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서린 햅번패션 리더로서 미국여성의 모범으로서 영화계의 '퍼스트 레이디'가 사라지다. ⓒ 사진/Reuters^^^ | ||
배우 생활 50년 동안 12번이나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4번의 오스카상을 받은 캐서린 햅번(Katharine Houghton Hepburn)이 오래 동안 파키슨병으로 투병 생활을 해오다 최근 여러 날 말을 하지 못하며 지내다가 노환으로 미 코네티컷 자택에서 향년 96세로 29일 오후 2시 50분(현지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의 화려한 생을 마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녀는 코네티컷 하트포드(Hartford)의 상류층 의사가정에서 1907년 5월12일에 태어났으나 참고문헌에 따르면 2년 반이나 늦은 1909년 11월8일이 생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캐서린 햅번은 12번의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1933년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로 첫 번 째 오스카(Oscar)을 수상에 이어서 "게스 후 커밍 투 디너(Guess Who's Coming to Dinner), "더 라이언 인 윈터( The Lion in Winter), "온 골든 폰드(On Golden Pond)"로 총 4회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캐서린 햅번은 "리틀 우먼(Little Women)", "더 아프리칸 퀸(The African Queen)", "더 필라델피아 스토리(The Philadelphia Story), "어 빌 오브 디보스먼트(A Bill of Divorcement)", "팻 앤 마이크(Pat and Mike)", "아담스 립(Adam's Rib), "스테이트 오브 디 유니언(State of the Union), "롱 데이스 저니 인투 나이트(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등을 포함해 고전적 영화에 출연했다.
^^^▲ 러브 에페이(Love Affair)1994년 그녀의 마지막 작품 ⓒ 사진/vdohouse.com^^^ | ||
그녀의 마지막 작품은 1994년의 "러브 어페어(Love Affair)"였다.
1985년에는 레이디스 홈 저널지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칭찬 받는 여성으로 뽑히는 등 많은 미국 여성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녀는 미국 영화계에서 '퍼스트 레이디'라고 불리어졌으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뛰어나온 광대뼈, 뉴잉글랜드 귀족풍의 목소리였다.
"비유적으로 그녀는 팬티 속에 여성을 집어넣은 사람이다"고 그녀의 자서전 집필자 크리스토퍼 앤더슨씨가 2000년에 로이터통신에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그녀는 그 동안 할리우드가 배출한 배우 중 가장 위대한 스타였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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