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우정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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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우정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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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50년 지기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오늘 하늘이 뚫어 졌는가 할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 마침 바깥 양반은 출장중이고 오랫만에 아주 한가로운 시간이어서 문득 친구 생각이 났다. 해서 전화를 했다. 여전히 맑은 음색으로 모처럼의 전화를 아주 반기는 눈치다.

이 친구와는 그야말로 보리동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성장하였으므로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아주 오랫만에 봐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우린 일상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차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 요사이 <뉴스타운>에 그냥 편지같은 거 내거든 했더니 이친구는 벌써 알아채고 주소를 가르켜 주란다.

학창 시절엔 늘 얼굴이 해맑고 키가 큰(별명:미나리) 그가 부럽기도 했고, 샘도 나고 해서 때론 심술을 막 부리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심하면 한 달 가까이나 말도 안해본 적도 있었다. 풍요롭다는건 너그러움과 비례하는지 이런 나에게 언제나 관대하고 너그러운 친구였다.

몇 년 전 아주 어려울 때 그때 이 친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 "밥은 먹었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는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냥 목소리 속에서도 나를 얼마나 염려하는지 느껴질 정도로 물어주었다.

흔히 여자들 우정은 우정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 친구는 내 허물까지도 감싸주는 우정을 보여주었다. 뭔가 잘못된 일이 있을 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등으로 너그러움을 보여주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너그러움도 때로 내 못난 열등감을 자극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뒷날 생각해보면 참 그런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데, 이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만약 둘 가운데 누구라도 아주 급박한 상황에 닥쳐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까? 난 그 질문엔 기꺼이 친구라면 몸으로 보여 주고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온 터이다. 문득 옛 시절이 잠깐 스쳐간다. 그 젊은 시절엔 무엇에 대한 갈망이 그리도 많았는지. 다행스럽게도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만나서 자주 듣는 속에 어느 정도 음악을 알게 되었다.

그땐 서울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도 없었다. 명동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유명 음악인들이 연주를 하곤 했는데 이 친구는 학생이었는지라 좋은 좌석을 아예 포기하고 제일 뒷자리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가서 연주자들의 손놀림을 보곤 했었다. 그러다 가끔은 자기 손가락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아주 많이 하기도 했다.

그 무렵 '동백림'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에 연루된 윤이상 선생님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윤이상 선생님 구명운동이 일어났다. 그 친구는 내게 말하기를 자기는 음악하길 참 잘했다고, 만약 군인이나 정치인이었다면 윤이상 선생님은 꼼짝없이 사형 당했을 거라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춥던 시절 커피값 50원을 아끼기 위하여 만나기를 서울역 광장이나 남산 야외음악당이었으니 순수한 열정 하나로 뭐든 이루어보고자 번민도 참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양심을 지키며 옳은 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그 시절 순수한 친구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음악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 이십여 년이 훨씬 지났을 것이다. <사랑과 전쟁>이란 영화가 있었다. 크리스 미첨이 독일 대사관 무관으로 가면서부터 시작되는 영화로, 한 유대인 음악가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하루하루 동족의 죽음(가스실로 옮기는 과정)을 독일군의 강요로 연주하게 된다.

그런 그 음악인의 목숨을 연장해 나갈 수 있었던 건 그가 음악가였기에 가능하였다. 전쟁 속에서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그 처절함. 전쟁이 끝났을 즈음 독일군들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가스실로 들여보낼 때 이 음악가도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 한 독일 여장교가 이 음악가를 구출하려 하는데, 어린아이 몇 명도 함께 있었다. 음악가는 눈으로 이 아이들도 함께 구출해줄 수 없느냐는 절박한 눈빛을 보낼 때 그 여장교는 허락하였다. 연합군이 오고 전쟁이 끝났다. 그 독일 여장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음악가와 어린이들은 미국대사관 무관인 크리스 미첨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바이올리니스트보다 독일군 여장교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 모습에 가슴까지 멍하였다. 상상이 지나치는지 몰라도 만약 이 친구에게 바이올리니스트와 같은 상황에 놓여졌다면 나도 그 독일군 여장교처럼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한때 남자로 태어나서 '자기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란 말이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에게만 의리와 정으로 뭉쳐진 우정이 있는것이 아니다. 여자들에게도 꽃보다 더 섬세한 아름다운 우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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