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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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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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청계천!" 청계천에서의 마지막 하루 낮과 밤

^^^▲ 청계천의 마지막 야경. 무던히 많은 차가 마지막 길을 가보고자 진입했습니다
ⓒ 김규환^^^


청계천에서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그 길이 나를 불렀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가 흥인지문(興仁之門)과 평화시장을 돌고, 저녁 나절부터 새벽까지는 고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점심 때 도깨비 시장을 간 것은 행여나 아는 사람 한 분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 얼마나 달라질지, 정말 그렇게 바뀔지, 교통은 문제 없을지, 상인들은 어떻게 될지...
ⓒ 김규환^^^


사실 청계천과 나는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닙니다. 그 육중한 시멘트 덩어리가 서울에 올라오던 첫날부터 나를 짓눌렀습니다. 어찌 보면 서울을 떠나 살기로 작정한 것이 이 청계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섯달 동안 삼일아파트에 살면서 그곳만큼 춥고 그늘진 곳이 따로 없다는 걸 느꼈고, 시끄럽고 촌스럽기 그지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숨도 콱콱 막혔습니다.

^^^▲ 평화시장에서 동대문종합시장으로 넘는 육교 위에서 흥인지문을 바라보다.
ⓒ 김규환^^^


대학 논술고사 보던 날은 내 인생이 뒤바뀔 뻔한 험한 길이었습니다. 눈 내리던 날 시멘트 바닥 복개천에서 차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니 초조해서 주위 지나가는 아무 거나 잡아타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가까스로 연탄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보니 논술문제는 어젯밤 혼자 써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형이 공장을 해서 가방 부속과 바클을 두 가마씩 지고 버스를 타고 동대문 시장에 내려 청계천을 지나 왕십리, 답십리도 마다 않고 심부름했던 기억도 아련합니다.

그래서 나는 서울 길을 조금 알고 부터 절대 청계천 그 다리 밑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종로 통을 빠져나가는 게 훨씬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더 막혀도 굳이 동대문에서 세종로를 따라 서대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 평화시장 헌책방. 많이 사라지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황학동으로 옮겨간 곳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마저 헐릴 모양이니...
ⓒ 김규환^^^


그렇다고 청계천이 싫은 존재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 때 시위를 나가서 쫓기면 얼른 어디고 숨을 데가 많아서 좋았고 숨기 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입을 심심찮게 해 준 곳도 청계천 주변에 있는 광장시장, 황학시장, 동대문 시장입니다. 곱창 알게 된 것도 그 곳입니다. 더 알게 되어 신당동 중앙시장까지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고가를 타면 시원스레 질주를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내에 그런 길이 마땅히 없었으니 일부러라도 그 길을 택해 먼 길을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뿐입니까? 청계천에 가면 주머니 사정 뻔한 내가 구두 사기 좋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3~4만원은 줘야 사는데 ‘길거리 표’는 8천 원이었으니 어찌 청계천을 안 찾고 배기겠습니까.

^^^▲ 밥을 이고 청계고가 밑을 가려고 하시는지. 찍지 말라더군요. 그래서 "예!" 했습니다.
ⓒ 김규환^^^


참 이상합니다. 다른 곳은 다 1가가 있는데 왜 청계천 1가는 없을까요? 촌놈이 서울 올라와서 궁금한 것 한두 가지겠습니까마는 정말 청계천 1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광교가 대신 있을 뿐입니다.

종로 1가에는 사과나무를 심고, 을지로 1가에는 감나무를 심고, 퇴계로 1가에는 배나무를 심어 가을날의 동화를 얘기하곤 하는데, 수표교가 근처에 있을 뿐 나무 심을 자리 하나 없었습니다. 2층 도로 아래엔 그림자도 밟을 틈도 없이 그늘만 져 있었습니다. 이러니 처음 와 본 누군들 허둥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걸 누가 보상해 줄 겁니까?

^^^▲ 추억의 사진을 흑백으로 한 번 보시죠. 삼일아파트 16동에서 내려다 봄
ⓒ 김규환^^^


아래로 그냥 가면 조명가게가 즐비합니다. 탱크도 만든다는 골목이 있습니다. 없는 부속이 없는 악세사리 가게가 있고 주방 씽크대 전시장이 늘어서 있습니다. 없는 포장재가 없는 시장도 있습니다. 주단을 깔려면 어렵지도 않습니다. 헌책방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길바닥에서 냉장고도 만드는 곳이 청계천입니다.

