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시 “귀천” 중에서 -
서양건축사를 보면 서양사 또는 서양문화사의 시대구분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일례를 들면, 고대(이집트, 바빌로니아)-고전(그리스, 로마)-중세(전기-비잔틴, 사라센 / 후기-로마네스크, 고딕)-근세(르네상스, 바로크)-근대(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크게 오분(五分)한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좀더 단순하게 고대-중세-근대로 역사를 삼분(三分)한다.
그런 반면, 동양사는 이런 잣대로 재단하기 어렵다. 우선 문화의 권역이 동부 중국권, 남부 인도권, 서부 이슬람권, 북부 초원유목권 등으로 뿌리부터 서로 다르고, 이들을 종횡으로 하나로 묶어 시대별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막막하다. 동양은 또 다른 조감도(鳥瞰圖)가 요구되지만, 사람들은 유물사관의 정당성보다 그 명쾌함 때문에 거칠어도 세 토막 낸 역사를 선호한다.
이처럼 우리 역사도 세 마디로 매듭지어보자.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고대이고, 어디부터가 근대인가? 반만년 역사를 산줄기로 본다면 여기에 두개의 큰 봉우리가 나타나야할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에 분수령이 되는 역사적 사건 두개를 결정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과제이다. 먼저 왕조(王朝)의 교체기를 택하는 것이 손쉽고, 또는 민족의 통일된 기점을 잡는 것도 의미 있다.
서양의 경우, 5세기 무렵의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15세기 무렵의 르네상스까지 가톨릭교회가 풍미한 약 천년을 중세로 잡는다. 인류가 신화적 자녀에서 풀려나 개성을 가진 인품으로 진화하기까지 세 개의 큰 사건을 겪었다. 그것은 바닷길의 발견, 르네상스, 종교개혁이다. 콜럼버스(1446-1506), 마키아벨리(1469-1527), 루터(1483-1546)가 각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7세기 홀란드(和蘭)는 이 세 사건이 하나로 겹쳐진 지역이었다. 영독불(英獨佛) 틈새의 암흑을 뚫고 찬란한 새 아침을 열었는데, 화란은 중세를 접고 근대로 가는 바로크시대를 세상에 알렸다. 렘브란트(1606-69)의 “야경(夜警)”은 그런 배경을 깔라놓은 그림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받고 등장하는 군중들은 주간 생업에 종사하나 야간 경찰이 되는 부르주아 신인류이다.
촌은 유희경(1545-1636)은 왜란 이후 나타난 조선의 부르주아이다. 그의 거처 침류대(枕流臺)는 위항문화(委巷文化)의 모태였다. 위항이란 도심의 골목길을 뜻하고, 위항인은 의식이 깨어있는 민초(民草)를 가리킨다. 이수광은 침류대를 성시산림(城市山林)이라 불렀다. 성시산림은 도시와 수풀의 상반적인 개념이 어울린 말로써 도시는 위항인을, 수풀은 사대부를 상징한다.
당대에 명기의 쌍벽으로 개성의 황진이와 부안의 매창(梅窓 1573~1610)을 꼽았다고 한다. 매창은 가무악은 기본이고 시조와 한시에도 능한 예인이었는데, 진정 사랑한 남자는 촌은뿐이었다. 반면, 시대를 앞서가다 마침내 반역죄로 죽었던 허균(1569-1618)에겐 매창이 몸을 맡기지 않았고, 끝까지 시우(詩友)로서 교유했다. 촌은과 매창이 맺은 사모의 시 몇 편이 전해진다.
다음은 “자한(自恨)”이란 매창의 시인데 촌은에게 향한 마음이 표현됐다.
春冷補寒衣 (봄날이 차서 엷은 옷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얇은 창 넘어 햇살이 건너오네) (紗는 반투명한 비단임)
低頭信手處 (머리 숙여 손길 따라 맡겼는데)
珠淚滴針絲 (구슬 눈물이 실 바늘을 적시네)
매창과 촌은은 천민출신이지만, 이들의 사랑에는 인간적 긍지를 느끼게 한다. 바로크(baroque)란 뜻이 “일그러진 진주”인 것처럼, 두 사람은 신분을 떠나 주옥같다. “매창의 시문은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처지를 굴곡 없이 읊고 있으며,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서 그녀의 뛰어남을 엿볼 수 있다”, 허균은 매창의 부음을 듣고 이렇게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중세라는 가운데 토막을 취하라고 한다면, 졸자는 4세기 말(불교 전래)부터 16세기 말(존엄성을 깨친 평민 등장 이전)까지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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