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염색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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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염색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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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노랑머리를 까만머리로 염색하며

지난 일요일이었다. 아들이 느닷없이 "저, 염색 좀 해 주실래요?"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불과 몇 일 후면 병역대체복무시험과 동시에 면접을 봐야 하는 아들이었기에 아들은 그처럼 자신의 현재의 노랑머리를 까맣게 염색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었다.

하기사 면접관이 보기에도 다소 거부감의 드는 서양문화의 잔재이기도 한 노랑머리보다는 한국적인(?) 까만 머리색깔이 어쩌면 점수를 더 후하게 줄지도 모르는 법이었기에 나는 흔쾌히 아들의 머리를 염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마침 전에 내가 딱 한 번만 사용하고 남았던 염색약이 있었기에 그걸로 아들의 노랑머리를 까맣게 도배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작년 봄에 대학생이 되자마자 은근슬쩍 날 회유하려 들었다. "저도 ... 머리염색을 하면 안 될까요?" 하지만 나는 완고하고 조금은 고루한 사고를 지닌 40대 한국남자의 전형이었다. "뭬야? 너마저 노랑머리로?" 나는 손사래를 쳤고 마침 TV에 나와서 전신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어떤 노랑머리 여가수를 애꿎게 폄훼하기 시작했다. "쯧쯧, 저게 뭐냐. 요즘엔 어떻게 다들 저처럼 노랑머리 일색이란 말이더냐?"

그러자 아들은 방향을 바꿔 아내를 집요하게 졸랐고 아들의 공작(?)에 지친 아내는 날 꼬드겼다. "당신이 눈 딱 감고 봐 주구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었고 아들은 작년부터 의기양양하게 노랑머리가 되었다. 하지만 병역의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보니 이젠 자신의 머리색깔이 조금은 부담이 됨을 느끼는가 보았다.

정성껏 아들머리를 염색해주고 함께 미장원에 가서 머리까지 자르니 축구스타 안정환 선수의 사자갈기와도 같던 조금은 산만했던 헤어스타일이 금새 얌전하고(!) 정숙한 까맣고 짧은 헤어스타일로 변모가 되는 것이었다. "야~ 우리 아들 예뻐졌다!"에 면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들은 싫지않은 표정이었다.

내 나이 이제 몇 해 전에 불혹을 지난 겨우(?) 40대 중반이건만 머리는 집안내력인 관계로 벌써 몇 년 전부터 하얗게 백발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으면 50대 초반으로까지 나이가 먹어보이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선친께서도 이미 당신의 연세 30대 때부터 염색을 하셨다. 아울러서 선친은 이따금씩은 나의 손을 빌리시어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시곤 하셨다.

지금이야 제약회사는 물론이요, 이런저런 화장품 회사에서도 모두 머리 염색약을 만들어 시판하면서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시대지만 당시엔 00제약의 '양귀비'라는 염색약이 그야말로 부동의 베스트셀러였다. 선친은 그 양귀비 염색약을 사다 머리에 바르시어 흰 머리를 감추시고 당대를 아무 멋지게 사셨던 분이셨다.

나는 기실 머리염색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작심을 했다. 그건 재작년까지만 해도 중학생이었던 딸의 학교가 집에서 멀리 위치해 있던 관계로 내가 등교는 자주 시켜주지 못할 망정 퇴근할 시간이면 가급적 딸의 하교시간과 최대한 맞추어서 딸의 학교 앞으로 먼저 가서 딸을 기다리곤 하면서 지켜본 작금의 세인들 머리염색 신드롬이 그만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딸의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가 다니는 딸의 학교 앞에서 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재작년 봄의 어느날이었다. 학교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한 대 태우고자 차 밖으로 나와서 서 있었는데 그 해의 대학교 새내기인 듯 보이는 여학생 둘이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두 여학생들의 머리는 하나는 파랑색으로, 또 하나는 빨강색으로 염색을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힐끗거리며 나 역시도 곁눈질로 그 두 여학생을 훔쳐보고 있는데 마침 딸아이가 학교에서 나오다가 그러한 내게 묻는 것이었다. "아빠, 지금 뭘 보세요?" "으응... 저기 가는 저 여자들 머리색깔을 보고 있다."

담배를 끄고 승차를 하려고 차 문을 여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외분이 지나가시다가 좀 전에 지나친 그 두 여학생의 머리색깔을 보셨음에서였는지 연신 혀를 차시는 것이었다. "말세야, 말세... 미국 사람도 아닌 우리나라의 젊은 여자들이 왜들 저렇게 죄 머리를 염색하는지 모르겠어..." "암요, 임자 말이 맞수. 하지만 어디 저런 애들만 그런가요, 우리집 며늘아기도 저러고 다닙디다..."

누군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컬어 "'따라하기 문화'가 대단히 발달한 국민이다" 라고 했다던가. 길을 걷노라면 요즘 여성들치고 머리를 염색 안 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연히(!) 까만 머리색깔이어야만이 정상적인 한국인이며 이는 또한 영원한 한국인의 불변의 법칙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견지해 온 구세대적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까만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로 작심을 굳힌 계기는 3년 전에 처음으로 참석했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받은 쇼크에서 기인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어언 30년이 넘은 장구한 세월 뒤에 만난 동창생들은 오랜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나처럼 많이 부식돼(?) 있기는 했으나 아무튼 예전의 모습들은 다들 그렇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흰 머리색깔을 보게 된 동창생 녀석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이구~ 형님 오셨습니까?"라며 놀리는 것이 아닌가! 어떤 녀석은 한 술 더 떠서 "할아버지"라고까지 놀리기도 했으니 내가 어찌 쇼크를 받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 후로 대오각성(?)한 나는 염색약을 사다가 내 흰머리를 까맣게 가리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가려움증'이라는 염색의 후유증이 심해진 탓에 이제는 염색을 안 하고 있다. 그러한 증상을 일컬어 알레르기라고 한다는데 아무튼 염색을 안 함으로 해서 그동안은 별 탈 없이 잘 가려져 올 수 있었던 나의 백발이 하지만 앞으로는 만천하에 공개된다 행각하니 '이젠 정말이지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인생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그만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다.

각설하고 내가 청년기 때만 하더라도 여성의 치렁치렁한 까만 머리는 정말이지 고혹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움이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머리색깔을 고수하는 여성은 이제 거의 없는 듯 하여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오늘 아들이 병역대체복무시험과 면접을 보려고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섰다. 까만 머리에 단정한 머리 모습으로 갔으니 반드시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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