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시를 쓰고 그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은 하는 것은, 초등학생의 시각으로 시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안을 가진 자가 선각의 눈으로, 그 시를 음미해 보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각자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시를 함부로 평하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시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들에게 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시가 그냥 시지, 뭐긴 무어야’라는 말을 하지만 시는 ‘응축’과 ‘음미’의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응축의 세계’를 그려내고, 독자는 그 시를 ‘음미’하면서, 수수께끼를 풀듯이 풀어내는데서, 작자와 독자가 서로 만나게 되고, 음미하는 즐거움을 주고 느낀다. 하지만 어설 푼 시는 읽으면서, 그냥 모든 내용이 들어나고 음미하는 재미가 없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사색의 여유를 주고, 미처 몰랐던 미지의 세계를 풀어내는 즐거움을 주는 시가 좋은 시가 된다. 이 시각에도 수많은 시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난무하지만 과연 시다운 시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무슨 책이 가장 좋은지를 물으면 ‘많이 생각하고 읽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책을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가장 많이 읽는다. 성경책은 내용이 심오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많이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이처럼 시 역시 많이 생각하고, 음미하면 음미 할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되며, 무엇인지 그 속에 내재한 심오한 것을 발견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좋은 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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