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슴 저리는 일들이 있다. 무심히 살아가는 내 가슴속에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 나에게 주고 가는 선물들이다. 삶이란 이름으로 내 어께위에 눌러않는 부담들도 그렇지만, 삶이란 것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감동이 또한 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아 있을만한 곳이다.
감동이 없는 삶이라면 무슨 이유로 살아 남겠는가. 또한 삶에 고통이 없다면 그러한 삶 또한 무슨 깊은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 때문에 살아간다는 사람들도 결국은 보람과 또한 비애를 함께 앉고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고통의 삶과 감동의 삶이란 눈길로 본다면 그 또한 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간혹 삶이란 것이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어렸던 시기. 생의 고단함이란 것을 전혀 모르던 시절부터, 나는 조용한 구석에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 나이에 내가 무엇을 알아서 그러했는지는 나 역시 알 수가 없는 수수께끼이다. 그게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삶의 원초적 고독’이란 것인가?
그러나 내 눈에 삶이 항상 회색빛으로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수에 젖곤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괜히 기쁨에 들뜨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즐거움이란 알 수 없는 우울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내면이 조용할 때 잘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가기를 좋아했었다.
나는 산마루에 걸쳐 않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기쁨이나 혹 슬픔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찾아오곤 할 때, 나는 그곳 산마루에 홀로 걸터앉아 세상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곳에서 하염없이 구름이 흘러가는 것과, 느릿느릿 저녁이 찾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등을 토닥이고, 볼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바람이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어디로 스쳐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모습을 보지도 못한 바람을 가장 내밀한 친구로 삼아서 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곳 산마루에 않아 무심코 기다리고 있으면 바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타나 나를 벗 삼아 놀다간 어디론가 가벼리곤 했다. 그저 무시로 왔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바람아 놀자 아--” 나는 그렇게 그리움에 젖어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앞산에 부딪쳐 조그맣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에 바람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바람의 미소를 보았다. 귓전에서 까르르 웃고 있는 맑고 투명한 바람의 웃음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났다. 소년은 좀 더 덩치가 자랐을 뿐 여전히 이유 없이 슬픔에 잠기곤 했었고, 여전히 때때로 알 수 없는 감동에 젖기도 하였다. 내 내면의 소년은 여전히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삶의 순간마다 찾아와 주는 바람이 베푸는 그 따사로운 위로와 부드러운 격려의 힘을 빌어서 나는 다시금 세상을 향해 달려갈 용기를 얻곤 했었다.
언젠가. 어둠이 짙어갈 무렵, 나는 바람을 보았다. 바람은 저기 언덕아래서 부드럽게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자락을 돌아서 바람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파릇파릇 생명을 내미는 풀들을 어루만지며, 바람은 그렇게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바람은 내 앞에 멈추어 서서 그 부드러운 손길로 오랫동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나에게 그토록 깊은 따스함을 준 바람의 자취를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두 팔을 감싸 앉았다. 그날은 깊은 어둠이 깃들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날 나는 나의 오랜 친구인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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