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연애하는 시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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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연애하는 시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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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독서이야기] 연애시집

^^^▲ <연애시집>의 표지
ⓒ 마음산책^^^
저는 김용택 시인의 시를 '겨울밤에 빛나는 작은 불빛'으로 표현해 봅니다.

어린 시절, 시린 겨울한기를 피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던 온돌방 같기도 하고,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도 오싹해지던 촉수 낮은 전구 불빛 같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따스함'으로 정리되겠지요.

그의 시는 일시적인 숨구멍 트기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있기에 '희망'의 눈을 뜨게 만듭니다. 그 희망은 부풀려지지도 어설프지도 않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놓쳐서는 안 될,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잘 보이지 않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니까요.

그의 '연애시집'을 처음 접하게 된 때가 떠오릅니다. 그 때 제게 있어 연애란 때묻은 상상의 단어로 전락한 지 오래였지요. 그러니 신선함 자체로 믿고 따르던 '섬진강'의 저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용택도 별수 없이 인기에 영합하고 마는구나!' 했지요.

하지만, 표지에 그려진 병풍 같은 이미지하며, 그 속에 담긴 키 작은 풀들의 소박한 움직임을 통해, 아니 몇 편의 시를 읽는 순간 곧 알게 됐습니다. 단순한 연애시가 아님을 말입니다.

역시 '김용택답게' 자연과 연애하고 합일(合一)하는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더라고요. 그제서야 '연애'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다가섰습니다. 시인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식의 반영으로 이해되더군요.

시인은 이상적인 말솜씨로 우리를 다루려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시 한 수 한 수에 억지 감동을 묻혀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조르지 않지요. 그러니 미더울 수밖에요. 자연의 철학으로 우리들 삶을 견뎌내는 법을 가슴에 촉촉하게 전해줍니다.

한 세월/ 꽃을 보며 즐거웠던 날들,/ 당신이 가고 오지 않아도/ 이제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줄을 알겠습니다 ('세월이 갔습니다' 중에서)

이 시는 꽃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지난날을 되새기면서, 세월의 흐름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피어나는 꽃이지만 지금의 꽃은 예전의 그 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전엔 '당신'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꽃의 존재가 드러났지만, 지금은 세월을 통해 깎여질 대로 깎여진 자신의 내부를 통해 꽃을 바로 볼 수 있음도 말해줍니다. 단순히 당신이 올 때를 알려주는 신호의 위치에서 당신이 없는 지금에도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꽃 말예요.

이처럼 그의 시는 꽃과 풀, 강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써 세월의 자연스런 흐름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 녹아드는 삶이 사랑임을 다정하게 들려줍니다.

해는 높고/ 하늘이 푸르른 날/ 소와 쟁기와 사람이 논을 고르고/ 사람들이 맨발로 논에 들어가/ 하루종일 모를 낸다/ 왼손에 쥐어진/ 파란 못잎을 보았느냐/ 캄캄한 흙 속에 들어갔다 나온/ 아름다운 오른손을 보았느냐/ 그 모들이/ 바람을 타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파랗게/ 몸을 굽히며 오래오래 자라더니/ 흰 쌀이 되어 우리 발 아래 쏟아져/ 길을 비추고/ 흰 밥이 되어/ 우리 어둔 눈이 열린다/ 흰 밥이 어둔 입으로 들어갈 때 생각하라/ 사람이 이 땅에 할 짓이 무엇이더냐 ('흰 밥' 전문)

'흰 밥'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입니다. 풀 한 포기가 밥이 되어 우리 입 속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그린 작품이죠.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밀어 넣기'에 바쁜 우리들의 식습관! 먹을 수 있게 제공된 밥에 대한 고마움은 어쩌다 언론매체를 통해 기아난민들을 본 직후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파랗게/ 몸을 굽히며 오래오래 자라더니...'에서 쌀은 안간힘을 쓰며 생존해 감을 느낍니다. 그런 쌀은 곧장 인간에게 바쳐집니다. 그저 몇 푼의 돈에 팔리는 거죠.

고마운 밥, 생명의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착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느냐고 시인은 목소리를 높입니다. 인간에게 유용함을 제공하는 존재들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시인은 또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마치 모내기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늘은 푸르고, 사람들은 흙빛 논으로 발을 담급니다. 파란 모를 보러 흙 속에 들어갔다 방금 나온 손이 보이네요.

흰 밥이 어둔 입으로 들어갈 때, 그 까만 어둠이 바로 앞에서 만져질 듯합니다. 이 시는 김용택의 손이 아니면 쓰여지기 힘든 시처럼 보일 정도로 제게 직격탄을 마구 쏘아대는군요.

문득 청명한 가을 아침이 그리워지면 세상의 모든 것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저는 이 시집을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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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집 2007-12-10 14:22:21
자연을 더불어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의 차원 높은 시상에 매료되어진 필자의 순수함이 또한 돋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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