게 숨을 내 쉴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된 듯싶다
바다는 울먹이고/섬은 죽고 싶고/어미 등에 업힌 아기/파도가 와서 눈을 뜨게 한다.「파도가 와서」부분
쏟아내어 울지 않는 바다는 단지 ‘울먹’일 뿐 여전히 닫힘이지만 파도는 비록 아주 작은 소리가 남에도 아기의 잠든 눈을 ‘뜨게’ 한다.
위의 시는 시의 화자가 바다, 아기, 섬, 파도 모두에 이입되어있다. 만져지는 물(物)에 대해 ‘울먹’이고 어미의 등에 ‘업힌’ 상황과 ‘죽고’싶으며 또한 ‘뜨게’하는 반응으로 나타난다. 시인의 그 ‘눈을 뜨게’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화자의 ‘죽고’ 싶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의 중요한 심상인 파도가 된다.
바다와 파도는 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정서는 갇힘과 열림의 두 가지 의미를 상충하지 않게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정서는 시인 자신이 0.7평이라는 감옥에서 10년에 가까운 영어(囹圄)의 몸임에도 불구 끊임 없이 자유를 노래함에도 그 맥락이 닿을 수 있다 하겠다.
나는 쓴다
모래 위에 그대 이름을 쓴다
파도가 와서 지워 버린다
지워진 이름 위에 나는 그린다
내 첫사랑이 타는 곳 그대 입술 위에
다시 와서 파도가 지워 버린다
그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위에
나는 판다 오 갈증의 샘이여
깊고 깊은 그대 몸속의 욕망을 오 환희여
파도가 와서 메워 버린다
황혼의 바다 파도는 가고
나는 떠난다
모래 위에 그림자 길게 늘어뜨리고
내 고뇌의 무덤 그대 유방 위에
허무의 재를 뿌리며
「파도는 가고」
파도는 또 한번 시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닫힌 공간에서의 공간이 열림으로 이어주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욕망’으로 ‘환희’로 이어지는 것들을 ‘지워’버리고 ‘메워’버린다. 그런 까닭에 황혼이 된 바다는 ‘파도’와 ‘나’ 가 사라지며 단지 남는 것은 ‘재’가 된다.
그의 시대는 그가 지닌 서정을, 욕망을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없기에 즉 자신의 ‘쓴다’, ‘그린다’를 지우고 메우는 힘든 일을-개인의 이익과 사적인 추구를 억제해야만 하는것의- 시인의 또하나의 내면인 파도가 와서 시인 스스로를 도와주는 것이다.
결국 그 파도는 또 하나의 시적 화자인 시인 자신이기에 모래위에 남아있는 시인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상념과 회한의 일면으로 ‘허무의 재’를 자신에게 ‘뿌리’는 것이다.
고향, 어머니
인간은 스스로 괴로운 현실을 감당해낼 수 없을 때, 곧 잘 과거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고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고향은 곧 영원한 모성(母性)이 변형된 상징이다.
시인의 고향, 어머니의 서정은 그리움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크게 고향의 정겨운 풍경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으로 그려지며 나아가 유년시절의 아름다움이 된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오. 거기에는 굴레 벗은 망아지가 들판을 휘달리고 있기에/거기에는 꼴망태 옆에 차고 낫질하는 초동이 있고/거기에는 똬리끈 입에 물고 두레박을 내리는 소녀가 있기에 「사랑의 기술」부분
어머니 제가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조심하고 사람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
가다 먼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며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어 허리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온 놈이 온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부르기를 남의 집 개 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
가 아니니까요
「편지」
‘내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인 시인의 고향은 농촌의 뼈아픈 현실을 늘 염두에 두었던 파탄과 비참의 공간이 아닌 평화스럽고 전원적인 농촌의 한 전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시인의 어린 시절의 고향의 이미지가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음을 한 시인으로서 알아가게 되었을 때 그의 분노가 농촌의 황폐화에 대해 시로서 더욱 절실하게 표출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즉 ‘망아지’, ‘낫질하는 초동’, ‘두레박’ 은 시인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그리움의 원천이었음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성장해서는 암울한 시대의 상징임에 대한 절망과 저항 그리고 더불어 아름다움으로 복원하고자 할 힘의 밑바탕이 된다.
