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지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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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지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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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다

나는 우리 성가대 지휘자님을 너무너무 존경한다. 아니 좋아한다.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그분은 너무 소탈하기 때문이다. 존경을 원치 않는 소탈함, 그래서 존경한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지게 만드는 그 느낌 때문에 정말 존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말이 꼬이긴 하지만 이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지휘자님은 조금 뚱뚱하다. 뚱뚱해서 마음이 좋은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분은 신경이 예민한 분인 것 같기 때문이다. 신경이 예민하다면 짜증을 잘 낸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는 않다. 예배시간은 다되어 가는데 성가대의 연습이 자신의 마음에 차지가 않으면 손수건을 꺼내어 연신 땀을 딱으며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피곤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번 마음에 들지가 않으면 다음 연습에는 다그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대충 대충, 그냥 되는대로만 성가연습을 하려는 마음은 애당초 없는 분인데, 이것저것 온갖 일에 배려를 하려다보니 그 분 마음에 차게 성가연습 준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예배시간이 다가오면 그는 점점 더 많은 땀을 흘린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얼마나 안타까울까.

나 같은 졸병집사야 숨을 죽이고 가만히 지켜볼 뿐이지만,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은 지휘자 집사님이 그러실 때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와 우리 성가대 수준이 많이 올랐어요! 이 어려운 곡도 다 소화하고.” 그래도 지휘자님의 표정이 떨떠름하면 다른 분이 한마디 더 한다. “더 이상 연습 안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시간도 남았는데 좀 쉬었다 하죠.”

지휘자 집사님은 그제야 씩 웃는다. 그리곤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힘들어도 “한번만 더 해 봅시다.”라고 약간의 울음이 섞인 듯한 웃음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인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악보를 아직도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을 해도,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틀린 것을 깨닫는 순간. ‘앗 나의 실수!’ 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서 얼른 악보에 얼굴을 파묻었다가 잠시 후 살며시 얼굴을 꺼내보면, 지휘자님은 전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어. 이 부분이 아직 좀 이상하네요. 우리 다시 한번만 해봅시다.” 대개 이 정도가 지휘자 집사님의 반응의 전부이다.

그러면 나도 조금 용기가 나서 목소리를 크게 내어본다. 그러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예전에 성가대를 할 때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고등부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대예배 성가대로 강제로 승진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나의 ‘능력 없음’을 아는 나는 결사적으로 반항했지만, 나를 ‘아껴주시는’ 분들 때문에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국 성가대에 않게 되었다.

결국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성가대지휘자는 한 음만 틀리게 내면 족집게처럼 집어내셨다. 무서웠다.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입만 벙긋거리고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붕어’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상황이 나를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음을 잘 못 내면, 지휘자는 그때마다 한 줄씩 일어나서 불러보라고 시켰기 때문이었다.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 나의 실수일리는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앉은 줄에서 실수가 발견되면 다시 줄을 반으로 갈라서 세 사람씩 불러보라고 시키셨다. 그러면 나의 ‘붕어’는 표가 날 수밖에 없었다. “김광진 학생. 혼자 한번 불러 보시지.” 이런 끔찍한 순간을 몇 번 겪고 나니 더 이상은 그 수모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주위 분들의 기대와 사랑을 저버리고 성가대를 ‘가출’하고야 말았다.

애당초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 않았는가? 가출 이후에 비로소 느낀 그 자유로운 해방감이란...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의 지휘자님은 도무지 그러시지를 않으니 오히려 미안한 감이 든다. “어 베이스 참 잘하셨는데, 아무래도 이 곡은 베이스가 중요하거든요. 한번만 더 해볼까요. 피아노 소리를 잘 들으면서...” 그러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는 감동이 물결친다.

지휘자 집사님은 음악전공자가 아니다. 시골교회에서 전공자가 그리 많겠는가. 그러니 지휘자님도 더러 실수를 할 때가 있다. 혹은 수 십 년을 성가대를 해 오신 고참 분들의 마음에 차지가 않을 때도 있다. “지휘자님 이 부분은 스타카토를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는 분도 있고 “역 반음을 좀 더 강조해야 이 곡의 맛이 살 것 같은데...”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그런 지적을 하실 때 마다 지휘자님은 더 많이 땀을 흘린다. 손수건이 젖을 만큼 땀을 딱아 내신다. 그것을 보는 내 가슴이 아프다. “아이고 저 착하디 착한 지휘자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동병상린이라고 그 옛날 내가 능력이 없어서 힘들어했던 때의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은 지휘자 집사님의 생일이었다. 집사님이 부끄러워하며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 성가대원 전체가 케이크 주변에 모여 박수를 쳤다. 나는 정말 오래오래 박수를 쳤다. 그래서 손바닥이 아직도 얼얼하다.

언제 몰래 지휘자님 자리에 선풍기를 사드려야겠다. 그러면 땀을 조금 덜 흘리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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