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일 유인태 정무수석을 통해 이와 같은 요청 서한은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보냈다. 대통령이 국회 개회를 앞두고 특별서한을 보내 법안 처리를 당부한 경우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추경안은 경기 회생과 민생안정 위한 긴급대책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에게 "저는 국정의 동반자인 국회를 존중하고, 협력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정의 반 이상은 국회의 몫이고, 국회의 절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먼저 협조를 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경제회생과 민생보호에는 정부와 국회,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그 동안 여·야의 내부사정과 정치적 쟁점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 있는 민생법안과 경제회생 법안, 그리고 추경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추경안은 침체된 경기를 회생시키고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긴급대책"이라고 강조하고, 정부가 지난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한 4조1천775억원 규모의 추경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력히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추경예산은 투입시점을 놓치면 그 효과가 크게 저하된다는 점에서 국회의 특별한 배려를 요청한다"며 "이번 추경안은 건전재정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연내집행 가능한 필수 사업만을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은 △사회간접자본 등 건설투자에 1조5천374억원 △서민과 중산층 지원에 6천585억원 △수출·중소기업 지원에 5천901억원 △농가소득 보전과 농업기반시설투자에 3,857억원 △지방교부금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9천364억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고용허가제 미룰 이유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인고용허가제 처리도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외국인고용허가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중소기업의 원활하고 합리적인 인력수급을 위해 합법적인 외국인력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말까지 20여 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의 강제출국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사회혼란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실시하기로 한 바 있다"며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는 해소되었다"고 평가하고, "더 이상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국회의 협조를 구했다.
경제체질 개선과 투명성 강화 위해 증권관련집단소송제 도입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드러난 대기업의 분식회계 사태는 전체 경제에 큰 혼란과 불안을 가져왔다"며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세계는 지금 우리 경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상기시켰다. 이어 노 대통령은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자의적인 기업경영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체질 개선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증권관련집단소송제의 도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한 노 대통령은 "여야정책협의회 등을 통해 도입에 따른 보완책도 충분히 논의된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률안의 통과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신용불량자 해소''한·칠레 FTA 비준' 협조 요구
노무현 대통령은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위한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양산된 개인신용불량자의 조속한 해소도 우리 경제와 민생의 긴급한 과제"라며 이 법안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은 △부실기업의 효율적 처리를 통해 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신용불량자 가운데 정기적 수입이 있는 채무자에 대해서는 복잡한 파산절차에 따르지 않고서도 신속히 채무를 조정해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농민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해 있는 한·칠레 FTA 비준과 관련, "세계각국이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FTA를 체결하고 추진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만 예외가 될 수는 없다"며 이 협정의 국회 비준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대신 노 대통령은 "정부는 그 동안 농업인등의 의견수렴과정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해 종합대책안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개방에 따른 충격을 최대한 줄이고, 농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통령 국회 서한 발송, 헌정사상 초유
노무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국회의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국회 의사국에 접수·등록한 것은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이날 의견 전달은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는 헌법 제81조 규정에 의한 행위"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이병완 정무팀장은 "이번 서한 전달은 대통령이라는 정부조직이 국회라는 정부조직에 대한 행위"라며 "앞으로도 공식서한 전달 등 법에 따른 투명한 의견 전달은 '참여정부 대(對)의회 관계정립'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노 대통령의 대국회 서한에 대해 "국회를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같이 해나가는 동반자로서 존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로서 국회를 장악하던 시대를 끝내기 위한 새로운 대(對)의회 정치형태를 만들어 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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