옷가게는 더 이상 가게가 아닙니다. ‘뚝딱’하면 옷 저고리가 나오고, ‘그래야’하면 바지가 나오며, 평화도 모자라 동평화, 청평화, 제일평화가 들어섰고, 요즘 자투리땅엔 공룡 옷 시장이 사람 겁먹게 합니다. 밤새 노래 불러주는 가수들은 밤잠도 없나봅니다.

^^^▲ 대부분 빠져나간 삼일 아파트 16동 난간에 아직 떠나지 못한 곰인형이 목발을 짚고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섬득하던지요. 청계천의 현주소 같습니다.
ⓒ 김규환^^^


그렇게 왼쪽에 동대문을 두고 6가 지나고 7가로 들어서면 내리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8가에 볼 게 많기 때문입니다. 누군 도깨비 빼고 다 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밤이나 비 오는 날에는 도깨비도 헐값에 나오니 말입니다.

성동기계공고 아이들이 한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굳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등하교 길에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장사니 힘들여 기계를 만질 필요가 없었다는군요. 그러니 골머리 썩여 공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헛소문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동묘 쪽에도 내가 다닐 적엔 한적했습니다. 이제는 낮이고 밤이고 길거리에 빈자리가 없더군요.

^^^▲ 청계8가 황학동 도깨비시장-풍물시장
ⓒ 김규환^^^


청계천은 푸른 실개천도 아니요, 계곡에서 멱감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헤어짐이라 생각하고 가보았습니다. 나중에 나를 책망하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더군요. 이제 사람들의 손때와 애환을 가득 품고 그 징글맞던 청계고가도 한 줌의 돌가루로 바뀔 운명에 처했습니다.

애증(愛憎)이 그렇듯 나도 청계천을 증오하고 사랑했었던 거 같습니다. 막상 헤어진다고 하니 섭섭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치 오랜 연애를 나눈 사이처럼 겉으로는 싫어하면서도 실상은 마음으로 좋아했던 건 아닐는지요?

생존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노점상들이 좀더 일찍 서둘렀다면 마지막 헤어짐이 그리 초라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터인데 무척 아쉬웠습니다.

^^^▲ 어제 까지는 저렇게 올라갔습니다. 이제 누구도 올라 갈 수 없겠지요.
ⓒ 김규환^^^


몇 사람 빼곤 다시는 지나가지 못할 길에 올라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그 오랜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안달이 나 새벽까지 그 곳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왜 나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청계천을 앞에 두고 살았었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섭섭하네요”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었는데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이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청계천을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30년 넘게 고가를 보며 살았었는데 내일부터는 없어진다고 하니 시원하면서도 섭섭합니다.”
“예전엔 이곳이 미나리꽝이었다우~”

건물 옥상에 사람들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고가에 올라 역사적인 순간을 오래 점찍어 두고 왔습니다.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지만 옥동자와 예쁜 공주가 태어나길 원합니다.

^^^▲ 차 없는 고가 진입로. 2003년 7월 1일 00시 부터 차가 진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는 거리를 보았습니다. 내려오기 싫더군요. 집으로 가는 길에 참 많이
ⓒ 김규환^^^


청계천이 살아나기를 희망합니다. 청계천이 새로운 문화를 써나갈 수 있는 터전이길 바랍니다. 청계천에 멋들어진 건물과 좋은 공원만이 아닌 사람 살기 좋은 곳, 볼거리 많은 거리, 오래 머물고 싶은 고향 같은 자리로 재 탄생하길 기대합니다.

이왕 심는 것 소나무를 즐겨 심고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보리수나무, 정금나무 여덟 가지로 나눠 심어주고 9가에는 아무거나 심으세요. 곳곳에 담쟁이, 칡덩굴, 능소화, 으름덩굴 올리고, 바닥엔 들국화, 벌개미취 넘실대게 해주시면 시골 가서 살더라도 일년에 두어 번은 와서 놀다 가리다.

언젠가 청계천에서의 추억을 말할 날이 있겠지요. 아팠던 기억은 하나하나 잊을 작정입니다. 그와 부대낀 소중한 만남 자체만 오래 남겨둘 생각입니다.

마지막 바람이 있습니다. 우선이 사람 살리는 일입니다. 먹고 살 수는 있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 다음에 물과 나무를 푸릇푸릇하게 살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는 청계천과 긴 이별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아!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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