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줄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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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줄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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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삶 찬양하며 죽음의 루트 개척

알면 안다 하고, 모르면 모른다 하라.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논어 제2편 “위정(爲政)” 중에서 -

논어의 홈페이지를 펼치면, “자왈(子曰)”하며 아래의 구절이 나온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또 익히니 기쁘겠지요.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또 찾아오니 즐겁겠지요.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남이 몰라도 신경 꺼야 또한 군자겠지요.
공자는 “또또또”를 세 번씩이나 강조하여 군자를 소인에 비추었다.

구구절절 노래 같고, 삶을 찬양하는 대가의 품위가 묻어난다. 이성의 로고스(logos), 윤리의 에토스(ethos), 고뇌의 페이소스(pathos)가 일통(一統)하는 모습이다. 공자가 이런 말씀을 읊던 무렵은 아마 말년이었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하나 뒀던 아들과 제자 여럿을 먼저 보내고, 부귀영화를 포기한 상태 아래에서 이와 같은 소회(所懷)가 나올 법 하기 때문이다.

수천에 이르렀다는 뭇 제자로부터 대성(大成)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았던 공자, 그는 자기 삶에 관한한 명쾌했다. 안연(顔淵) 편에, “사랑에 살고 미움에 죽자는 식으로 살기 죽기 바란다면, 이건 종잡을 수 없지요.(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이어서 그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갈파한다.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등등.

이런 공자가 아동처럼 “배우고 익히니 기쁘다”라고 고백했으니, 그가 그토록 몰랐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이었을 것이다. 선진(先進) 편에,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하물며 귀신까지 잘 섬길까. 삶도 잘 모르면서 어찌 죽음까지 말하랴.(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공자는 철두철미 삶 위주였다. 여러 번 죽지 말고 제대로 한번 죽자는 삶이다.

곧고 반듯하게, 직방(直方)이다. 곤위지괘(坤爲地卦)의 육이효(六二爻)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周易)은 시경, 서경, 예기, 춘추와 함께 오경(五經)으로 일컬어진다. 오경은 공자가 예전의 문헌, 역사, 예절 등을 모아 체계를 잡은 것으로, 특히 예기(禮記) 49편은 상례(喪禮)를 주축으로 짜여져 있다. 상(喪)은 소인의 죽음 사(死)와 군자의 죽음 종(終)을 아울린 말로 쓰인다.

상례의 하이라이트는 부친상이다. 무덤 옆에 움막 짓고 3년간 시묘(侍墓)하는 것을 효(孝)라 보았다. 참최복(斬衰服)으로 만 2년간이지만, 소복입고 또 두 달이니까, 평상복으로 세상에 나가기까지는 적어도 25개월은 족히 걸렸다. 이것은 어릴 때, 적어도 3년간 부모 품에 안겨 생명을 보존한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손자 대까지 이어 시제와 기제로 배향하였다.

“스님, 물은 왜 위에서 아래로 흐르나요?”
“스님의 법명은 왜 금산인가요?”
그러자, 쓸데없는 질문까지 해대는 제자에게 선사(禪師)는 말했다.
“너는 알 줄만 알고, 왜 모를 줄을 모르느냐?”
가끔은 향기 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박건삼), 책자에 나오는 한토막이다.

죽음은 홀로 타는 암벽등반과 같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가파른 절벽에서 외줄에 목숨을 매달고 전인미답의 루트를 개척하는 모습이 아닐까. 드라마 작가 김윤경은 길을 내서 가는 것을 “등로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산우(山友)로서 작가로서 언제나 등로주의를 택했다는 분이다. 등로주의에 상반된 등정주의는 이미 나 있는 길 따라 오르는 것으로 시청률 지상주의이다.

상평통보(常平通寶)는 모양이 구멍 뚫린 엽전으로 인조 11년(1633)부터 조선 후기까지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쌍이다. 그러나 그 경계는 크로스(X)로 함몰된다. 내 몸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티끌처럼 미미하나,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면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또 미세와 거대가 만나는 곳은 언제나 비어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원래 유대인들이 여호와를 위한 번제(燔祭)였다. 희생제물의 몸을 토막 내어 완전히 태우는 산제사로서 희생물은 자기 생명을 대신했다. 산다는 것은 죽기까지 자기 몸을 번제로 바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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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Ahn 2007-05-07 14:15:24
너무 완벽해도 사람들이 접근 안한다는 말이 있지요. 약간은 어리숙한 맛이 어떨 때는 좋은 법일 것입니다. 그동안 다소 어려워 잘 이해는 못하지만, 가끔은 방문하여 글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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