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생각나는 장천부두 어부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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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생각나는 장천부두 어부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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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장천부두 어부아저씨들 삶의 애환이 생각난다

한 잠 자고 나니 새벽 3시다. 비는 잠도 안 자는지 줄기차게 내린다. 옛말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고 했던가.

우리집 국화 화분에는 밑줄기가 녹아내린다. 매년 200개에서 300개의 국화 화분을 초봄부터 우리 산에 가서 나뭇잎이 썩어서 부식된 흙을 가져와 거름으로 만들어서 가을이면 이사람 저사람 주는 즐거움이 있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작년만큼 꽃이 잘 필지 걱정이다.

비가 이렇게 올 때면 가장 슬퍼보이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몇 십년 전의 장천부두 어부 아저씨들... 요즘은 수족관이다, 냉동실이다 있어서 괜찮지만 여름 장마비 올 때 생선을 잡아오면 그야말로 개값밖에 안된다.

그 때 내 나이 서른, 수협중매인이었다. 새벽마다 경매장에 들어서면 걸죽한 육자배기부터 시작해서 처음 날 많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거의 매일 듣는 말이 '귀때기 새파란 년'이란 말을...

그때는 너무 분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어판장에는 그말이 일상의 술어였다. 바다에 비가 오면 꼭 바람과 함께 동무해서 온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면 어부아저씨들 얼굴에 슬픔같은 것이 엿보인다. 비 오는 날이면 경매사 호가 소리가 귀에 쏘옥쏘옥 잘 들리는데 비 오는 날은 생선값이 사정 없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거센 파도와 비를 맞아가면서 잡은 생선이 비오는 날이면 제값은 커녕 개값밖에 안된다. 그때 젊은 사람들은 지금이나 예나 그래도 덜하지만, 나이드신 어부의 굵은 주름잡힌 얼굴엔 슬픔이 한가득! 그보다 더 한 것은 헛헛한 허탈한 표정엔 인생의 진한 슬픔이 배나오는 듯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비오는 날이면 경매 끝나고 다음 작업을 위해 기름 사고 시꾸미하는 사이 난 그들을 불러서 댓병 소주에다 몇푼의 차비를 쥐어 주곤 했다. 그땐 왠지 꼭 그래야만 될 것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도 장천 부두에 가면 이집 저집에서 서로 밥 먹고 가라고 한다.

어부들의 인생엔 바다에 나가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음으로 그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처절하기까지 해보였다. 여름이면 안토 <바닷가> 수온이 높아지므로 궁여지책으로 바다에 상고선을 띄워서 작업배에 실어날랐는데, 그 당시 이 분들은 주 작업장이 거제 구조라에서 욕지도 사이였다.

거제 구조라 바다밑에는 여(바위나 자갈 깔린 곳)로 되어 있어서 광어, 도다리(광어, 도다리는 깊은바다 돌 사이에 붙어있다) 많이 잡혔는데, 그 중에도 범도다리(등에 얼룩무늬)는 광어값과 맞먹을 정도로 고급 어종에 속한다.

구조라에는 참돔, 광어, 이스가리, 도다리, 농어 등 고급 어종의 보고였다. 이 분들의 작업 방법이 고대구리(저인망)이어서 부정어업에 속했다. 배 두척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함께 그물을 끌어가는 작업인데, 나의 상고선은 거제 해금강에다 대놓고 작업이 끝날 즈음에 작업선에 가서 물량을 받아오곤 했다.

그런데 한번은 경비선이 나타났다. 난생 처음 목격한 것이라 나로서도 많이 놀랬고, 어부들은 잡히게 되면 거센 파도와 싸워가면서 작업한 돈을 몽땅 벌금으로 줘야되고 심하면 구속까지 되므로 경비선은 달려오고 급하기는 하고 해서 난 코쟁이 아저씨 그물 끊어요, 그물 끊어요 외쳤다.

결국 그물을 칼로 자르고 배는 옥포만으로 달아났으므로 다행히 경비선에 잡히지는 않았다. 배 시꾸미중에 그물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크고 그물을 만들려면 또 며칠을 허비해야 되는데 "뱃놈 손에 물 떨어지면 돈 떨어진다"고 당장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 안 될 수 없는 이들로서는 막막하기 그지 없는 노릇이었다.

한 동네에서 배 몇 척이 함께 작업 나간 지라 함께 작업나간 배들이 그물을 같이 건져주러 나간 사이 여름 비는 왜 그렇게 많이 오는지 연세가 제일 많으신 팽씨만 남아서 잔태미(잡어) 손질하고 있는 옆에서 난 그저 내 탓인 양 미안해서, 아저씨 다음에 많이 잡으면 되지요, 너무 걱정 마이소 라고 연발하며 소줏잔만 자꾸 건네다 보니 팽씨 아저씨 불그레해진 눈자위에 눈물이 비칠 때 그때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을 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팽씨 아저씨 생각이 나므로 농작물 보다 바다에 나간 어부들이 더 걱정된다. 오늘도 비는 왜 이렇게 오는지 벌써 보름도 넘게 비가 온다. 인생에서 가장 진한 슬픔을 보았던 구조라에서 작업 하시던 그 팽씨 아저씨,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신지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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