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한강선 저지 & 한강 방어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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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한강선 저지 & 한강 방어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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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히고 치이는 처참한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져

^^^▲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
수도 서울 전투

공산군이 38선에서 일제히 침공이 가해지자, 정부당국이나 일반국민들은 해방 이후 간간히 전개되어 온 공산군의 국부적인 공격으로만 생각하였고, 방송은 국군이 즉각적으로 반격을 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는 동안 남쪽에서부터 속속 북송되는 누런 카키복을 입은 국군이 화차에 실려 서울역을 지나갈 때마다 이것이 심상치 않은 사태라는 생각들이 서울시민 사이에 깃들게 되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피난민의 대열은 이런 생각을 더욱 확정적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고, 27일 은은히 들려오는 포성은 이것이 전면전쟁이며 전쟁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국군이 계속하여 적군을 격퇴하고 있는 중이며, 머지 않아 38선 너머로 쫓아낸다고 연일 방송하고 있었고 신문보도 역시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수도 서울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국민들이 안도감을 갖도록 촉구했다.

27일 서울 교외에서 포성이 은은하게 들리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서울 사수를 결의하고 공포했다. 이때 지하에 숨어있던 공산주의자들이 혼란을 틈타 거리에 나와 별라별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수십만의 괴뢰군이 서울을 완전 포위했다”느니 부산과 인천에 몇 개 사단의 괴뢰군이 상륙하여 벌써 함락되었다느니, 소문은 소문에 꼬리를 달고 퍼저 나갔다.

재빠른 사람들은 짐을 꾸리고 가족들을 데리고 한강을 건넜다. 열 사람, 스무 사람이 보따리를 싸자 너도나도 150만 서울시민이 피난의 대열에 한꺼번에 끼어 들었다. 25일에서부터 28일 다리가 끊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과 어울려 수십만의 대열이 한꺼번에 한강인도교로 몰려들었다.

차는 차대로 남으로의 길을 메웠고 밟히고 치이는 처참한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누구의 입에선지 다리가 끊어졌다는 말이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27일 낮까지 수십만의 시민들이 다리를 넘었고, 밤이 새는 동안에도 한강 다리를 뒤덮는 인파는 그칠 줄 몰랐다.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은 서울 사수를 명령하고 국군의 전투병력을 미아리고개에 투입하였으나 사실상 이 명령에 따를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27일 미 극동군의 연락장교단 파한이 알려지고 맥아더 원수가 수원으로 날아와 전선시찰을 하고 가자 한국군의 사기는 충천하여 뿔뿔이 흩어졌던 대오를 다시 정비하였고 한강 인도교 폭파로 하여 인민군의 남하를 일시나마 저지시켰다.

괴뢰군 야전사령관 최용건은 27일 서울을 향해 항복 할 것을 방송했다. 육군 당국은 길을 차단하고 서울 북방의 모든 교량을 폭파시키고 공산군의 전차 진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세웠다. 괴뢰군 선발대는 27일 오후 7시 30분에 서울에 친입 하였으나 완강한 반격으로 곧 격퇴되었다.

28일 02시경 적의 전차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시내로 침공하자 미아리 방어선은 붕괴되고 28일 시내 곳곳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이는 시내에 남아 한강을 건너지 못한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국군은 후퇴를 하면서 싸웠다.

이에 앞서 27일에는 이미 수도 사수를 약속했던 정부는 대전으로 수도를 옮겼고, 육군본부도 수원으로 후퇴를 하였다. 육군은 본부를 수원에 설치하자 분산 낙오되어 오는 각부대 병력을 끌어 모아 혼성부대를 편성하였다.

이들을 노량진, 영등포, 과천 등지의 한강 남쪽에 배치하여 적의 도하를 저지하려 했으나 28일 완전히 서울을 점령한 공산군은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한강 남안의 국군은 갑자기 혼성하여 소총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좌우 연락도 두절되었다.

육군은 시흥에 제1군단을 편성,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한강 상류의 서빙고 연안을 이미 건넌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풍덕리 부근을 점령하고 그 길로 수원을 향하였다.

<4회-한강 방어선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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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22 22:36:30
새벽녁 한강인도교 예고없는폭파로 뒤에서 밀고밀려 강물속으로 빠져죽은자가 군인피난민 자동차 할것없이 수도없엇다는데 이런불상사가 역사속에서 점점멀어져가는구나, 다시는없어야될 민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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