또한 정에 대한 주된 애틋한 그리움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다. ‘외지’에 보내는 자식에게 떠나기 전에 ‘수수떡 계란’을 주며 ‘옷고름 콧잔등에’ 울음 하는 어머니에 대해 시인은 지치고 험난한 세상에서의 얻기 어려운 깊고 깊은 정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며 그런 회상 또한 시인의 불같은 저항의 힘이 된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그리움은 유년시절의 하나의 심상(心象)이 될 수 있다. 즉 심상이란 것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고, 과거의 감각상의 혹은 지각상의 체험을 지적으로 재생한 것. 즉 기억(memory)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시인의 심상이 하나의 정서로 모아지고 그 기억으로 인해 수인이 된 시인은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또한 어린시절의 몸으로 느끼던 정을 떠올리게 한다. 곧 겨울이 되어 추운 영어의 생활이 시작될 터이지만 늦가을의 햇살은 아직 ‘다순햇살’이 되어 자신에게 따스한 감촉을 주었던 누이의 ‘짜준 목도리’와 ‘입술’에 ‘닿으면’ 어린 시인에게 ‘씹어주’는 ‘빨간홍당무’가 된다.
이 시에서 누이는 그리운 고향인 공간적 정서의 한 요소로서, 또한 어머니는 먹이를 ‘씹어’주는 어미의 자식에 대한 존재의 사랑이 들어있음에 그 토록이나 선명한 ‘빨간’ 먹이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장난
청승맞게도 나는 뺑키통에 앉아 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했다네/나는 이렇게 불렀다네/감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세어보니/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재수 사납게도 나는/간수한테 들켰다네/끌려가 엎드려 볼기짝에 곤장을 맞았다네/어허이 어허이 피멍든 매자국 안쓰러이 만지면서「청승맞게도 나는」부분
감옥
문턱위에
걸쳐있는
다람쥐 꼬리만한 햇살
삭둑삭둑 가위질하여
꼴깍꼴깍 삼키고 싶다
언 몸 봄눈 녹듯 녹을 성싶다
「장난」
모옴의 ‘천재 작가에게는 장난과 진지함이 공존한다’ 라는 것이 시인에게도 부합되듯 장난은 진지한 성찰에 대한 회의・낯섦의 역할을 하는 의미에서 긍정성을 부여할 수 있다.
‘고향 떠난 십여 년’이란 시인의 직접적인 감옥살이의 입장이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언급 할 수 없음에도 ‘뺑키통’에서 ‘유행가’를 부르다가 시인은 ‘재수 사납게’ ‘들켰’으며 ‘볼기짝에 곤장’을 ‘맞’는다고 한다. 폭압의 정권 하에 ‘칼’과 ‘피’의 철저한 투쟁의 시를 쓴 그에게 감옥살이라도 장난과 여유를 내 보이고 있음은 오히려 민족・민중 시인인 그에게 더욱 친근감이 유발되는 그의 정서가 될 수 있다.
또한 감옥의 혹한에 반가운 봄빛이 보이고 그것은 ‘다람쥐 꼬리만한’ 아직까지는 작고 미열에 그치지만 시인에게는 반갑고 귀여운 ‘햇살’이 된다. 그것이 물화되어 ‘꼴깍꼴깍’ 되고 자신의 ‘언 몸’ 이 시인은 ‘녹’을 것이라 한다.
민족시인의 서정
시대상황이 너무나도 암울했던 만큼 자유를 노래하는 시인에게 있어 현실은 고난과 험난함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며 그런 환경으로 인한 저항의 시를 써야 했음은 시인 개인이나 전체에게는 불행한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변화와 개선을 맞으면서 잠시 숨을 고르며 민족시인인 김남주 시인의 내면 풍경인 개인적 서정을 얕으나마 되돌아보았다.
한 시인에게 있어 그에 따르는 다른 일명은 시인 개인에게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영광외에 시인의 또다른 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감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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