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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바라본 안압지 ⓒ 이종찬^^^ | ||
"월지(月池)란 이름이 너무도 고운데, 왜 하필이면 안압지라고 부르게 됐을까요?"
"안압(雁鴨)이란 한자가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 아인교."
"아하! 그래서?"
"그기 아이고. 통일신라가 망한 뒤부터 이곳이 폐허가 되었다고 하니더. 그때부터 못 주변에 있는 흙이 못 안으로 흘러들고, 갈대가 자라나면서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날아들었다고 하니더. 그걸 보고 조선시대 선비들이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하니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는 유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경주 나들이를 시작했어. 지난 오월에는 젖먹이 아기가 마악 걸음마를 배우듯이 그렇게 어설픈 경주 나들이를 했지. 문무대왕 수중릉을 시작으로 기림사와 감은사지를 거쳐 토함산과 석굴암까지 둘러봤어. 나의 경주 길라잡이 신 선생 몰래 말이다.
근데 신 선생이 내게 마구 호통을 쳤어. 천년 고도 경주를 관광 오듯이, 아니 그렇게 수박 겉핥듯이 훑으면 어쩌냐고. 그리고 동해에서 경주 답사를 시작했으면 골고루 훑어야지, 기림사까지 갔다가 골굴암을 빼먹고 왔냐고.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신 선생과 함께 다시 골굴암에 다녀오기도 했어.
나는 처음 경주 나들이를 불국사부터 시작하려고 했었어. 그리고 제일 먼저 불국사부터 갔었고, 그 뒤에도 서너 번 더 갔었어. 하지만 아직까지도 불국사는 의문투성이야. 그래서 불국사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만 미루고 있어. 불국사는 이 다음에 아빠가 한두 번 더 다녀온 뒤에 이야기를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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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궁으로 사용되었던 임해전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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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압지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임해전 ⓒ 이종찬^^^ | ||
오늘은 경주시 인왕동 26번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임해전과 안압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마. 바다가 임하는 대궐이란 뜻을 가진 임해전(臨海殿)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 즉 신라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이었단다. 그리고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기도 했고.
그러나 신라 말기에는 이곳이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했단다. 왜냐고?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후백제의 왕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고려의 왕 왕건을 이곳에 초청하여 도와달라며 잔치를 베풀었어. 그리고 마침내 신라 최후의 어전회의를 열어 왕건에게 항복하는 글을 이곳에서 작성하고 말았단다.
임해전은 처음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 14년, 그러니까 서기로 674년에 세운 건물이야. 그때 임해전 옆에 월지(月池)라는 연못을 파고 월지 가운데 3개의 섬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섬과 못의 북동쪽에다 12봉우리의 산을 만든 뒤 그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었어. 진귀한 새와 짐승들도 함께 길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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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안압지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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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해전과 안압지 ⓒ 이종찬^^^ | ||
그래 그 연못이 바로 안압지란다. 하지만 처음 이 연못의 이름은 월지(月池)였단다. 이름이 참 이쁘지? 근데 고려시대 문신이자 학자였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관한 기록만 나오고 월지에 관한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고 해. 월지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대.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었다" 라고.
<동국여지승람>은 또 뭐냐고?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성종 때, 성종의 명을 받은 노사신(盧思愼) 등이 조선 팔도의 지리와 풍속을 적어놓은 책이란다.
그 뒤 신라가 멸망하자 이곳은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대. 일제시대에는 이곳 주변에 철로가 놓이면서 더욱 황폐화되었고. 당시 임해전 터의 월지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단다. 그리고 1980년에 접어들면서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고.
그때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지. 그 중에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이 나왔는데, 그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단다. 보상화무늬와 조로가 무슨 뜻이냐고? 보상화는 쉽게 말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꽃이야. 조로는 연호지. 조선 고종 때에도 '광무 몇 년'이라고 불렀듯이.
