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네틱스> Dian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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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네틱스> Dian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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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한권의 책[1]

"이제부터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경험해 주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 <다이어네틱스-정신건강에 관한 현대과학>표지^^^
이렇게 시작하는 책 "다이어네틱스-정신건강에 관한 현대과학"에 관해서 말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에 앞서 L. 론 허버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다이어네틱스"의 저자이기 때문입니다.

L.론 허버드는 현재까지도 가장 높이 평가되는 저술가 중 한 사람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저서들은 50종류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지에서 120만권 이상이나 팔려 나갔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론의 저서 속에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삶과 그 능력에 대한 식견, 다시말해, 삶의 방관자가 아니라 온 정열을 다 바쳐 살아오는 과정에서 체득한 산 지식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론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인생을 이해하려며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만 합니다. 바로 그곳에 발을 딛고 서서 살펴보았을 때, 존재의 가장 심오한 부분에까지 철저히 탐색했을 때, 그리고 각계각층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사귀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업적이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미국 몬타나 주의 광활한 산지에서 중국의 고지대, 알래스카의 얼어붙은 해안, 남태편양 군도의 정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과 함께 탐험하거나 미숙한 현지의 팀원들을 지도해 가며 세계대전의 파도를 넘었던 L.론 허버드야말로 인간과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리한 지성과 넘치는 에너지, 무한한 호기심, 그리고 실현성과 실용성에 가장 중점을 둔 철학과 과학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으로써 론은 이미 10대 소년 시절부터 삶과 그 수수께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잇따른 여행을 통해 그는 극동 철학에 담긴 지혜를 연구하는 한편, 만연한 고통과 궁핍에 대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극동이 그처럼 심오한 지혜의 보고라면 어째서 현실은 이렇게 비참한 것일까라고 론은 자문했습니다.

1929년 미국으로 돌아온 론은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수학과 공학의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미국 최초의 핵물리학 교과 과정에 동록했던 사람 중 한 명이자 대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에 관한 최초의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론은 물리학 분야에서 이룩된 그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인간의 정신과 생명Life에 대한 활용 가능한 기술은 전혀 개발된 일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의 정신에 관한 "기술", 즉 심리학과 정신의학이란 사실상 야만적이고 거짓으로 가득찬 학문이었으며, 열대 정글의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방법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론은 존재의 기본원칙-지식의 통합을 이루는 한편, 존재 그 자체에 내포된 의미를 설명해 줄 원칙-을 발견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이는 이제까지 그 어떤 철학자들도 성공하지 못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다양한 환경 및 문화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여름, 대학을 떠난 그는 일련의 탐사여행을 시작했는데, 우선 카리브해 연안 지역으로 향해 그는 Martinique의 원시부락을 조사했습니다.

몇 달 후 West Indies로 돌아 온 론은 하이티 섬을 포함하여 기타 섬지역의 문화와 부두교에서의 비의적인 신앙등을 연구하였고 뒤에 푸에르토리코 구릉 지대 거주민들의 신앙에 대해서도 조사 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 온 론은 이론의 기초를 강화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1937년에는 일련의 생울학 실험을 통해 존재에 관한 역동적 원칙-모든 생명의 공통분모-생존!-을 확인한 획기적 발견을 했습니다.

이러한 발견의 성과물을 손에 쥔 론은 1938년 벽두부터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관한 철학서인 "엑스칼리버Excalibur"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초고가 완성되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요청했으며, 엄청난 호평을 얻게 됨에 따라, 여러 출판사들이 이책의 출판을 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치로볍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출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엑스칼리버"에 기록된 발견들이 이후에 활용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기본적인 내용은 모두 이후에 론이 발표한 저서나 저작물을 통해 소개 되었으니까요. 론은 연구비용의 대부분을 소설을 써서 얻은 수입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는 2차대전 중 미 해군에 복무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1930-40년대에 걸친 모험 및 SF 소설의 황금기에 가장 인기있는 작가 중 한사람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무렵 약간의 부상을 당한 론은 1945년 봄, 치료 중이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Oak Knoll 해군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크놀병원에 입원 중인 해군 및 해병대 출신 5천여 환자 중에는 남태평양 군도의 일본군 수용소에서 해방된 수백명의 전쟁 포로들이 섞여 있었으며, 론은 해군병원의 의료진들이 기아 및 기타원인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된 이 석방포로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주고자 론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적용시켜 보았습니다.

획기적인 뱔견을 해내고 치료법을 계속 발달시킴으로써 론은 스스로 부상에서 획복함은 물론, 다른 병사들이 건강을 회복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이후 론은 여러 달 동안에 걸쳐 사상 최초의 정신치료법을 정리하였으며, 꾸준히 자신의 과제에 대한 저서를 집필하기 위해 연구기록을 모았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이론을 보다 확실히 입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 헐리우드에 사무실을 개설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으며, 곧 그의 도움을 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업청나게 몰려 들었습니다.

1947년 말까지 론은 정신현상의 발견에 관한 원고 개요를 작성하였습니다. 이 원고는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것을 복사하여 서로 돌려가며 읽어보았습니다. 이것은 1951년에 출판되었으며, 책의 제목은 "삶의 원동력 The Dynamics. of Life" 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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