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만 많은 사람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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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만 많은 사람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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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내면의 결단

내가 서울에 있을 때 나는 한 성서연구 모임에 참석을 했었다. 우연한 기회에 합류하게 된 그 모임은 참석인원은 작았지만 거의 2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모임을 특징짓는 것들을 몇 가지 들 수 있다. 우선 학생시절에 시작한 그 모임의 구성원들 중 지방이나, 해외로 떠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그때까지도 그 모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학생시절에 처음 모였던 그들의 신앙고백의 삶을 아직도 그대로 행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뒤늦게 참여했기에 그들의 긴긴 역사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러나 겨우 10여명에 불과한 그들은 한결같이 주부로서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하고, 대학교수로서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봉사하는 가하면, 어떤 이는 생활협동조합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또 자신이 속한 조직의 개혁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했다. 오랜 방황 끝에 결국 내가 찾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진솔한 삶과 드러나지 않는 신앙적 실천은 천 마디 말보다 나에게 더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고, 나도 그들에게서 얻은 힘으로 또 한동안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몇 년 전.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감감해졌을 코소보 전쟁이 벌어졌다. 인종청소라는 말이 유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나는 당시 참담한 심정에 빠졌었다. 성서연구 모임이 끝나고 담소를 나눌 때 나는 역설했다. “이 문제에 눈감고 있으면, 기독교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길 것이다.”

뿌리 깊은 다혈질 기질을 떨쳐 버리지 못한 나는, 그 때 마치 그들이 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무척 언성을 높여서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모임의 사람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모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흩어졌다.

나는 그날 사실 성서모임의 사람들에 대해 일말의 서운함을 가지게 되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불의와 학살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흉내를 낼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저 자신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나에게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더 이상의 일은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 란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으로 서운했고, 한동안 그 모임에 참석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고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그저 씩씩거리며 돌아다녔을 뿐 구체적으로 한 것이 없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불의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면서 그것이 분하기만 했다. 그래서 분을 삭이기라도 하듯이 내가 하던 일에 더욱 열심히 매달렸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지워나갔다. 결국 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들이라고 내가 느끼는 고만한 감상에 젖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만난 후 잠깐 동안 신앙적 열정이 더욱 뜨거워졌다면,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을 그런 문제들을 대면하면서 같이 고민해 왔을 것이다.

그래. 역시 나는 떠돌이, 충동적인 신앙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부근의 문제들 외에는 다른 불의와 다른 문제들에는, 그저 눈감고 귀 막고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성경은 신의 정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고통이 있는 곳에 함께하고,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것, 불가능한 것을 향하요 달려가는 것이 신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이제 나는 그런 의문을 입밖에 내놓지는 않았다. 그저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을 휘몰아친 광풍이 채 삭아 들기도 전에 이라크에 또 살육의 바람이 몰아쳤다. 나는 다시 분노에 몸을 떨었고,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그 분을 풀고 있었다. 그때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그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성서모임 중 한사람이 직장을 휴직하고 인간방패로 이라크로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갑자기 부끄럼이 솟구쳐왔다. 그날 나는 신 앞에 참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말만은 떠버리 중 한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깊은 신앙의 고뇌 없이 가볍게 해버린 한 마디 말이 그 모임의 사람들의 가슴에는 얼마나 아픈 상처가 되었을까. 그리고 묵묵히 내 말을 듣던 그들은 내가 그저 말로만 떠들고 있는 그 순간에 신앙적 결단을 하고 죽음의 땅으로 떠났던 것이다.

“주여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바리세인이 되고 만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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