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일기장에는 무엇이 씌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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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일기장에는 무엇이 씌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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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 장편소설 <어린날의 초상>

 
   
  ^^^▲ 한국소설가협회
ⓒ 작가 김주영^^^
 
 

"후평동 산마루 위에 검붉게 지는 노을 때가 되면 나는 조금씩 배가 고파왔고 그 배고픔이 안겨다주는 야릇한 향수와 고독감 같은 것을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듯 좋아하고 있었다./ 휘파람은 후평동의 대밭 사이를 지나서 산을 적시고 있는 노을에 같이 묻어서 알 수 없는 나라로, 내가 갈 수 없는 나라로..."

<객주>, <홍어>의 작가 김주영(64)이 무섭도록 가난하고 무섭도록 몸부림쳤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장편소설 <어린날의 초상>(개미)을 펴냈다. 이 소설은 일제시대에서 해방 이후로 넘어가는 시기, 경북의 오지에 있는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작가의 유년에 대한 기록이다.

알다시피 작가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에 있는, 말 그대로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래. 1939년이라면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그 해가 아니던가. 그리고 김구 선생이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취임한 그 해가 아니던가.

"나는 그 세 시간을 내내 혼잣소리로 징징 울었던가 보았다. 나중에 목청을 높낮이로 조절해가며 흥얼흥얼 혼자서 울었다. 끝내엔 날이 저물었다. ‥측간에 가면 달걀 귀신이 있고 뒤꼍에 가면 몽당 빗자루 귀신이 있고, 호젓한 오솔길에는 처녀 귀신이 머리를 풀고 기다리며, 우물 속에선 과부 귀신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가‥."

그랬다. 그리고 몇 년 뒤, 작가가 일곱 살 때였던가. 마침내 일제가 무조건 항복선언을 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소년 김주영은 그런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쉬이 판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1940년대 주인공 무도(김주영)는 그렇게 혼잣소리로 징징 울었다. 목청을 조절해가면서까지. 그와 더불어 날이 저물면 집 안팎에 마구 돌아다닌다는 수많은 귀신들 땜에 무서워 덜덜덜 떨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니 철이 들어갈 무렵부터 어른들의 삶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과부인 어머니와 마을 어르신과의 비밀스럽고도 이상스런 관계,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도 존경스러웠던 담임선생님의 은밀한 밀회, 낫으로 사람을 찔러죽인 살인현장 등.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급기야 무도에게도 직접 닥쳐온다. 그렇게 아끼던 동생이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무도는 삶의 슬픔을 가슴 가득 담고 자라난다.

 

 
   
  ^^^▲ 김주영 <어린날의 초상> 표지
ⓒ 개미^^^
 
 

<어린날의 초상>은 면사무소가 있는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이 주 무대다. 전국 어디를 가나 으레 시골에 있는 마을이 그러하듯이 이 작은 마을에도 지서가 있고, 양조장과 이발소, 도축장, 가마터, 우체국 등이 있다. 그리고 과부가 있고 그 과부의 정부인 술밥집 사내가 있다. 게다가 아리따운 국민학교 여교사도 있고, 동경에 유학을 다녀온 백수 같은 인물도 있다.

주인공 무도는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말썽꾸러기 소년이다. 무도는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덜 떨어진 희자에게 쌍욕을 하면서도 단짝으로 지낸다. 그런 어느날, 무도는 담임선생님과 희자의 외삼촌이 밀회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해 입 다무는 조건으로 부반장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무도가 그러한 말썽꾸러기가 된 것은 결국은 어머니 때문이다. 두 아들을 둔 무도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어버린 뒤 밤마다 마을의 두 남자와 음욕을 불태운다. 그 두 남자는 다름 아닌 박술이와 칠성이 아버지다. 그러나 그로 인한 갈등 때문에 결국 박술이가 칠성이 아버지를 낫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무도의 담임이었던 여교사 또한 가난한 시골마을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여교사는 마을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희자의 외삼촌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몸을 허락한다. 희자의 외삼촌은 동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식인이다. 그래서 여교사는 희자의 외삼촌을 통해 도시로 향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지만‥.

이 소설은 배고픔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온, 그런 삶 속에서도 늘 일탈을 꿈꾸는 1940년대 우리 시골마을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시골풍경 또한 흑백필름처럼 희미하게 다가온다. 발가벗고 멱을 감던 개울가, 배가 고파서 주워먹었던 감꽃, 탱자나무 울타리, 술도가 등.

하지만 주인공 무도는 결국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시골을 버리고 도시를 향해 떠난다. 왜? 어머니의 불륜까지 용서하고 받아들인 무도였지만 그 시골마을에서는 늘 폐허라는 느낌만 떠오를 뿐, 결코 희망이라는 싹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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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03-07-09 17:40:44
70년대 안동문화회관에서 자주 뵈었지요. 큰키에 눈매 깊으신분,
동생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랍니다. 글 잘읽었읍니다.

엔짱 2003-07-10 01:00:45
항상 좋은글 좋은기사 올려주시는 종찬님... 혹시.. 소설가?

이종찬 2003-07-10 18:03:15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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