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스팔트 뚫는 '야생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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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아스팔트 뚫는 '야생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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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야생화
ⓒ 박소영^^^
 
 

예전에 제 할머니는 화분에 핀 꽃을 가리키시며 "이제 막 봉우리가 반쯤 벌어져 있는 게 꼭 우리 소영이구나!" 하셨어요. 그리고 한쪽에서 땅에 꽃잎을 떨어뜨린 꽃을 당신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저는 꽃을 볼라치면 사람의 생애의 위치를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는 모든 꽃이 '할머니 꽃'이 아님을 느끼기 시작했지요. 꽃 자체는 다른 꽃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여도 꽃잎을 한 잎 두 잎 떨구어낸 꽃이, 금방 만개한 꽃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 때 저는 알게 되었어요. 지는 꽃은 땅에 떨어진 꽃잎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을 말예요. 그 스러진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꽃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도 자연'이라는 등식은 그렇게 할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워졌지요.

 

 
   
  ^^^▲ 지난 봄, 서울대공원 호수 주변 언덕배기이곳도 겨울엔 황량한 왕릉 같았다.
ⓒ 박소영^^^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제 봄은 그 꼬리마저 찾을 길 없고 여름이 턱하니 주인 행세를 하고 있네요. 그저께가 아마 소서(小暑)였지요? 이렇게 꽃의 향연은 끝이 났습니다. 저는 '왜 꽃들은 봄에 유난히 많이 피는 걸까. 계절별로 나뉘어 고루고루 피면 어때서...'라고 중얼거립니다.

축제가 짧듯 봄도 우리에게 너무나 짧습니다. 봄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왔잖아요. 여름이면 저 같은 전업주부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진저리를 칩니다. 또 아이들 간식과 늘어나는 빨래와도 한바탕 전쟁을 치르지요.

하지만 여름은 뜨거운 햇살을 이고 짙푸른 초록빛을 우리들에게 선사합니다. 하기야 그 누군가는 여름의 그 초록을 권태로 상징하기도 했지요. 생활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보면 그럴 법도 하겠지요.

아무튼 저는 지금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스팔트 속 땅의 색깔과 냄새를 맡고 싶은 게지요. 어린 시절, 흙장난을 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흘리던 그 흙의 촉감을 느껴볼 수는 없는지 등등을 상상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우리가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 보지요. 결국 땅의 호흡을 막아버린, 서울을 단 한 가지 색으로 규정해버리는 아스팔트를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습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제대로만 볼 수 있다면, 이 여름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봅니다. 그 때, 문득 태양이 제게 말을 건네왔어요.

"마당 없는 네 집에서 나와 옆집의 담장에 목을 빼고 키를 세워라. 너의 머리에 씌울 화관을 만들어 놓았으니"라고요.

 

 
   
  ^^^▲ 마당 있는 옆집에 피어난 여름꽃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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