그래서 임해전이 문무왕 680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어. 또 대접이나 접시 같은 그릇도 많이 나왔대. 그 그릇들은 신라왕들의 무덤에서 나오는 장식품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했던 것이래. 학자들은 이 임해전이 비록 별궁에 속해 있었던 건물이긴 하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다고 말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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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와 오리가 놀았다 해서 이름 붙혀진 안압지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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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호수엔 녹조만 끼어 ⓒ 이종찬^^^ | ||
그래. 지금도 안압지 옆에는 철로가 놓여있고 기차가 다니고 있어. 또한 등에 까만 줄이 세 개나 그어진 다람쥐들이 서너 마리 놀고 있어. 이 다람쥐들은 아빠가 옆에 다가가도 별로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어. 동그란 눈을 빛내며 입술을 옹송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까 오히려 먹을 것을 달라고 기다리는 눈치였어.
"이런 이런! 이게 뭐야? 녹조 아냐?"
"그렇니더."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연못에 수로시설조차도 제대로 안 되어 있나요?"
"처음에는 수로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고 하니더. 하지만 복원공사를 한 뒤부터 물이 연못을 골고루 돌아나오지 못하는 것 같니더."
"그러니까 입구에 녹조방지공사를 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구먼."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가 안압지에 갔을 때 안압지 뒤편의 물위에는 초록색 띠가 파랗게 뒤덮혀 있었어. 마치 누군가 초록색 물감을 금방 풀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말이야. 그래서 아빠가 경주시 사적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어. 녹조방지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할 것이며, 언제 마무리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공사가 아니라 공기지요. 공기는 60여 일을 잡고 있지만 비만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번 달 안에 마무리가 될 겁니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물을 빼고 있으니까요."
"다른 식물을 심는다고 되어 있던데?"
"오월에 하려고 하다가 관광객들 때문에 늦춘 겁니다. 일단 물을 모두 빼낸 뒤 수생식물인 연과 말 등을 심을 계획입니다."
"연과 말을 심으면 녹조가 방지되나요?"
"실제 이 곳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 연못에 연과 말 등을 심어 녹조를 방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근데 한가지 신기한 것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월지가 한눈에 다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야. 학자들은 이를 보고 당시 신라인들의 조경기술이 참으로 뛰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월지의 안벽 높이는 2.1m정도이고 임해전이 있는 서쪽 호수 안은 5.4m로 조금 더 높아. 이는 누각에 앉아 월지를 내려다보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래.
월지 바닥에는 돌을 깔아 놓았어. 이 돌은 월지 속에서 다른 수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그랬어. 수풀이 어때서 그러냐고? 월지에 수풀이 자라면 답답하고 좁게 보이겠지? 그리고 학자들은 당시 월지의 깊이가 약1.8m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지금은 비록 녹조가 파랗게 끼여 있지만 처음 이 월지에는 수로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단다. 월지로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동남쪽 귀퉁이에 있었고, 정원 못과 연결되어 있었대. 그리고 두 개의 수조가 약 20㎝간격을 두고 있었고. 그 수로 주변에도 넘치는 물이 못 빠져나가게 넓직한 저수조까지 만들어 놓았다나.
물이 연못으로 떨어지는 지점에도 판판한 돌을 깔아놓았대. 이 돌은 물이 떨어질 때 연못 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해서였지. 그리고 물들이 연못 곳곳을 휘돌아 동북쪽으로 빠져나가게 만들었단다. 게다가 이곳에는 나무로 된 마개까지 있었대. 이 나무마개로 수위를 조절했고.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지혜롭지?
이곳 월지에서는 약 3만여점의 유물들이 나왔대. 학자들은 이 유물들이 당시 왕과 신하들이 월지에서 연회를 할 때 빠진 것들이라고 해. 그리고 신라가 멸망한 뒤 이곳이 폐허가 되면서 홍수 등으로 휩쓸려 들어간 것도 많을 거라고 했어. 학자들은 이 유물들을 보면서 신라시대 귀족들의 생활상까지 엿본다고 그래.
"임해전을 월지궁으로 부르기도 했다면서요?"
"반월성이 옆에 있고, 동궁의 위치가 연못 속에 아른거리는 달을 감상하기 좋아 월지궁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하니더."
신 선생은 아는 것도 참 많아. 그래서 아빠가 경주 나들이를 할 때마다 신 선생을 그렇게 모시고 다니는 거야. 또한 신 선생은 이곳 경주에 살면서 무슨 발굴공사 현장이나 보수공사 현장에 나가 참으로 일을 많이 했대. 그리고 그때 학자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까먹지도 않고 잘도 기억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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