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용기를 가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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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용기를 가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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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창을 꼬나들 사람을 찾습니다

^^^▲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 표지^^^
대학시절 열심히 읽어보려고 노력한 책 중에 ‘오르테가 이 가세트’ 란 사람이 쓴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 이란 조그만 문고본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이름이 낮 설긴 하지만 꽤 유명한 철학자란 것을 역자서문에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넘버 3’인지 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한국영화에서 송광호가 하는 대사. “너 소, 나는 나. 덤벼!. 죽자 사자 한번 해보는 거야...” 정확하진 않지만 대개 그런 식의 ‘무대뽀 정신’을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을 잡으면 머리에 들어오던 안 들어오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다 읽고야 만다.’는 것이 당시 나의 독서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모든 책을 다 그런 식으로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철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땐 그런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하곤 했습니다.

대개의 철학책들은 어려운 용어와 여러 가지 개념들을 도구로 삼아 쓰여 있기 마련인데, 당시 아직 독서의 분량이 많지 않았던 대학초년 시절에는 그런 개념들이 참 낮설고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해하지도 못하는 철학책 무대뽀 정신으로 읽는 것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었습니다.

뜻도 모르는 개념들을 차근차근히 읽어가다 보면 그 책이 다 끝날 즈음에는, 굳이 철학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문장의 맥을 따라가면서 그 개념이 뜻하는 것을 상당부분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독서법은 나 자신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아무 책에나 다 적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당시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이란 책을 기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그 책은 정말 무지하게 어려웠다는 게 기억이 남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은 비슷한 개념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다가도, 다 읽을 즈음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데 이 책은 끝까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고 만 것으로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내가 이름도 생소한 ‘오르테가 이 가세트’란 사람의 책을 사가지고 그런 생고생을 치러야 했나 하는 것을 설명해야 할 차례입니다. 당시 나는 돈키호테란 인물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이야기 되는 것처럼 돈키호테가 유럽 중세사회의 몰락을 암시하는 시대사적 상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느니, 권위의 상징이던 귀족을 희화화한 세속문학의 효시이니 하는 것은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던 내용입니다.

내가 책이 빼곡히 들어찬 서고에서 그 책을 고른 이유는 ‘돈키호테’란 인물이 가지는 저돌성에 대해서, 똑똑한 사람들은 철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했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시지프스’도 끊임없는 도전정신의 화신이었지만, 나는 그 보다는 ‘돈키호테’에서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당시 내가 품던 궁금증의 한 부분을 풀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돈키호테’ 그가 행한 수많은 기행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부분입니다.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금세 내리는 돌을 뻔히 굴러 내릴 줄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놓여진 의무라고 성실히 이행하는 ‘시지프스 식의 실존’은 당시 나에겐 일종의 화두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나는 ‘결과를 뻔히 알지만 나에게 내려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시지프스 식의 실존보다는, 독자가 보기에는 뻔한 결론이지만 작중인물인 돈키호테가 홀로 자신만은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치며 엄청난 괴물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그 방식이 나에게는 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려는 성실함에선 동일하지만, 시지프스가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의미보다는, 돈키호테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향한 외침이 나에겐 더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돈키호테식의 어설픈 도전으로는 어림도 없이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또 하나의 현실을 배워 깨닫고 있습니다. 현실세계를 규정하는 엄연한 현실 외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현실 또한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고 세상은 풍차만큼이나 강하지만, 그 강한 괴물 같은 세상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열정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배워왔습니다. 처음부터 결말을 정하고 살아가는 시지프스와,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돈키호테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삶에 지친 분이 있으시다면, 내일 아침 해가 밝을 때, 저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서보지 않으시렵니까. 돈키호테처럼 창을 꼬나들고 저 거대한 세상이라는 괴물을 향하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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