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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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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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원의 책방 탐방(1)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표지
ⓒ 열화당^^^
따뜻한 향수(鄕愁)를 몰고 오는 사진, 그리고 독립적인 산문의 형태로 읽히는 단상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꿩 주고 알 주는'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사진작가 한정식님의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한정식의 사진 산책(1999, 열화당)'이 그 주인공이에요.

저자는 젊은 시절 문학도를 꿈꾸었던 이답게 흑백사진 컷마다 문학적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곁들여진 여러 단상들도 예순을 훌쩍 넘긴 저자의 연륜을 낭만적인 어투로 자근자근 전달해 줍니다.

사진 속 현실과 그 시간 너머 존재하는 지금의 현실 사이, 그 아득한 공간이 주는 서글픔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체를 밝히고 있지요. 한낱 종잇장에 불과한 사진 컷에 우리네 삶의 웃음과 울음을 녹여냄으로써 '모든 길은 사진으로 통한다'는 명제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누구나 사진 촬영에 익숙한 요즘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낳은 풍경이지요. 하기야 휴대폰으로도 피사체를 담을 수 있으니, 실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포착해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진 홍수 시대이지요.

하지만 저자는 말합니다. "결정적 순간이란 찰나적으로 스쳐 가는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의미가 작가의 내면과 만나는 심리적 순간을 뜻한다"고 말예요. 한 순간의 영감을 위해 무수한 고뇌의 밤을 지새듯 사진작가는 '125분의 1초'의 그 찰나를 위해 무한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고백입니다.

"녹차 향이 우러나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 한정식님의 작품을 여기 몇 점 소개하는 것으로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대신해 봅니다.

^^^▲ '오월에’ 1980, 서울 광화문 사거리
ⓒ 김유원기자^^^

글자만 읽어서는 아무런 뜻이 잡히지 않는다. 바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서야 이 문구의 뜻은 읽힌다.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걸어놓은 글귀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이 만국공통어라는 것도 거짓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문구는 질서 잡힌 안정 속에 국가발전을 위해 모두가 합심해 일하고 있는 태평성대를 구가한 글귀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슬픈 어린이’ 1986, 강원 삼척
ⓒ 김유원 기자^^^

아이들 사진이 밝아야 한다는 까닭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라고 언제나 밝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는 법인 것을.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 사람들은 이어진 대륙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섬이라고. 그래서 외로운 거라고. 다만 외롭지 않은 체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랬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1993, 서울 누상동
ⓒ 김유원 기자^^^

사진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사진으로 그린 훌륭한 그림이 많이 있고, 거기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은 사진작가들도 제법 있다. 그러나 사람 속에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사진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땅 위에서 땅에 속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사진은 가장 커다란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하여 우리 선배들은 한때 사진이 예술이 아님을 소리 높이 외쳤다. 사진은 예술 이상이라는 자부심이 거기 있었다. 사진의 예술성을 주장한 사람들은 오히려 아마추어들이었다.

사진은 설사 예술이 못 된다 해도 사진일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을 포기할 때 사진은 오히려 그 예술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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