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차 한 잔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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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차 한 잔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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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당은 컴퓨터 펌웨어 같은 것

“그대가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를 내가 안다. 나는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고레스다. 내 몸을 덮은 한줌의 흙이나마 좀 빌려 달라.”

- 고레스(Cyrus 585-529 BC) 대왕의 묘비명에서 -

알렉산드로스(356-323 BC) 대왕은 33살에 객사했다. 그때 그는 그리스에서 나와 소아시아를 통과한 후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차례대로 누르고, 마침내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진격하던 무렵이었다. 헬레니즘을 전파한 알렉산드리아 제국은 고레스가 세운 페르시아가 그 모델이었다. 페르시아는 피정복 민족을 노예화하지 않고, 통치에 참여시킨 세계 최초의 다민족 제국이었다.

그는 고레스의 무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어느 듯 자만에 빠져있던 알렉산드로스는 2백 년 전에 자기를 기다렸던 고레스를 발견했다. 아, 내 모습이로다! 울지 않는 체질로 바뀌었던 그였지만 오랜만에 뜨거운 눈물을 맛보았다. 자기가 신이 아니라 반드시 죽게 될 인간임을 그때 깨달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그 묘비에 그리스어도 함께 새겨 넣도록 지시했다.

덩치나 체력으로 봤을 때 공자(552-479 BC)는 여느 영웅이나 군주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은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언젠가 죽을 운명이란 것을 확실하게 캐치했다는 점이다. 즉 죽은 고레스가 산 알렉산드로스에게 한수 가르친 것을 공자는 어릴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페르시아처럼 알렉산드리아도 불멸의 천하가 아니라 뒤이은 로마 제국의 발판일 뿐이다.

피안과 차안 사이에는 죽음이란 단절의 층이 있다. 성경은 이 장벽을 요단강으로 상징한다. 애벌레는 고치를 통하여 나방으로 탈바꿈 된다. 윤회설 역시 이런 비유로 풀이되겠다. 반도체는 충만대와 허용대 사이에 전자가 존재할 수 없는 금지대의 폭이 약 1 전자볼트 정도이다. 요단강은 공간차로, 탈바꿈은 시간차로, 금지대는 에너지차로 각각 설명되는 것이 좀 다르다.

공자는 죽음을 초월하려고 덤비지 않았다. 죽음을 차분하게 삶의 예(禮)로 대체했다. 즉 저승의 신위(神位)를 이승의 절차로 대접했다. 사람을 환대하면 잔치가 된다. 그래서 제사상은 마치 잔치차림같이 푸짐하다. 술도 있고, 다과도 곁들인다. 제사는 선조에게 올리는 예였다. 그리고 사당(祠堂)은 제사전용의 공연장으로 준비했다. 사람들은 사당에서 죽음에 숙달되어갔다.

무덤 묘(墓)와 사당 묘(廟)는 다르다. 가묘(家廟)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조선시대부터 성행했다. 대개 집은 남향으로 자리 잡는데, 가묘는 그 좌편 동쪽에 지었다.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4대조까지 사당에 위패를 모셨다. 조혼풍습으로 고조(高祖) 할아버지 할머니와 직접 대면할 가능성 때문이다. 불천위(不遷位)는 나라에서 허락하여 영원히 제사를 받는 신위이다.

유림(儒林)의 전통을 지닌 집안이라면 적어도 설과 한가위에 차례(茶禮)를 지낸다. 그런데 차례라는 제사는 주자가례와 고례(古禮)에도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용어이다. 여기에 대하여 제사상 대신에 차만 올려도 좋다는 견해도 있고, 차례가 제사의 옛말로 보는 설도 있다. 율곡은 차를 구하기 힘들면 빼버리거나 숭늉 또는 식혜로 대체해도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 가문(家門)의 사당을 종묘(宗廟)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왕가(王家)의 종묘를 연상한다. 왕은 곧 나라이기에 종묘는 국가최고기관을 상징하기도 했다. 사직(社稷)이 토지와 곡식의 신 또는 그 제사이기에, 종묘사직 그러면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뜻으로 쓰였다. 그밖에 산신당, 칠성당 같은 자연숭배 사당이나, 충절 및 의열(義烈)을 기리는 사회질서를 위한 사당도 있다.

사당은 특히 교육기관에 필수시설이다. 국립대학에 해당되는 성균관에는 공자를 배향하는 문묘(文廟)로서 대성전(大成殿)이 그 배경을 잡고 있다. 그 안에 공자를 위시한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오성(五聖)과 공자의 직제자 십철(十哲)을 위시해서 주자(朱子) 등의 송나라 육현(六賢)과 설총 이하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PC의 윈도처럼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운영체제이다. ROM에 박아낸 운영체제를 펌웨어(firm-ware)라고 부른다. 사당은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제례(祭禮)를 되풀이하는 펌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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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07-04-28 17:32:56
안 교수님 반갑습니다.
신문사에도 자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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