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의 영웅적인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이 다들 쉬고 있을 때, 휴가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면서 일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며 좀더 열심히 해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오긴 했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변명의 전부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아빤 왜 내 친구 아빠보다 못해?” 라고 물어오는 날이 있다면, 나는 위의 이야기들로 어색한 변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남자 아이들이 둘이다. 한살 차이가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수준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작은 아이는 아직 딱 한살의 나이만큼 세상 때가 덜 묻었다. 그래서 한 살 차이가 나는 형한테 물어볼 궁금한 것이 많다.
“형아. 우린 왜 수영장 안가?”
“얼마 전에도 갔다 왔잖아”
“있잖아. 앞집 OO네는 얼마 전에도 다녀왔는데 또 갔어. 근데 우리는 왜 안가?”
“임마. 우리 집은 돈이 없잖아”
겨우 한 살 차이가 나는 큰 아이는 마치 속에 영감이 들어 않은 것처럼 이야기 한다. 작은 아이는 듣고 보니 그 말이 옳다 싶은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있기가 왠지 민망하다. 그래서 못들은 척 하려다가 한마디 하고야 만다.
“우리 집이 돈이 없어서 수영장에 자주 못가는 게 아니야! 너무 자주가면 얼굴이 까매지잖아. 그래서 안가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또 저희들 끼리 토론을 벌인다.
“OO는 얼굴이 까매지면 감기가 안 걸리고 좋다고 하던데...”
“아냐. 형아는 바보야. 아빠 말이 맞아...”
가만히 들어보면 큰 아이의 말이 맞다. 그래. 수영장에 자주 다녀오는 건 피부도 검어지고, 몸도 피곤하긴 하지만 확실히 돈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지만 선 듯 길을 나서기가 쉽지가 않다.
무릇 수영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에서 필요한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 모든 것에서 일정한 자제를 하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아이들 눈에는 그렇지 않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만 자꾸만 보이나 보다. ‘그래 아빠가 못나서 그렇다.’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심사가 편치만은 않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다. 결코 게을렀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단지 나보다 더 지독했던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그 차이 때문일까. 지금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주눅이 드는 것은?
‘그래 가난이란 결코 배고픔이란 모습으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조금 우울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것에 관해선 지금은 큰 욕심이 없다. 미련을 버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한때는 그 성공이라는 것의 언저리까지는 가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마음에서 지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은 원래 가져보지 못한 것에 애착이 남기 때문이다. 한때 내 분야에선 성공의 언저리까지 꽤 접근을 했었고, 또 약간의 명성도 얻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그런 것으로 마음을 태우지는 않는다. 단지 나는 한번씩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내 인생에서 아쉬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젊었을 땐 호기롭기만 했었다. 어지간한 작가의 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글이라고 쓸 바엔 차라리 펜을 꺽어 버리겠다.’ 나는 당시 그런 말을 쉽게 하곤 했었다.
이젠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의 글을 차근히 읽어본다. 그곳에 담긴 내용을 느끼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말들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어떻게 이렇게 적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쉬운 문장으로 어떻게 이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글을 읽어본다. 이런 잔잔한 내용을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깊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역시 나는 아직 2류 일뿐이다.
“우리 아빠는 맨 날 맨 날 책만 봐. 그러니까 아는 게 대개 많을 꺼야. 형아. 그치!”
“그래 우리 아빠는 맨 날 공부만 하니까 똑똑하지.”
“우리 아빠는 또 맨 날 글만 써. 어쩌면 글도 대개 잘 쓸 거야”
“야. 어쩌면 잘 쓸 거야가 뭐야. 우리 아빠가 최고야”
그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2류 인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의 눈에는 그런 내가 아직은 1류 로 보이는가 보다. 그러나 내가 언제까지 내 아이들에게 1류 아빠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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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도 잘난 사람들이 설쳐서 현기증이 나는 시대로군요.
진정한 양심 계산이 없는 순수한 양심이 어디 없읍니까?
잃어버린 양심 그리고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봐야 할때가 아닌가?
양심의 소리가 바로 참언론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