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는 글 쓰려면 많이 사유하고 글을 써야
인간이 살찐 돼지보다 우수한 것은 사유(思惟)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다르게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사유하며 산다. 하지만 그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실물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영역보다 다소 덜 생각하고 지나침이 크다.
그렇다면 사유란 무엇인가, 사유란 사물현상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의 인식(認識)이다. 직관(直觀)에어서 주어진 그대로의 잡다한 인식이 아니라, 고찰을 통해서 추상되고 응축된 어떤 개념이다. 인간은 이러한 사유를 짐승과는 다르게, 언어와 함께 사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탐색의 수단으로 지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진리와 공정성에 대한, 논리적 사유를 항상 추구하고 살지는 않는다. 보통의 인식 속에서 살고 탐구를 요구하는 어려운 명제에 대해서는, 항상 깊이 사유하고 크게 지각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현상은 보편적인 삶 속에서는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는 이유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간과할 수가 없어서 사물의 진실과 공정성을 밝히기 위한, 논리학이나 인접학문이 생겨났다. 논리학이란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유래한 말로서, 사유학(思惟學), 이성학(理性學), 언어학(言語學)이라고 볼 수가 있다.
사유에서의 공리(公理)란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일상의 경험에 의해 다 알 수 있는 자명한 원리나 규정을 말한다. 이러한 공리는 세 가지를 말하게 되는데 ‘어떤 사물이든지 그 자신과 동일하다.’는 동일률(同一律), ‘어떤 사물도 그 자신이면서 그 반대의 것일 수는 없다.’는 모순율(矛盾律), ‘모순되는 두 대립자(對立者) 사이에는 어떤 중간자(中間者)도 있을 수 없다.’는 배중률(排中律)이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辨證法的) 사물인식에서 보듯이, 모든 사물은 영원성, 상시성, 구체성이 항존(恒存)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그 본질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추리가 생기고 오류가 생긴다.
추리는 이성단계의 인식방법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사회적 실천을 토대로 얻어지며, 간단한 지식들은 추리를 거치지 않고도 얻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지식들은 추리를 통해서, 그 사물의 본질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이러한 추리는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되고, 어떤 전제로부터 새로운 결론이 얻어진다.
지능이 정상인 사람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누구나 추리를 할 줄 알게 되지만, 그 추리가 늘 정확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따라서 추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참이어야 하고, 추리의 형식이 규칙에 맞아야 한다. 전제가 되는 내용이 참이라고 해도, 추리에 필요한 규칙에 어긋나면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어떤 판단의 명제는 그 본래의 관찰대상인 실체 및 관계와 일치하는 내용이어야 진실하고 정확하게 도출된다. 이러한 추리는 귀납법(歸納法), 연역법(演繹法), 유비추리법(類比推理法)이 있다. 귀납법의 결점은 전제된 판단이 옳아야 옳은 결론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연역법은 일반적으로 포괄성이나 보편성을 가진 원리를 전제로, 결론을 얻는 방식으로 삼단논법이 그 전형적인 논리전개 형식이다.
또한 유비추리란 두 대상의 일부속성이 동일하다는 것에 근거하여, 제3의 속성도 동일하다는 결론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직관은 판단, 추리 등의 사유작용을 덧보태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으로, 사람의 감각, 지각, 표상 같은 사물현상 작용과 관련되어서 얻어지게 되는데, 그것을 인식이라고도 한다. 전제한 감각은 사물을 보고 느껴서 받아들이는 힘으로, 다음 단계인 사유의 질료(質料)를 만들어 준다.
