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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현 <별을 묻던 날> ⓒ 생각의 나무 | ||
"나는 고향을 떠나면서부터 조금씩 내 자신을 죽이고... 일류가 되고 싶었지만 늘 삼류에서 머물렀던 순간과 순간들의 연장. 솔직히 다시 시작한다 해도 아마도 지금보다 더 잘 살 자신은 없다."
1991년 7월, 장편소설 <러시안 십자가>를 펴내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안동 출신의 작가 박기현(45)이 유년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자전적 장편소설 <별을 묻던 날>(생각의나무)을 펴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친구의 부친상으로 27년 만에 고향인 안동 땅을 밟으면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다.
고향.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이는 말이다. 어린 날의 기억들이 새근새근 살아 숨쉬는 그 곳. 하늘에 걸린 일곱 색 무지개 같은 찬란한 꿈이 걸려 있는 그 곳. 문득문득 숨기고 싶은 속내까지 깡그리 드러내고 있는 그 곳. 지금도 고향에는 그런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별을 묻던 날>은 지난 60~70년대, 작가가 살았던 고향 안동에서 지금도 새록새록 숨쉬고 있는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을 되돌아보는 장편소설이다. 그래, 유년의 기억이 서린 고향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인생의 중년기에 접어든 작가에게 있어 고향 안동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왜냐하면 '나'(작가)는 고향인 안동에서 중학교를 졸업을 한 뒤 고교진학을 위해 고향을 버리다시피 하고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오로지 금의환향의 그날만을 꿈꾸며 열심히 학문에 정진한 결과 날이 갈수록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고향의 모든 것들과 철저하게 단절되기 시작한다.
서울의 고등학교는 생각보다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안동에서는 전교에서 11등을 하고, 전교 회장까지 지내며 일류를 자부한 '나'였지만,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몰려있는 서울의 고등학교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삼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연장선으로 이어진다. '나'가 겪는 현실은 대학도, 사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27년이 지나도록 결국 고향 땅을 한번도 밟지 못한다. 처음, 고향을 떠나올 때의 꿈이었던 금의환향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그동안 서푼짜리 명예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도 삼류인생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삼류인생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작가의 어린 날의 추억이 마치 백서처럼 담겨 있는 장편소설 <별을 묻던 날>은 연작 형식을 띠고 있는 스무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27년 만의 귀향', '서커스와 나병환자', '할머니와 양밥', '먹구렁이', '별을 묻던 날', '돌아갈 곳 없는 자의 슬픔' 등이 그것들이다.
중년기에 접어든 주인공 '나'는 고향을 떠난 뒤, 뜻을 이루지 못한 자괴감으로 더더욱 고향에 갈 수 없게 된다. 그런 어느날, 친구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마침내 27년 만에 고향 안동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흑백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 나 이외의 다른 존재, 즉 타인이 인격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이 무한한 우주에서, 지구에서, 한국에서, 그리고 서울땅 수백만 인구 중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인지에 대한 뼈저린 의식을 체감하게 되었다"
27년 만에 고향 안동에 도착한 '나'는 고향을 지그시 바라본다. 고향은 여전히 예전의 그 넉넉한 품으로 '나'를 끌어 안는다. 비로소 '나'는 고향을 찾지 못했던 옹졸함이, 고향의 풀 한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비겁함에 대해서 크게 후회하게 된다.
그렇다. 고향은 고향일뿐이다. '나'가 고향을 떠나 출세를 해서 돌아왔든, 아니면 상거지가 되어서 돌아왔던 간에 고향은 늘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나'는 그러한 고향의 넉넉한 품에 포옥 안기어 마침내 스스로 고향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버리고 떠났던 또 하나의 '나'를 용서하며, 모래밭에 묻어두었던 사이다 병을 떠올린다.
"그 병이 무사히 있을까?... 사이다 병 하나를 주워 그 속에 나의 맹서와 나의 꿈을 써넣고 마개를 닫아 모래 한가운데 묻어두었던 내 인생의 청춘백서. 내 별이 거기에 아직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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