지각도 감각과 마찬가지로 사물현상에 접근하여 작용하는 순간에 직접 주어지는 인식으로서 생성된 후에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기억에 의해서 재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성적 인식을 통한 직관만으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현상의 본질적인 것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물현상의 본질, 또는 보편적 성질의 법칙이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분명히 알고, 그 의의를 바르게 이해하고 판별하도록 하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늘 사유하고 살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실물을 고찰하는 영역보다 다소 지나침이 있다. 하지만 사물의 진실과 실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어떤 명제에 대한 올바른 결론을 얻기 위한 깊은 사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요구되고, 그 실체를 바르게 파악하는데도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잘못 판단한 사유로 글을 쓴다.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을 지키지 않고 쓴 글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유란 무엇인가, 사유란 사물현상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의 인식(認識)이다. 직관(直觀)에어서 주어진 그대로의 잡다한 인식이 아니라, 고찰을 통해서 추상되고 응축된 어떤 개념이다. 인간은 이러한 사유를 짐승과는 다르게, 언어와 함께 사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탐색의 수단으로 지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진리와 공정성에 대한, 논리적 사유를 항상 추구하고 살지는 않는다. 보통의 인식 속에서 살고 탐구를 요구하는 어려운 명제에 대해서는, 항상 깊이 사유하고 크게 지각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현상은 보편적인 삶 속에서는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는 이유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간과할 수가 없어서 사물의 진실과 공정성을 밝히기 위한, 논리학이나 인접학문이 생겨났다. 논리학이란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유래한 말로서, 사유학(思惟學), 이성학(理性學), 언어학(言語學)이라고 볼 수가 있다.
사유에서의 공리(公理)란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일상의 경험에 의해 다 알 수 있는 자명한 원리나 규정을 말한다. 이러한 공리는 세 가지를 말하게 되는데 ‘어떤 사물이든지 그 자신과 동일하다.’는 동일률(同一律), ‘어떤 사물도 그 자신이면서 그 반대의 것일 수는 없다.’는 모순율(矛盾律), ‘모순되는 두 대립자(對立者) 사이에는 어떤 중간자(中間者)도 있을 수 없다.’는 배중률(排中律)이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辨證法的) 사물인식에서 보듯이, 모든 사물은 영원성, 상시성, 구체성이 항존(恒存)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그 본질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추리가 생기고 오류가 생긴다.
추리는 이성단계의 인식방법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사회적 실천을 토대로 얻어지며, 간단한 지식들은 추리를 거치지 않고도 얻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지식들은 추리를 통해서, 그 사물의 본질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이러한 추리는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되고, 어떤 전제로부터 새로운 결론이 얻어진다.
지능이 정상인 사람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누구나 추리를 할 줄 알게 되지만, 그 추리가 늘 정확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따라서 추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참이어야 하고, 추리의 형식이 규칙에 맞아야 한다. 전제가 되는 내용이 참이라고 해도, 추리에 필요한 규칙에 어긋나면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어떤 판단의 명제는 그 본래의 관찰대상인 실체 및 관계와 일치하는 내용이어야 진실하고 정확하게 도출된다. 이러한 추리는 귀납법(歸納法), 연역법(演繹法), 유비추리법(類比推理法)이 있다. 귀납법의 결점은 전제된 판단이 옳아야 옳은 결론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연역법은 일반적으로 포괄성이나 보편성을 가진 원리를 전제로, 결론을 얻는 방식으로 삼단논법이 그 전형적인 논리전개 형식이다.
또한 유비추리란 두 대상의 일부속성이 동일하다는 것에 근거하여, 제3의 속성도 동일하다는 결론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직관은 판단, 추리 등의 사유작용을 덧보태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으로, 사람의 감각, 지각, 표상 같은 사물현상 작용과 관련되어서 얻어지게 되는데, 그것을 인식이라고도 한다. 전제한 감각은 사물을 보고 느껴서 받아들이는 힘으로, 다음 단계인 사유의 질료(質料)를 만들어 준다.
지각도 감각과 마찬가지로 사물현상에 접근하여 작용하는 순간에 직접 주어지는 인식으로서 생성된 후에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기억에 의해서 재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성적 인식을 통한 직관만으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현상의 본질적인 것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물현상의 본질, 또는 보편적 성질의 법칙이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분명히 알고, 그 의의를 바르게 이해하고 판별하도록 하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늘 사유하고 살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실물을 고찰하는 영역보다 다소 지나침이 있다. 하지만 사물의 진실과 실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어떤 명제에 대한 올바른 결론을 얻기 위한 깊은 사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요구되고, 그 실체를 바르게 파악하는데도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잘못 판단한 사유로 글을 쓴다.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을 지키지 않고 쓴 글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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